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으로 살아남기 2편

누군가에겐 간절할 수 있는 이 자리.

by Nos

처음으로 서류 불합격을 받은 진우는 세상이 마냥 쉽지만은 않다는 걸 깨달았다.

학력, 스펙, 경력 전부 부족하지 않을 텐데, 왜 떨어졌을까?

자소서를 너무 대충 썼나?


불합격한 채용공고는 체험형 인턴 공고였다.

자소서 점수 비중이 70% 이상이었으니, 아무래도 자소서가 문제였던 듯했다.

생각지도 못한 불합격에, 진우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면접비로만 한 달 생활비를 꾸려나가는 알찬 계획이 생각보다 쉽지 않겠구나를 느꼈다.


공공기관은 인턴, 계약직, 정규직 모두 면접비를 챙겨준다. 다만, 정규직은 필기시험을 먼저 봐야 하므로 제외였다. 사기업은 아직 지원하지 않았다. 혹시나 블랙리스트가 되면 다시 취직하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공공기관만 고려하더라도 지원할 곳은 생각보다 많았다. 각종 계약직은 끊임없이 올라왔기 때문에. 지방까지 고려하면 선택지는 훨씬 많았지만, 교통비와 숙박비를 생각했을 때는 오히려 손해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진우가 사는 수도권을 기준으로, 왕복 4시간까지 대중교통으로 방문이 가능한 곳을 기준으로 삼아야 했다.


서류가 전부 합격한다고 치면, 하루에 면접을 한 번씩은 볼 수 있었다. 면접 시간이 겹치는 경우에는 아쉽게도 포기해야 했지만. 하루에 두 번을 넘어 3번까지 면접 일정이 잡힐 때도 있었다. 이러면 하루 일당은 꽤 짭짤했다.


오늘은 딱히 면접이 안 잡힌 날이었기에, 진우는 다시 채용공고를 물색했다. 아쉽게도, 지원할 만한 데가 없었다. 이번 달 까지는 면접 스케줄을 고려했을 때, 생활비는 벌 수 있었지만 다음 달이 문제였다.


지원한 곳들은 10군데가 넘긴 했지만, 불합격도 고려한다면 면접을 얼마나 볼 지 장담할 수 없었다. 한 달 생활비를 50만 원으로 줄인다 하더라도, 간당간당한 수준이었다.

게다가, 최근 들어 면접을 보러 다니면서 싸한 느낌이 있었다.


면접위원은 기억을 못 할 수도 있겠지만, 진우는 분명히 이전 면접에서 봤던 면접관을 봤기 때문에.

3번 이상 만난 면접관들도 있었다. 보통, 취준생들이 여기저기 여러 군데 면접을 보러 다니기에 딱히 이상함을 눈치 못 챘을 수도 있지만, 너무 자주 반복되면 면접관도 의아해할 것이다.


"아.. 이 짓도 끝인가. 좀 더 하고 싶었는데."

저번 달의 생활비를 면접으로 전부 채운 진우는 많이 아쉬웠다. 우선, 내일 면접을 보고 나서 다시 생각해 보자. 진우는 내일 입을 정장을 세탁소에서 찾아온 뒤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면접장에서 똑같은 면접위원을 마주쳤다.

면접위원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진우는 무시한 채, 얼버무리며 대답했다.


합격을 원하지 않았으므로, 1분 자기소개도 대충대충 말하고 더듬거렸다.

진우를 처음 보는 면접관은 다소 실망한 눈빛이었지만, 계속해서 봤던 면접위원은 의미심장하게 진우를 바라봤다. 하지만, 별다른 질문은 하지 않았다. 그저 노려볼 뿐이었다.

진우는 섬뜩했지만, 어찌어찌 면접을 잘 끝내고 나왔다.

다시 면접 대기실로 돌아와서, 담당자에게 면접비가 담긴 봉투를 하나 받았다.


이 얇은 느낌은 분명 지폐 한 장만 들어있는 느낌이다.

5만 원임이 분명했다.

기분이 좋아진 진우는 담당자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오늘은 오랜만에, 조금 비싼 점심을 먹을까.


면접장을 나오며 봉투를 뜯은 진우는, 5만 원이 들어와 있는 걸 확인하고 휘파람을 불었다.

핸드폰으로 주변 맛집을 검색하던 그는 잠깐 화장실에 들렀다. 진우는 섬찟한 느낌에 눈을 핸드폰에서 화장실 내부로 옮겼다가 몸이 얼어붙었다.

진우를 심상치 않게 바라보던 면접위원이 세면대 앞에 있었기 때문.


눈이 마주쳤지만, 진우는 애써 무시한 채 볼일을 보러 갔다.

면접위원은 계속해서 세면대에 서 있었다.

그는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말했다.

"선생님. 취업이 많이 힘드시죠? 꽤 자주 뵙는 거 같네요."

민수는 얼어붙었다. 먼저 말을 걸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면접관은 계속해서 말했다.

"블라인드라 하더라도, 지원 이력은 분명히 남습니다."

부드럽게, 하지만 확실하게 말하는 면접관의 말투는 무언의 경고가 담겨있었다.

진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면접관은 이어서 말했다.

"선생님에게는 이 자리가 가벼울 수 있어도, 다른 지원자에겐 간절히 바라는 곳일 수도 있습니다."

면접관의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면접 자체를 가볍게 보는 진우를 타이르는듯한 눈빛이었다. 그는 진우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은 채, 뒤돌아 나갔다.


세면대로 돌아온 진우는 그제야 숨을 내쉬며 손을 씻을 수 있었다. 면접관의 말을 되짚어 보던 그는 불현듯 깨달았다. 그동안 면접을 보러 다니면서 얼마나 많은 지원자들을 봤던가.

덜덜 떨고 있는 지원자들과 열심히 면접대본을 외우는 지원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인턴과 계약직이다 보니, 대학을 갓 졸업한 사회초년생들이 많았다. 그들을 보며 귀엽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자체가 무언의 폭력이었구나. 누군가에겐 간절할 수도 있는 이 자리를, 그저 면접비만 받기 위해서 지원한 자신의 행동은 너무 가벼웠다. 진우는 더 이상 사회초년생이 아니었다. 그는 이제 목적이 확실한 면접만 보러 다녀야 했다. 누군가를 밀어내면서까지 이 자리에 와야 할 필요는 없었다. 단순히 면접비를 위해 이러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었다.


"하.. 내가 무슨 짓을 한 거람."

생각해 보면 자신도 그랬지 않았던가. 가고 싶은 기업의 서류에 번번이 탈락하고, 행여나 면접을 보러 가게 되면 열심히 대본을 외우고 덜덜 떨었던 적이 분명히 있었다. 그런 자신을, 누군가가 귀엽게 생각했다면 화가 날 것 같았다.


진우는 화장실에서 나와 터덜터덜 걸었다. 애초에 쉴 거면 모아놓은 돈이나 까먹으며 지낼 것을, 왜 굳이 이러고 다녔을까. 집으로 돌아온 진우는, 지원했던 채용공고들을 전부 취소했다.

그러고 나서, 제주도 비행기표와 호텔 숙박비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어정쩡한 생활이 아니라, 진정한 휴식이었다.

진우는 요행으로 번 돈이 아닌, 그가 힘들게 저축해 둔 돈을 쓰기로 결심했다.

그래야, 다음을 위한 길을 걸을 수 있을 것 같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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