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천에서의 민수 이야기 1편
성천이란 도시는 반쯤 멸망했다. 좀비가 여기저기 기어 다니며 황폐해졌지만, 기존의 질서가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다. 전기, 수도는 끊기지 않았고 식량 배급도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원래의 사회로 돌아가기 위한 갖가지 절차가 계속해서 막히고 있었다.
도시에서 발생된 좀비 바이러스는 다행히, 정부의 빠른 조치로 다른 곳으로 전파되지 않았다. 그 조치는 잔혹했지만, 효과적이었다. 바로, 외부 전파를 막기 위해 모든 출입로를 통제해 버린 것.
성천 시민들의 반발은 거셌지만, 정부의 조치는 그대로 진행됐다. 외부의 시민들이 정부의 조치를 찬성했기 때문이다. 언론에서는 이와 관련된 비판, 토론, 정책 논의 등등이 수도 없이 쏟아져 나왔지만 그들도 속으론 내심 동의했을 것이다.
고립된 성천의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다. 사실, 도시 안의 사람들은 생존에 큰 문제는 없었다. 정부는 헬기와 군부대를 통해 보급품을 투하했고, 외부 시민들의 후원까지 더해지자 물자는 오히려 넘쳐났다.
생존한 시민들의 집집마다 각종 식료품과 생존 물품들이 넘쳐날 지경이었다. 길거리에는 보급품들이 여기저기 굴러다니고, 전기마저 공급되고 있었다. 인터넷마저 되는 성천은 아포칼립스가 아니었다. 성천의 꽤 많은 생존자들은 이 사태를 내심 즐기기도 했다. 심지어 외부의 노숙자들은 몰래 이 도시로 침투하기도 했다.
이 기이한 도시에서, 민수는 지금 반쯤은 정신 나간 행동을 하고 있었다. 바로, 면접 준비였다.
그는 믿을 수 없는 면접 안내 문자를 다시 보며, 정장을 준비했다.
[서류 합격 및 면접 안내]라는 제목으로 온 문자의 내용은 믿을 수가 없었다.
면접 장소와 시간이 바로 이 성천에서, 좀비가 활동하는 시간대인 저녁에 잡혔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기업이라면 이렇게까지 채용을 진행하지 않을 것이고, 정상적인 지원자라면 이런 면접에 참석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성천은 비정상적이었다. 그 속의 생존자들도 딱히 정상은 아닐 것이다.
민수는 피식 웃었다.
"이거, 진짜 미친 기업이네. 근데, 나도 단단히 미친놈인가 보다."
밤은 좀비의 시간이었다. 좀비 사태가 터진 지 몇 달이 지난 요즘에는 대부분 기어 다니긴 했지만, 언제든 뛰어다니는 좀비가 나타날지 몰랐다. 그런 좀비만 조심하면, 좀비에게 물릴 일은 거의 없었다.
최근에는 좀비에 의한 인명 사태는 없었고, 정부에서도 군부대와 경찰을 동원하여 좀비를 생포하려 노력했다. 그들도 누군가의 사랑하는 사람이자, 한 때는 인간이었기에 함부로 사살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야근을 하게 될 경우, 추가 생명수당과 안전을 위한 차량 운행을 제공할 예정입니다. 회사는 추가 경비원 고용을 통해 근로자의 안전을 확실하게 보장할 예정이니..]
민수는 문자를 마저 읽었다. 요지는, 야근을 하게 되면 밤에 퇴근할 수도 있으니 이것에 큰 부담이 없는 인원을 뽑겠다는 것이다. 원래는 간단하게 면접 안내 문자만 받는 게 정석인데, 이 비정상적인 상황을 조금이라도 더 설명하고자 문자는 아주 길게 적혀 있었다.
이런 상황이 아주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성천이란 도시는 각종 실험실과 공장들이 밀집한 단지가 있었다. 현재는 당연히 가동이 중단되었는데, 이로 인한 기업의 피해가 막심했다. 다른 도시에 다시 인프라를 구축할 시간은 없었다. 그래서, 몇몇 기업들은 서로 의기투합하여 정부에 탄원서를 냈다.
성천에 있는 공장과 실험실을 사용할 수 있게 허가해 달라고.
정부는 처음에는 반대하는 입장이었으나, 국가 핵심 연구/생산 설비와 각종 인프라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결국, 정부도 군부대와 경찰을 동원하여 기업 활동을 지원하게 되었다.
야간 경호원, 개인 셔틀차량 제공 등을 통해 성천의 시설들을 돌리기로 결정이 되었다. 방호복을 껴입은 경호부대들이 각종 시설 안에 있는 좀비들을 생포하고, 몰아낸 뒤 소독까지 끝마쳤다. 시설들은 다시 가동될 준비가 되었지만, 문제는 인력들이었다.
성천 외부의 사람들은 아무리 일 때문에라도 이곳에 오기를 한사코 거부했다. 기업들은 추가 수당과 거주지, 승진 등을 약속했지만, 대부분 오고 싶어 하지 않았다. 강제로 인사발령까지 해봤으나, 대상자들은 모두 퇴사를 해버렸다. 돈에 눈이 먼 몇몇 사람들만이 이를 수락하거나 희망할 뿐이었다.
결국, 기업은 성천 내부의 사람들 중에 신입사원과 경력사원들을 뽑기로 결정했다. 야간에도 생산라인을 돌리거나 실험을 수행하기 위해, 이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사람을 뽑아야 했다. 그러려면 형식적으로라도, 면접 시간대를 야간으로 잡아 이를 테스트하고자 했다.
그렇게, 성천에 사는 생존자들은 평소보단 훨씬 낮은 경쟁률로 성천에 있는 기업들의 서류를 통과하기 시작했다. 민수에겐 이건 절호한 기회였고, 그는 면접을 참석하기로 결심했다.
면접 당일, 밤이 어둑한 저녁 8시. 민수의 핸드폰으로 전화가 울렸다.
"김민수 씨 되십니까? 저는 K기관의 TF 경호 1팀 김성준 팀장입니다. 곧, 집 앞까지 방문할 예정이니 놀라지 마시기 바랍니다."
"네, 알겠습니다."
전화가 끝나자마자 1분도 안되어서 방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민수는 구두를 신고, 방문을 열었다.
덩치가 큰 남자 둘이 민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완전 무장한 경호원의 모습을 보자, 민수는 그제야 실감이 났다.
"김민수 씨 본인 되십니까?" 경호 팀장이 물었다.
"네, 맞습니다. 여기 신분증 보여드리겠습니다."
팀장은 신분증과 김민수의 얼굴을 대조한 후, 무전기로 응답했다.
"여기는 알파, 김민수 신원 확보. 차량 주변 안전 확인 후 응답 바람."
"알파, 여기는 브라보. 차량 주변 이상 없음."
무전기가 뚝 끊겼다. 팀장은 민수를 쳐다보며 말했다.
"김민수 님? 이제 저희랑 이동하시죠."
"네, 알겠습니다."
본격적인 경호가 시작되자, 민수는 절로 긴장되었다. 솔직히,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었다.
민수가 사는 원룸 안 건물에는 당연히 좀비가 있지 않았고, 주변에도 위협이 되는 좀비는 없었기 때문.
가로등 아래에 하반신이 없는 좀비가 있긴 했으나 기어 다닐 기력도 없는 좀비였기에 생명에 위협이 되진 않았다.
경호를 받으며 원룸을 내려가니, 민수는 이상하게도 기분이 좋았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아무도 신경 안 쓰던 취준생이었다. 이제는 이렇게 경호까지 받을 정도로 중요한 인력 취급을 받는 걸까? 경호원들의 숙달된 사주경계를 받으며 민수는 차량에 탑승했다.
차량에 탑승하자마자, 팀장은 출발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성수야. 바짝 쫄 거 까진 없지만, 그렇다고 긴장은 풀지 말고 운전해. 언제 좀비가 달려들지 모른다."
"네, 알겠습니다."
팀장은 이어, 어딘가로 전화했다.
"김민수 씨 차량에 탑승했고, 20분 안에 면접장까지 안전하게 모실 예정입니다. 이동 경로를 실시간으로 공유드릴 예정이니, 혹시나 모를 위협이 있으면 신속한 추가 지원 부탁드립니다."
상상한 것보다 더 철저한 경호 덕분에, 민수는 재밌으면서도 긴장되었다. 그는 골목 앞까지 찾아와 준 배급 덕분에, 성천의 분위기를 정확히 모르기는 했다. 배급은 당연히 낮에 이뤄졌기에, 밤에는 어떤 모습인지 몰랐다. 각종 언론과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와는 달리, 밤은 정말로 위험한 걸까?
계속해서 사주경계를 하는 경호원들 때문에 슬슬 무서워질 무렵, 팀장이 느닷없이 말을 건넸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참 힘들죠?"
아까보다 한결 풀어진 목소리였다.
"아.. 네 그렇네요."
"나이는 어떻게 되세요? 20대 후반 정도?"
"올해 28살입니다."
"아이고, 한창 좋을 때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저럴 때가 있었는데."
운전기사가 맞장구쳤다.
느닷없는 스몰토크 분위기에 민수는 어리둥절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잔뜩 무게를 잡지 않았나? 지금은 영락없는 친근한 동네 아저씨들이었다.
"그나저나, 어쩌다 이렇게 면접까지 보게 되신 거예요?"
"아.. 평소 같으면 쳐다도 못 봤을 기관인데, 면접 문자가 와서 혹했습니다."
"하긴, 요즘 취업이 그렇게 힘들다고 하던데.. 얼마나 힘들었으면 이런 세상에서도 취업을 하려는지."
"아이, 팀장님. 저희도 돈 더 벌려고 이런 일까지 하는데 뭐 어떻습니까."
민수의 옆에 있던 경호원이 맞받아쳤다. 그 와중에도 창문 밖을 주시하는 걸 잊지 않는 것이 프로다웠다.
경호원들은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지, 각자 떠들기 시작했다.
민수의 긴장을 풀어주려고 의도한 건지 모르겠으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민수의 긴장감은 한층 더 풀어졌다.
면접장까지는 별 다른 일이 없이 안전하게 도착했다.
외관으로는 불이 다 꺼져 있어 음침했는데, 안으로 들어서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커튼으로 전부 빛이 새어나가는 걸 철저하게 막고 있었다.
건물 안은 깨끗했다. 소독약 냄새가 진동을 했고, 여기저기 최신 가구들이 눈에 보였다.
건물은 생각보다 더 넓었고, 총을 들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민수는 면접이 아니라 입대를 하는 기분이었다.
경호원의 안내에 따라 면접 대기실로 들어서자, 각종 다과들이 아기자기하게 모여 있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정장차림의 사람들이 자리에 앉아있었다.
딱 봐도, 10명은 넘는 듯했다.
그들은 민수가 들어서자, 한 번 힐끔 쳐다본 뒤 면접 자료를 읽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천장을 쳐다보며 중얼거렸고, 또 다른 이는 핸드폰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아, 이런 세상에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취업을 위한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민수는 좀비보다 현재 앉아있는 지원자들이 더 무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