두 번째 목표 '명문 대학 입학'
일명 '유학생'이라고 하면 돈 많은 집안의 아이들이 해외로 나가, 당연히 좋은 대학에 입학하여 평탄하게 살아간다고 생각할 수 있다. 나 또한 그런 생각에 다소 멋진 삶(?)이라 생각했기에 일본 유학을 권하는 아버지에 말씀에 흥미가 생겼을 수도 있다.
강남역에 유학 학원 몇 군대를 돌아본 후, 전체 20명 정도 학생이 다니는 소규모 학원을 선택했다. 앞서 이야기한 것과 같이 많은 학생들이 다니면 사춘기가 세게 온 내가 관리가 안될 것 같다는 부모님의 의견이 철저히 반영된 선택이었다. 중학교 졸업과 동시에 유학 준비가 시작되었다. 생각보다 준비해야 되는 과정은 물론 공부해야 하는 영역이 너무 넓었다. 고등학교는 고등학교대로 다니며 내신 성적은 상위권을 유지해야 되고 수능을 대신해서 일본어로 이루어진 일본 수능(EJU)을 준비해야 했다. 영어 또한 필수로 토플 성적이 필요했기에 기본적인 영어 공부와 함께 Writing, Speaking 공부도 병행했다. 아침 8시 등교를 하여 오후 5시 하교한 후 바로 학원으로 향해 새벽 1-2시까지 공부했고, 주말도 아침 8시부터 새벽까지 학원에서의 삶을 매일 같이 반복했다. "다른 애들도 똑같이 공부해", "인서울 하려면 다 똑같이 공부했어!"라는 이야기는 당시 나에게는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나에게 좋은 소식이었다면 미친듯한 반항심으로 물들었던 사춘기는 조금이라도 엇나간 생각을 할 시간도 없이 쥐도 새도 모르게 지나가버렸다. 사춘기를 덮어버린 목표는 단 하나, "3년간 노력해서 보란 듯이 명문 대학에 입학할 거야"였다.
그렇게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던 고등학교 2학년,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평소 지병이 있으셨던 것도 아니었다. 단지 평소처럼 외출하시기 위해 버스를 타셨고, 타자마자 버스가 급출발하는 바람에 넘어지시며 머리를 크게 다쳐 돌아가셨다. (나는 그 이후로 웬만하면 이동할 때에 버스를 타지 않는다.) 평소와 같이 학원에 있었던 나는 어머니께 소식을 듣자마자 그대로 짐을 다 내팽개치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외할머니는 소아 천식으로 고생하며 유치원도 다니지 못했던 어린 시절 나와 함께 놀아주시며 거의 모든 시간을 함께 해주셨고, 부모님과 싸우는 날이면 방에서 문을 잠그고 몰래 외할머니께 전화해서 불만을 토로하곤 했던 친구 같은 존재였다. 그렇기에 그때 그 소식을 들은 순간과 장소, 환경이 아직까지 생생하게 기억할 만큼 충격이 컸다. 나와 가까운 내 주변 사람이 그렇게 떠나버린 경험 자체가 처음이었기에 아직도 잊지 못하는 것 같다. 유학 준비를 하며 틈틈이 연락을 할 때마다 "대학 입학하면 등록금은 할머니가 내줄게"라며 위로해 주셨던 말은 외할머니와 나의 마지막 약속이 되었다. 나는 그 이후로 외할머니가 하늘에서 보기에도 뿌듯할 만큼 멋진 사람이 될 거라는 생각으로 이어졌고 이는 곧 "명문 대학 입학"이라는 목표로 더 명확해졌다.
별개의 이야기로 명문 대학 입학이 곧 멋진 사람이 된다는 것은 아니다. 물론 사회생활을 했고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며 생각이 폭이 넓어졌기에 지금 생각하면 아닌 이야기이고 당시에 오롯이 '유학'과 '입시'에 초점이 맞춰진 고등학생 나에게는 <명문 대학 입학=멋진 사람>이었다. 매일 같이 똑같은 환경과 보고 듣는 이야기가 똑같았기에 내 목표와 목표에 따른 사고방식도 그렇지 않았을까?
이후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며 면접을 보기 위해 당일치기로 일본도 가보았고, 한글로 써도 명확한 논리가 없는 논술을 일본어로 끄적였고, 뭐라고 쓰고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밤새우며 몽롱한 상태로 자기소개서를 써 내려갔다. 이런저런 일들을 겪고 나는 누가 들어도 아는 일본의 명문 대학에 입학했다. 당시 합격 소식을 인터넷이 아닌 우편물을 통해 알 수 있었기에, 서류가 올 것 같던 1주일 동안 1층에서 매일 같이 우체부 아저씨를 기다렸고 서류를 받자마자 뜯어보고 당시 9층에 살던 어머니를 창밖으로 불러 아파트가 떠나갈 듯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나는 두 번째 목표를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