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영화 리뷰

그에게 돌아갈 곳은 결국 자연뿐 <흔적 없는 삶> 후기

하지만 자연도 그에게는 전쟁터와 다를 바 없는 곳일 것이다.

by Nos

INTRO


111.jfif <흔적 없는 삶>의 주요 주인공 윌(아버지)과 톰(딸)


예전에 인투더와일드를 리뷰했던 적이 있습니다.

총명하고 장래가 유망한 청년이, 가정의 불화로 인한 세상에 대한 불신으로 숲 속에 들어가 야생의 거친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

결국,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하는 그의 이야기였습니다.


위 포스팅에서, 어떤 분이 <흔적 없는 삶>을 추천해 주셔서 보게 되었습니다.

내용은 비슷하면서도 달랐지만, 공통적인 코드는 동일했습니다.

세상을 거부하고, 자연에서 살아가는 운명을 택하는 주인공.

자연은 여전히 가혹하여 그들에게 시련을 선사하지만, 그 시련이 주는 메시지는 동일합니다.

'사람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서 너의 삶을 일궈라.'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들은 모두 그 메시지를 거부하고 자신의 비극적인 운명을 선택합니다.

그 운명에 대해 조금 더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전에, 영화의 줄거리를 먼저 간단히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줄거리 (스포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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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은 전쟁에 참전 후 PTSD를 겪고 있는 사람으로, 13살의 딸 이 있습니다.

그들은 미국의 공원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꽤나 만족스럽게 살아가지만, 복지국의 추적에 결국 발목을 잡혀 세상으로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복지국은 도시의 외곽에 다른 후견인의 집을 소개해주고, 핸드폰도 지원해 주는 등 많은 도움을 제공하지만 윌은 결국 적응하지 못하고 딸 톰을 데리고 떠나게 됩니다.

그렇게 다시 세상을 등지고 숲 속을 돌아다니다가, 윌은 숲에서 발을 헛디뎌 큰 부상을 당하게 됩니다.

딸 톰이 발견하지 않았다면 목숨을 잃었을 정도로요.

톰은 때마침 숲 속을 지나가는 무리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그 사람들의 도움 덕분에 윌도 목숨을 건지게 됩니다.

그 무리들은 숲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는데, 굉장히 좋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톰은 이들과 함께 삶을 살아가고 싶어 하지만, 아버지 윌은 결국 또 떠나려 합니다.

이번에는 톰은 아버지를 따라가지 않습니다.

아버지도 그녀를 억지로 데려가지 않으려 하기에, 결국 둘은 서로 이별을 하며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감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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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필연적으로 세상의 가혹함에 상처를 얻게 됩니다.

그것은 물질적인 궁핍함에 오는 아픔일 수도 있고, 친구와의 대인관계나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로 인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오는 아픔일 수도 있죠.


<인투더 와일드>의 주인공은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오는 정체성 혼란으로 인해 세상을 등지고 숲으로 떠납니다. 총명하면서도 기본적으로 선량하고 성실한 청년이라, 어딜 가나 사람들은 그를 좋아하고 예쁨을 받지만 그에게 있어 그런 가치들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홀로 고독하게 살아가는 자유를 택하기 위해 숲으로 떠나고, 결국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흔적 없는 삶>에서는 아버지 윌이 죽음을 맞이하진 않습니다.

다만, 그는 사회적인 죽음을 선택할 뿐입니다.

복지국의 도움과 숲 속의 사람들의 도움으로 사회에 복귀할 기회를 얻게 되지만, 그는 한사코 거부하며 결국 숲 속으로 떠나게 됩니다. 사랑하는 딸과의 이별을 택하면서까지요.


왜 두 주인공들은 이러한 삶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요?

제 생각에는, 두 주인공들에게 있어 속세의 삶은 억압일 뿐이며 어떠한 의미도 찾을 수 없는 공허한 장소이기 때문인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되겠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가장 큰 이유는 그들에게는 홀로 존재할 수 있는 고독한 공간만이 그들의 유일한 안식처가 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네요.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있어 보통 일은 아닙니다. 고되고 힘들면서, 많은 아픔과 시련이 존재하는 고행길이라고도 볼 수 있죠.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그 과정에서 소소한 기쁨과 행복들이 분명하게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 속에서, 누군가는 자아실현을 하기도 하며 삶의 의미를 찾기도 하죠.


하지만, 누군가에겐 그 과정 모두가 의미 없고 공허한 메아리일 뿐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굳이 그런 고통을 받아들이며 살아가야 하냐는 것이죠.

세상을 등지고 홀로 살아가면 그저 자유롭게, 아무런 고통 없이 삶을 살아갈 수 있는데 말입니다.


그렇게 그들은 세상을 등지고자 합니다.

그 의지는 <인투더 와일드>에서는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수단인 '화폐'를 그냥 버려버리는 것으로 드러나며, <흔적 없는 삶>에서는 사랑하는 딸마저 버리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렇게 버려버리고 나면 남는 것은 무엇일까요?

'나 자신' 하나입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도망칠 수는 있어도, '나 자신'에게서 도망칠 수는 없습니다.

이 '나 자신'을 마주하는 것만이 그들에게 유일한 안식처이기에, 두 주인공들은 모든 것을 버린 게 아닐까요?


사람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고통의 범위를 넘어선 시련을 마주하게 되면, 누구나 도망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도망침의 과정에서 소중한 것들을 하나씩 버리게 되겠죠. 그렇게 모든 것을 버린 끝에 최후에 남는 것은 '나 자신'입니다.

그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될 때, 보통의 사람들은 외롭고 음울해합니다.

나에게 있어 소중한 것들을 모두 잃어버린 최후의 장소가 될 테니까요.

하지만, <인투 더 와일드>와 <흔적 없는 삶>의 주인공들에게는 그 최후의 장소가 오히려 안식처가 되는 듯합니다.


나 자신을 제외한 모든 타인들이 존재하는 세상은 고통만이 있기에, 혼자서 고독하게 존재할 수 있는 장소만이 안식처가 될 수 있는 것이죠. 그 공간은 외부인들이 함부로 들어올 수 없어야 하고, 나 자신은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하는 장소이기에 바로 '숲'이 되어버립니다.


하지만, 그곳은 분명하게도 낙원이 아닙니다.

그저 도피처로 찾은 숲은 결코 낙원이 될 수 없습니다.

인간은 단순히 혼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진부한 사실 때문이 아니라, 도망친 자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까지 진정한 안식을 맞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고통스러워도, 상처와 고통에 분명하게 직면하여 맞서 싸움으로써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지금 당장은 그 문제를 '해결'하기 버겁다면, 잠시 쉬어가며 힘을 길러야 하지 도망쳐서는 안 됩니다.

도망쳐서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그 도망침의 끝은 '죽음'으로 향하기 때문입니다.

그 죽음은 '안식'이 아니라 '후회'로 가득할 것임은 분명합니다.


어쩌면, 두 주인공들이 숲에서 가혹한 시련을 맞이하게 되는 이유는 삶이 그들에게 다시 돌아가서 문제를 해결하라는 메시지를 던져주는 게 아닐까요?

다시 되돌아가서 고통을 직면하고 해결하라는 삶의 경고 메시지인 것이죠.

그 메시지를 거부한 그들에게, 삶은 비극적인 결말로 그들을 퇴장시키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진정한 안식은 회피가 아니라 직면하는 것.

그 고통스러움을 기꺼이 이겨낸 자만이 안식을 얻어 진정한 휴식과 기쁨을 느낄 수 있다는 것.

그것을 거부한 이들에게는 삶은 가혹하리만큼 비극적인 결말로 그들을 이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상으로 리뷰를 마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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