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끼리의 회식 2편

by Nos

민기는 아직 술이 더 마시고 싶었다.

"네. 2차는 간단하게 맥주집으로 갈까요?"

"헐. 좋아요. 여기 근처 호프집이 있던데 그쪽으로 가요."

민기와 막내동기가 2차 약속을 잡는 걸 본 다른 동기들이 한 마디씩 했다.

"오? 잘 됐네요. 두 분이서 드시면 딱이네."

"저도 진짜... 함께 하고 싶은데, 오늘 잘 안 들어가네요."

동기들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민기도 따라 일어났다.

"제가 정산하겠습니다. 다들 다음 주에 봐요."

"오? 민기쌤 감사합니다."

"다음 주에 봐요~"

자연스럽게 1차 회식이 끝났다. 민기는 남은 동기들에게 인사하고 자리를 떠났다. 그의 뒤로 막내 동기도 따라왔다.

"지아쌤. 술 많이 드셨나요? 그러면 그냥 맥주만 간단하게 드실까요?"

"음.. 가서 정하죠 뭐. 아직 거뜬해가지고요."

민기가 보기에 지아는 거의 취한 것 같지가 않았다. 그에 반해, 자신은 이미 취한거 같아 조심하기로 했다.

"확실히.. 어려서 그러신가. 체력이 좀 다르시네요. 아직 대학생이라고 하셨죠?"

지아가 민기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네. 아직 휴학 중이에요. 알바하려다가, 여기가 더 저한테 좋을 거 같아서 한 번 지원해 봤는데 덜컥 되가지고 왔어요."

"와.. 대단하시네요. 저는 그때쯤에 진짜 아무런 생각도 없이 놀았는데."

빈말이 아니었다. 민기는 최근에야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취준을 위해 잠깐 노력했을 뿐. 대학시절엔 별생각 없이 그냥 시간만 날려 보냈다.

똑똑한 사람들은 대학시절부터 이렇게 미리 경력도 쌓으면서 준비를 하는구나.

"에이, 사람마다 속도가 다르잖아요. 저도 사실은 나이가 좀 있어요."

"몇 살이신데요?"

"00년생이에요."

"어.. 대학교 몇 학년이라 하셨죠?"

"3학년이요."

"아? 그렇네요. 휴학을 좀 하셨었나 보네요."

지아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하.. 이건 진짜 술 없이는 말 못 하는 이야기예요."

민기는 아차 싶었다. 혹시 자신이 건들면 안되는 부분을 건드린걸까.

"어.. 혹시 불편한 이야기면 안 하셔도 됩니다."

"아니에요. 이왕 이렇게 된 거 무조건 민기쌤한테 얘기해야겠어요. 그냥 제가 편입 준비를 하다가 실패한 이야기거든요."

민기는 깜짝 놀라 대답했다.

"헐. 저도 편입했었는데요? 토익 편입이요."

민기의 말에 지아도 놀란 듯 되물었다.

"헐, 민기쌤도 편입했었구나? 제 동지가 있었네요?"

"저도 2년 정도 고생해서 편입했었죠. 계획을 잘못 세우는 바람에 1년 늦게 편입하게 됐지만."

"민기쌤은 성공하셨나요? 전 편입영어로 좀 높은 대학 준비하다가 끝내 실패했는데."

민기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적당한 말을 찾느라 머리가 점점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어.. 저는 성공하긴 했는데, 토익으로 했었으니까요."

"하.. 부럽다. 남은 이야기는 호프 집에서 마저 해요. 전 그냥 소주나 마셔야겠다."

민기는 웃으며 대답했다.

"네 그럽시다."




호프 집에 들어선 그들은 자리를 하나 잡았다.

적당히 시끄럽고, 다양한 연령대가 앉아있는 곳이었다.

"저는 아까 말한대로 소주나 마실래요. 민기쌤 때문에요."

지아가 장난기 가득한 눈빛으로 말했다. 지아는 그냥 소주가 마시고 싶었던 것 같았다.

민기도 그걸 눈치채고 한 마디 내뱉었다.

"그냥 소주가 마시고 싶었던 거 아니에요?"

지아가 뜨끔한 듯 새침하게 말했다.

"아니거든요. 진짜, 갑자기 편입 실패한 생각이 나서 어쩔 수가 없었어요."

편입 얘기는 지아가 먼저 시작했었는데. 혼자 북치고 장구치는 거 아닌가 싶었지만 민기는 그 사실까지 말하진 않았다. 뭐, 그럴 수 있지.

"네네. 그러면 그냥 어묵탕 하나랑 차돌숙주볶음 하나 시킵시다 저희."

지아의 눈이 반짝 빛났다.

"헐. 너무 좋은데요? 혹시 안주 고르기 학과 수석이에요?"

이건 또 무슨 농담인 걸까. 나이 차이가 크게 나지도 않지만 민기는 지아의 드립을 받아치기가 힘들었다.

"하하하, 그냥 정석 안주죠 뭐."

민기는 키오스크로 안주랑 소주 하나, 맥주 하나를 담고 주문했다.

소주와 맥주는 1분도 되지 않아 바로 나왔다.

종업원이 친절하게 술병을 갖다 주자, 지아는 바로 소주병을 낚아채더니 소주잔 2개에 바로 채운 후 민기에게 들이밀었다.

"제 편입 얘기 듣고 싶으면 한 잔 받으시죠. 민기 쌤."

민기는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한 입에 들이킨 민기는 소주가 아까보다 훨씬 쓰다는 걸 느꼈다. 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신 후, 지아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러면, 이제 들을 준비가 된 건가요?"

지아가 웃으며 말했다.

"아직 안주가 안 나와서요. 그때 짠 한 번 더 해주셔야 해요. 제 이야기는 쉽게 들으실 수는 없거든요."

"소주 2잔 정도에 듣는 거면 쉬운 거 같은데.."

지아가 민기를 째려봤다. 민기는 리액션이 풍부한 지아를 보며 재밌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이런 사람이 그 재미없고 지루하면서 양은 방대한 편입 영어를 공부했다고?

빨리 그 얘기를 듣고 싶었지만, 안주가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남았다.

민기는 이왕 이렇게 된 거 본인의 이야기를 먼저 해주는 게 나을 거 같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가 편입을 하게 된 계기부터.




학창 시절에 공부를 하지 않았던 민기는 대학에서 동기들의 수준을 보고 절망했다.

아무리 그래도, be 동사도 제대로 쓸 줄 모르고 화학의 기본 단위인 mol도 모르는 게 말이 되나.

지금에서야, 그걸 모른다고 무시하거나 자기가 우월감을 가지려는 마음은 하나도 없지만 그땐 너무 충격적이었다. 자신이 그들과 같은 수준으로 묶이고 싶지 않았다. 그거 하나만으로도 편입을 준비할 이유는 충분했다.


자신은 남들과 수준이 다르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그는 열심히 공부를 시작했다.

맹목적이다시피 공부한 그는 남들이 다 놀 때 도서관에서 쓸쓸하게 공부해야 했다.

2년의 우여곡절 끝에, 그는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지만 생각보다 기쁘지 않았다.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사회성을 기르지 못한 그는 편입한 대학에서도 마찬가지로 혼자 지내야 했다.

지긋지긋한 공부는 편입 후에도 더 열심히 해야 했지만, 그는 결국 손을 놓아버렸다.

학점은 완전히 망하진 않았지만, 번듯한 대기업에는 명함도 내밀지 못할 수준이었다. 그가 얻은 것은 꼴랑 학위 하나. 하지만 잃은 것은 너무나 많았다.

그저 맹목적인 노력만 하면 공허한 성취만 낳을 뿐이란 걸 그때 깨달았다.


그 시절을 떠올린 민기는 목이 잠깐 잠겼다. 눈물이 나올 것 같진 않았지만, 쓸쓸한 마음에 살짝 울컥할 것 같았다. 편입을 실패한 게 문제가 아니라, 그 이후를 너무 쓸모없이 시간을 보낸 느낌이다.

그런 민기에게 지아는 한 마디 했다.

"그래도, 민기쌤은 성공하셨잖아요. 저는 그게 부러워요. 대학 학위 한 장이라도 받았다는 게. 저처럼 실패한 사람은 진짜 남는 게 하나도 없어요."

민기는 조금 무안했다. 편입에 실패하더라도 뭔가 남는 게 있지 않았을까?

"어.. 그래도 편입 영어 공부한 게 도움이 되거나 그러지 않나요? 게다가, 공부하면서 잡힌 습관이나 성실성은 인생에도 도움이 될 거 같은데."

민기는 편입 준비를 하면서 생긴 공부 습관과 삶의 태도가 간접적으로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 덕분에 졸업 전에 가까스로 정신을 차려 자격증도 따고 이렇게 인턴도 하고 있지 않은가.

만약 자신이 시험에 떨어졌어도, 편입을 준비하면서 생긴 성실성과 최선을 다했다는 경험은 분명 자신에게 남은 소중한 자산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민기의 생각이었다.

"에이. 그건 합격하셨으니까 할 수 있는 말이죠. 저처럼 떨어진 사람은 그냥 시간만 날린 거예요. 영어 실력이 늘긴 했어도, 이걸 도대체 어따 써먹어요? 공기업은 영어 과목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스펙 하나 따놓으면 끝이잖아요."

지아는 한숨을 쉬었다. 민기는 지아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했다.

어쩌면, 자신은 그냥 합격했기 때문에 이렇게 말을 할 수 있는 걸 지도 모른다고. 떨어져도 상관없다고 말했지만, 자신은 떨어진 적이 없으니 그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누군가에겐 기분 나쁠 수도 있겠구나.

자신은 정말 결과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겠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듣는 사람에 따라 기만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구나. 무안해진 민기는 말없이 잔을 홀짝거렸다. 복잡한 심정이었다.

그는 그냥 잔을 들어 지아의 잔에 갖다 댔다.

"..짠."

"..민기쌤 죄송해요. 제가 아직 그때 상처를 못 잊어서 좀 울컥했네요."

"아닙니다. 저도 뭐.. 만약 불합격했으면 아까 전처럼 말하진 못했을 거 같네요."

어색해진 분위기에, 지아는 말없이 소주를 더 따랐다.

민기는 이제 슬슬 진짜 취할 것 같았지만, 지금은 도저히 술을 거절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편입에 실패하고 나서 제가 가장 먼저 한 게 뭔 줄 알아요?"

"뭔데요?"

"침대에서 하루 종일 운 거. 그다음에는 관련 책들을 다 갖다 버린 거예요.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아 다음날은 노래방에 갔죠. 목이 쉬어라 몇 시간을 부르고 난 다음에는 좋아하는 떡볶이를 먹었어요. 그때, 아직도 기억에 남는 건 날씨가 너무 좋아서 화가 났다는 거예요."

지아는 혼자 소주잔을 바로 들이켜더니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내 마음은 흐리다 못해 폭풍우가 몰아치고 있었는데, 세상은 그런 나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었죠. '뭐 어쩌라고? 너 하나 그런다고, 이 거대한 세상이 다 같이 슬퍼해줘야 해? 뭐 날씨가 니 기분에 따라 조정돼야 하나?' 이렇게 말하는 거 같았어요. 그때 깨달았죠. 세상은 정말로, 나에게 무심하다는 걸."

지아는 목이 말랐는지 물을 한 잔 따랐다. 그 후에 소주잔에 다시 술을 따른 후 말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고 나니 오히려 그런 무관심이 또 위안이 되더라고요. 그래, 어차피 나한테 관심 없으니까 이제는 나도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볼게. 그래서, 그냥 복학하고 그동안 참았던 술도 마시고 애들이랑 친하게 지냈어요. 왜 그동안 공부한다고 애들이랑 벽을 쌓고 살았을까라고 후회했네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어느새 지아의 눈은 촉촉해져 있었다. 조금 있으면 눈물이 흐를 기세였다.

민기는 차돌숙주를 한 젓가락 집어 들며 말했다.

"차돌숙주 이거 식겠습니다. 빨리 드시죠."

말없이 차돌숙주를 집어든 민기는 자신이 먹으려다가, 지아의 그릇에 그냥 덜어주었다.

그새 지아는 냅킨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었지만 민기는 못 본체했다.

'지아 씨한테는 편입이 좀 아픈 손가락이구나. 다음부턴 이야기하면 안 되겠다.'

민기에겐 이제 추억이 되었지만, 그건 성공한 자의 과거 회상일 뿐. 누군가에겐 평생 떠올리기 싫은 과거일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아.. 편입 잊었었는데, 어떡하실 거예요 민기 씨."

"술이나 마십시다."

말없이 그들은 술을 기울였다.

실패한 과거를 곱씹던 지아는 곧 달콤한 소주맛에 취해버렸다. 민기는 이미 한계였기에 점점 혀가 꼬부라지는 걸 느꼈다. 지아는 자신의 상처를 소주의 알코올로 소독하려는 듯 계속해서 마셨다. 민기는 차마 말리지 못하고 그저 홀짝일 뿐이었다. 자신은 성공했지만, 그럼에도 편입을 위해 바친 소중한 청춘의 시간도 그 자신에겐 아직 아픈 손가락이었다.

둘은 소주의 알코올로 과거의 상처를 소독하기 위해 계속해서 마셨다.


아직 그들은 실패와 상처의 쓴맛을 느끼며 울기엔 너무 젊고 새파란 청춘이었다.

하지만, 그런 어린 새싹들이야말로 실패에 더 민감하고 과거에 헤어나올 수 없는 법이다.

나이는 어른이지만, 마음은 아직 어린 그들이 실패를 이겨내기엔 좀 더 시간이 필요했다.

이제야 겨우 학생을 벗어나 사회에 첫 발을 디딘 민기와 지아.


편입을 성공한 민기는 이후의 학과생활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 채 상처를 입었다.

반면에. 지아는 편입에 실패하여 상처를 얻었지만 학과생활은 누구보다 잘 즐기고 있었다.

그들은 편입이라는 시험에서 서로 반대의 결과를 얻었지만, 비슷한 상처를 공유하고 있었다.

그래서, 서로의 상처가 더 눈에 잘 보였다.

민기와 지아는 각자의 상처를 더 꺼내며 알코올로 소독했다.

점점 흐릿해지는 의식과 함께 밤은 깊어져갔지만, 그들의 눈은 별처럼 어둠속에서 더 빛났다.




다음 날, 머리가 깨질듯한 숙취에 민기는 정신을 차렸다.

집에 어떻게 들어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지아를 택시 태우는 것까진 기억이 났다.

민기는 핸드폰을 열어 카톡을 확인했다.

다행히, 이상한 카톡을 보낸 건 아니었다.

[ㅈ심히 들허가세여ㅛ. 다으주에 가요.]

만취로 인해 오타가 나긴 했지만, 이 정도면 뭐 자신이 예전에 필름 끊기고 지른 실수에 비하면 애교였다.

시간은 이미 11시가 넘었다.

민기가 해장하기 위해 폰을 집어 들고 밖으로 나가려던 그때, 지아에게 카톡이 왔다.


[민기쌤. 제가 그쪽으로 갈 테니 같이 해장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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