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내는 것 그래서 비우는 것.
미움의 반대말은 비움이다. 자음 하나만 이렇게 떨쳐내도 사는 세상이 달라진다. 한때는 원망과 분노로 누군가를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워한 적이 있었다. 허나 그것은 그 대상이 아닌 내 영혼만 파괴시킬 뿐이었다.
하여 또 살다가 “도대체 왜?”라는 질문과 “어찌하여”라는 물음이 스멀스멀 올라와서 날 괴롭힐 때가 오면 나는 그를 내 인생에서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지운다.
그래야 구업으로든 행으로든 인연의 카르마를 짓지 않아서 다음 생에서도 만나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은영 선생님이 악연을 짓지 않는 방법은 행인이 날 칠 때 가끔은 눈만 흘길 뿐 고성으로 싸움을 시작하지 않는데서 온다 했다.
해서 나는 정말 잃고 싶지 않은 소중한 사람이 아니라면 싸우려들지 않으며 갈등이 생겨도 이해해 볼 노력조차 안 한다.
삶은 찰나이고 지나간 어제는 돌아오지 않아서 행복할 시간도 너무 짧음을 나는 알기 때문이다.
우리 집 앞 한강공원 최애 스벅에서 물멍 때리며 행복해하기도 모자랄 정도로 아주 짧은, 그런 소중한 시간은 내게 제한이 된 것임을 나는 알기 때문이다.
삶의 마지막 순간이 와서 필름처럼 돌아볼 때에
나는 내게 주어진 오늘을 행복하게 살았노라
말해보고 싶은 꿈이 내게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미움 한 장을 떼어내 그저 비운다.
그게 많이 살아보진 않았어도 옳은 이치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