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세상에서도 면접 보기 2편

세상은 예측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by Nos

"면접 번호 1번, 2번, 3번 순차적으로 입장하겠습니다."

정장을 입은 인사담당관의 말에, 세 명의 지원자가 벌떡 일어나 앞으로 향했다.

면접 대기실 한편에 총을 든 군인이 서 있다는 점만 빼면, 어느 면접장과도 다르지 않은 풍경이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좀 더 음침하고 긴장감도 짙었지만, 세상은 생각보다 그대로였다.


민수는 보급품에 없던 과자를 한 아름 들고 와서 까먹기 시작했다. 다른 지원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보급품만 보면 한아름씩 챙기는 게 습관인 듯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면접을 보러 왔던 민수는, 생각 이상으로 열심인 지원자들 때문에 주눅이 들었다.

민수는 본인만 면접을 보러 왔을 거란 착각이 부끄러웠다. 이 난리통속에서도 취업은 힘들겠구나를 느꼈다.


3명씩 1조를 이뤄 면접을 본다면, 민수는 4번째로 들어갈 것이고 면접 시간은 밤을 훌쩍 넘길 것이다.

지원자들 각각을 다시 또 집까지 보내는 것까지 생각하면 K기관은 이 면접에 꽤 비용을 많이 쓴 셈이다.

이렇게까지라도 해서 사람을 채용해야 하나 의문이 들었다가도, 건물의 규모를 보니 또 그럴만했다.

사람이 문제였지, 건물과 장비는 여전히 멀쩡했다.


과자를 까먹던 민수의 머릿속에, 한 가지 의문이 스쳤다.

그런데, 월급은 어떻게 주는 거지? 성천에서 돈은 더 이상 매력적인 재화가 아니었다. 오직, 배급되지 않는 물건들만이 가치를 가졌다.

대표적으로 술담배였다.

그래서, 편의점이나 마트에서는 이런 기호품들이 전부 사라져 있었다.

성천의 근로자들에게 일을 할 의욕을 주기 위해서는, 월급 이외에 추가의 보너스가 필요했다. 이 부분은 채용 담당자의 설명을 통해 해결이 되었다.

"여러분은 급여 이외에, 회사에서 제공하는 각종 보너스들을 복지포인트를 통해 구입할 수 있습니다. 지금 드시고 계시는 과자들도 당연히 구매가 가능합니다."

지원자들의 숨소리가 커졌다. 다들 급여보다는 이런 복지에 관심이 많은 듯했다.

"아, 참고로 오늘 면접에 참석하신 분들은 면접비 말고 다른 상품들을 선택해서 가져갈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담배, 술들이죠."

"헉!"

지원자 중 여럿이 숨을 삼켰다. 술과 담배라니. 다들 군침이 돋을만했다.

온갖 물품들이 배급되는 와중에도, 술과 담배는 철저하게 통제되곤 했으니까.

"다만, 당연히 비밀로 하셔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이런 기호품들을 받는 것이 알려져 봤자 좋을 리는 없겠죠?"

지원자들은 침묵했지만, 그 침묵은 당연히 동의였다.


한 지원자가 조심스레 손을 들어 질문했다.

"복지포인트로 술과 담배 구매도 가능한가요?"

채용담당자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네, 당연히 가능합니다. 다만, 회사에서 직접 수령해서 가져가야 하니 조심하셔야겠죠."

지원자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그는 갑자기 핸드폰을 들더니 열심히 면접 대본을 보기 시작했다.


그 뒤로도 담당자의 설명은 계속되었지만, 딱히 흥미는 없었다.

야근을 하게 되면 안전을 위해 오늘처럼 경호가 추가된다는 이야기 등등이었다.

민수는 술과 담배를 준다는 말이면 충분했기에, 더 이상 관심을 끊었다.




지원자들이 면접을 보고 나오기 시작했다. 30분 정도씩 걸리는 느낌이었다.

그들은 면접비로 각기 다른 상품들을 골라가기 시작했다. 어떤 남자는 담배 한 보루를, 다른 남자는 담배 몇 갑과 소주 몇 병을 챙겼다. 간식을 챙기는 이도 있었고, 와인 하나를 챙겨가는 이도 있었다.

다들 더 챙겨가고 싶어 했겠지만, 총을 들고 있는 군인의 눈빛 하나로 질서가 유지되었다.


그렇게 슬금슬금 지원자들이 사라져 가고, 드디어 민수의 차례가 왔다.

그는 떨리는 마음으로 면접장에 들어섰다.


"다들 안 쪽부터 차례대로 앉으면 됩니다."

면접장은 넓었다.

면접관 4명이 차례대로 앉아있었고, 그 맞은편으로 의자 3개가 놓여있었다.

딱 봐도 비싸 보이는 회의실 의자와 반듯한 책상들은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지원자들이 차례대로 앉자, 중간의 면접관이 말했다.

"형식적인 자기소개는 됐고, 지원동기부터 물어볼게요. 왼쪽 분부터 차례대로, 이 좀비사태가 터졌음에도 굳이 지원한 진짜 이유가 뭡니까?"

압박면접이었다. 딱 봐도 덩치가 커 보이는 면접관의 말은 카리스마가 있었고 괜히 주눅 들게 만들었다.

"집에만 있다 보니까, 일이 하고 싶었습니다. 단지 그뿐입니다."

왼쪽의 지원자는 짧게 대답했다. 면접관들은 딱히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그다음으로 여자 지원자가 대답했다.

"원래부터, K기관에서 일하고 싶었고 준비 중에 있었습니다. 겨우 좀비 따위가 제 앞 길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면접관들이 풋, 하며 웃었다. 민수도 웃음이 나올 뻔했다.

앳된 보이는 얼굴의 지원자는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지만, 눈빛은 당당했다. 진심인 듯했다.


"그다음 지원자분도 말씀해 주시겠어요?"

한결 너그러워진 분위기 속에서, 면접관이 민수에게 물었다.

민수는 대답했다.

"이렇게 무너진 사회 속에서도, 사회의 일원이 되어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이게 가장 큰 지원동기였고, 두 번째로는 방금 와서 느낀 건데, 술과 담배를 주니 더욱 일하고 싶어 졌습니다."

면접관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들도 뭔가 공감하는 바였던 듯하다.

"솔직한 답변 좋습니다. 계속 이어서 질문하겠습니다."


지원동기 외에는, 딱히 특별한 질문은 없었다.

좀비가 있어도 출근이 가능하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경호 차량이 제공되는데 무서울게 뭐 있냐는 식으로 다들 답변했다. 야근도 상관없냐라는 질문엔 야근비로 술과 담배만 준다면 밤까지 새우겠다는 민수의 답변은 또 웃음을 자아냈다.


한 가지 의아한 질문은 있었다.

"다른 기관에 파견직 느낌으로 일하게 되어도 상관없으신가요? 근무지와 직무는 이곳과 크게 차이가 없습니다."

민수를 포함한 지원자들은 상관없다고 말했다.

면접관의 이 질문에, 민수는 확신했다.

'이거, 오늘 참석한 사람들 그냥 대부분 뽑으려는 거 아닌가?'

누군가를 가려내기 위해 공격적인 질문을 하는 느낌이 아니었다. 하긴, 집에서도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한데 굳이 일까지 하러 온 사람들은 1차적으로 이미 검증된 사람들이 아닌가?

분명, 이 기관 말고도 다른 기관에까지 일 할 사람들을 뽑아내기 위한 면접이었을 것이다. 여긴 다른 기관 몇몇도 인접해 있는 산업단지였으므로.


"수고하셨습니다. 좋아하시는 상품들 챙기시고, 안전하게 귀가하세요."

"감사합니다."

훈훈한 면접이 끝나고, 다른 지원자들은 각자 마음에 드는 물품을 골라갔다.

민수는 술을 골랐다. 담배는 금연하게 된 김에 끊을 생각이었다.

자연스럽게 담배를 집어 들려는 손을 뿌리치느라 살짝 애를 먹었는데, 군인이 의아하게 바라보자 황급히 술을 집어 들고 자리를 떠났다.



정신없이 귀가를 하고 나니, 밤 11시가 가까운 시간이었다.

소주 한 병을 들고 온 민수는 라면을 끓인 뒤, 국물과 함께 한 모금 마셨다.

달달했다. 너무나도.

"와, 이거 미쳤다! 술이 이렇게 달았나?"

허겁지겁 다음 잔을 따라 마셨고, 그다음 잔도 마셔버렸다.

1분 만에 세 잔을 마신 민수는 이러다 큰일 날 것 같아 속도를 줄였다.


그때였다. 창문 밖 저 멀리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탕! 타타다다탕! 탕!"

군대에서 들어본 반자동 총소리였다. 저렇게 여러 발 쏠 정도면 꽤 멀쩡한 개체였을 것이다.


이제는 익숙해진 소리였지만, 지금 술을 마시는 민수에게는 분위기를 깨는 소리였다.

"쩝, 술맛 떨어지게."

민수는 노트북을 켜서 음악을 틀었다. 프리미엄 구독 상품이 끊겨, 중간중간 광고가 나왔지만 이제 월급을 받으면 다시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성천을 제외한 나머지 세상은 여전히 돈으로 돌아가고 있었으니까.


잔잔한 재즈 카페 브금을 세게 틀고, 건빵도 들고 왔다.

아까, 과자도 좀 챙길걸 그랬나. 건빵은 소주 안주로는 매우 부적합이었다.


그동안 술이 없어서 몰랐는데, 민수가 가지고 있는 물품들은 정말 생존에만 필요한 물품들이었지 생활에 필요한 물품들은 많이 없었다.

아쉬운 마음에 건빵을 하나 집어 들고 소주 한 잔을 다시 마셨다.

주량이 딱 1병이었던 민수는 알딸딸하게 술기운이 올라오는 걸 느꼈다.


그때, 핸드폰이 진동했다.

민수의 눈에는 다음의 한 줄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최종 합격 안내]


역시, 합격일 줄 알았다. 민수는 문자내용을 제대로 확인했다.

다음 주부터 오전 9시까지 출근하면 된다고 적혀 있었다.

통근버스 안내와 함께, 여러 내용이 더 적혀 있었지만 술맛을 떨어뜨릴 내용이었다.

민수는 핸드폰을 내팽개친 후 다시 소주를 들이마셨다.


아까보다 훨씬 달콤한 맛이었다.

좀비 사태가 아니었으면, 내가 이렇게 합격할 수 있었을까.

민수에겐 오히려, 좀비 사태가 터진 후 세상이 더 밝아진 느낌이었다.

더욱 기분이 좋아진 민수가 슬슬 잠이 올 때쯤, 핸드폰에 사이렌이 울렸다.


[성천시 긴급 재난 문자 안내]

성천시 곳곳에서 대규모 좀비 이상 징후 발생.

외출 금지

별도의 안내가 있을 때까지 야외 활동을 철저히 금지

추후 보급 장소를 별도 공지할 예정이니 시민분들께서는 안전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민수는 음악 브금을 줄였다. 여기저기 총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분명 저 총소리 아래로 군인들의 비명소리도 울리고 있을 것이다.

잠시 후, 민수의 핸드폰으로 문자가 하나 더 왔다.


[출근 지연 안내]

다음 주 출근 예정이었던 합격자 분들께서는 안전이 확보될 때까지 잠시 대기 부탁드립니다.


민수는 소주병을 내려다보며 읊조렸다.

"아.. 담배도 챙길 걸 그랬네."

매거진의 이전글좀비세상에서도 면접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