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천시 스터디카페 5편

점점 위험해지는 민국

by Nos

11시쯤 일어난 민국은 미적거리며 핸드폰을 확인했다.

단체 메신저방에 올라와있는 지태의 퇴실은 충격적이었다. 왜 하필 지금일까? 수상해도 너무 수상했다.

의문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도대체 고시원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재현이 보낸 개인 메시지를 확인한 민국은 당혹스러웠다.


성천시에는 분명 술이 금지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음주로 인한 좀비 사고는 항상 예기치 않게 일어났기에 아예 전면으로 통제해 버렸다. 물론, 불법적으로 술을 구하는 루트는 존재했지만.

하지만, 그만큼 비싸고 위험했기 때문에 알코올 의존증이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금주를 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술을 좋아하는 민국도 그렇게 끊게 되었고.

그런데, 술을 마실 수 있다고? 재현의 달콤한 제안에 민국은 망설여졌다.

꼭 술 때문이 아니더라도, 재현이 숨기고 있는 듯한 고시원의 비밀을 파헤치고자 한 민국은 답장을 보냈다.

[네 알겠습니다. 오후에 들어가서 뵙겠습니다.]




짐을 대충 꾸린 민국은 다시 고시원으로 돌아왔다. 로비에는 재현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민국은 그가 자신을 감시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재현이 반갑게 인사했다.

"저녁에 이따 한 잔 하실까요? 제가 몰래 아껴뒀던 술이 좀 있어가지고요. 물론, 2병 이상은 절대 안 됩니다."

재현을 유심히 바라보던 민국이 대답했다. 딱히 수상해 보이는 행동은 없었다.

"저야 귀한 술 먹을 수 있으니 좋죠. 그러면 6시쯤에 뵙겠습니다."

그렇게 인사를 하고 돌아가려던 찰나에, 민국은 재현을 멈춰 세웠다.

"어.. 혹시 그 지태 씨가 쓰던 방 제가 써도 될까요? 지금 쓰는 방이 그래도 사람 죽은 방이라 그런지 좀 찜찜하네요."

재현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 그가 의아해하며 민국에게 물었다.

"어, 뭐 상관은 없는데요. 청소도 좀 해야 하고 월세도 더 내셔야 할 텐데요?"

"아, 그건 바로 납부하겠습니다. 청소도 혹시 제가 해도 될까요?"

재현은 고민하는 듯 미간을 잠깐 찌푸렸다가 민국을 보며 말했다.

"그러면 내일부터 이용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제가 한 번 간단한 청소는 해드릴게요. 열쇠는 청소하고 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근데, 혹시 몇 호인가요?"

재현이 놀라며 대답했다.

"어? 알고 계신 줄 알았는데 모르셨구나? 바로 옆방인 206호예요. 그래서, 제가 왜 굳이 바꾸시나 의문이 들었는데 찜찜하시다 하니 뭐."

"그랬군요. 아무튼 알겠습니다. 혹시, 청소는 언제 하실 생각인가요?"

민국은 물어보고 아차 싶었다. 좀 수상해 보이지 않았을까.

재현은 민국을 의미심장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음.. 저희 술 먹기 전에는 청소해야겠죠? 뭔가 독촉하시는 거 같은데 더 빨리 할까요?"

"아, 아뇨. 오늘 밤에 그냥 바로 지태 씨 방에서 잘까 싶어서요. 방이 좀 으스스하다 보니까."

재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귀신같은 거 안 믿으신다고 했던 거 같은데, 확실히 좀 다르긴 한가 봐요?"

"하하, 네 좀 그렇네요. 그러면 청소하시면 바로 제가 방 옮기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세요."


민국은 의심쩍어하는 재현을 뒤로하고 방으로 올라갔다.

재현은 그가 계단에서 사라질 때까지 끝까지 노려보고 있었다.




고시원의 침대에 돌아와 뭉그적거리던 민국은 옆방의 인기척을 느꼈다.

재현이 청소를 하는 듯했다. 민국은 벽에 바짝 붙어 소리에 집중했다.

계속해서 인기척을 살피던 그는 이상함을 느꼈다.

'이거.. 청소가 아니라 물품을 뒤지는 거 같은데?'


옆방에서 나는 소리는 서랍을 여닫는 듯한 소리나 옷장을 뒤지는 소리 같은 것만 들렸다.

바닥을 쓸고 닦는 듯한 소리는 없었다. 아무리 들어도 청소를 하는 소리는 아니었다.

무언가를 찾아내려는 소리가 분명했다. 그렇다면, 재현이 지금 지태가 남긴 흔적을 찾으려고 하는 게 아닐까.

생각을 마친 민국은 부리나케 일어나서 옆 방으로 향했다.

이대로 놔두면 소중한 단서가 사라질 위험이 있다.


방에서 나온 민국은 옆방이 열려있음을 확인했다.

문을 벌컥 열자, 재현이 책을 훑고 있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재현은 민국이 낸 인기척에 고개를 돌아봤다.

"어라? 민국 씨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재현의 말투는 퉁명스러웠다. 민국은 생각해 둔 핑계를 댔다.

"아, 그때 지태 씨가 공부하던 책이 제가 준비하던 거랑 다소 겹쳤던 거 같아서요. 혹시 책도 놔두고 갔나 싶었으면 제가 좀 가져가고 싶어서 왔습니다."

"아~ 이거 공무원 책 말이죠? 안 그래도 저도 흥미로워서 쳐다보고 있었는데, 음.. 이거 필요하세요?"

"네. 저도 있으면 좋아서요."


재현은 책을 촤라락 펼쳐보더니, 이윽고 말했다.

"알겠습니다. 저도 대충 훑어봤는데 그렇게 특별한 교재는 아닌 거 같네요. 어차피 이 방에서 지내실 거면 그냥 여기 놔둘게요?"

"네, 그렇게 해주세요."

"이제 청소 좀 할 테니 가보셔도 될 거 같네요."

재현이 부드럽게 타이르듯 말했다.

하지만, 민국은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제가 너무 죄송해서 그런데, 화장실 청소는 제가 하겠습니다."

재현이 눈동자를 굴렸다. 뭔가 꺼림칙해하는 눈치였지만, 민국은 못 본 척했다.

"아휴.. 뭐 그러면 저도 더 이상 거절할 명분이 없네요. 그렇게 합시다."


재현이 포기한 듯 말했다. 민국은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은 민국의 방과 딱히 다른 점은 없었다.

바닥은 생각보다 깨끗했고 서랍도 평범했다.

무슨 단서라도 없나 싶어 꼼꼼하게 뒤져봐도 마찬가지였다.

'아, 젠장. 내가 뭘 기대한 거야.'


화장실 청소를 마치고 나오자, 재현도 청소를 대충 끝낸 듯했다.

쓰레기봉투를 들고 나오며 재현이 말했다.

"딱히 소지품도 없어서, 치울 만한 것도 없네요. 저 책이 거의 전부인 듯한데.. 가지시려면 가지세요."

"네네, 감사합니다. 이따 봬요."


재현이 떠나고 난 뒤 민국은 자신의 짐을 서둘러 옮겼다. 방은 민국이 쓰던 곳과 크게 다른 점이 없었다.

짐을 다시 푼 민국은 지태의 방을 꼼꼼하게 살펴보기 시작했다.

장판 이음새, 에어컨 필터, 심지어 침대 매트리스 밑까지 전부 들춰봤지만 별 다른 게 없었다.

아무리 뒤져봐도 메모 하나 나오지 않자, 민국은 포기했다.

"아.. 진짜 뭐 없나? 그게 진짜 꿈이었다고?"

침대에 드러누운 민국은 망연자실했다.

이곳에서 일말의 단서라도 얻을 거라 기대했지만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그때, 실망한 민국의 눈에 지태가 남기고 간 문제집이 들어왔다.

설마? 저 문제집에 무슨 단서가 있지 않을까.


민국은 일어나서 문제집을 하나씩 들춰봤다.

문제집은 일반적인 수험생들처럼 평범하게 문제를 푼 흔적이 가득했다.

회독수를 표시한 부분과, 중요한 부분에 밑줄을 쳐 놓은 것까지.

좀 지저분했지만 열심히 공부를 했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형광펜으로 단어를 하나씩만 칠해둔 부분은 어딘가 어색했다.

일부러라도 메시지를 남기려 한 것처럼.


'어.. 이거 혹시? 설마, 앞부분부터 차례대로 보면 글자가 되는 건가?'

민국은 꼼꼼하게 앞부분부터 확인하며 글자를 조합하기 시작했다.

[블.로. 그. 접. 속. 부. 탁.]

이건 확실하게 지태가 무언가를 알리기 위한 단서가 맞았다.

국어 문제집에는 이 외에는 다른 글자가 없었다.

블로그라니, 전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아마도 그 계정에 지태가 남긴 글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누가 이런 장난을 치겠는가?


블로그에 접속하기 위해서는 아이디와 비번이 필요했다. 국어 책을 더 뒤져봤지만 다른 내용은 찾을 수 없었다. 그러면, 다른 문제집에 아이디랑 비번을 메모해 둔 게 분명했다.

민국은 옆에 있던 영어 문제집을 펼쳤다.

역시, 형광펜으로 철자 하나씩 칠해진 부분이 보였다.

앞부분부터 보다가, 색깔이 바뀌기도 했는데 이유는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아이디와 비번을 나눈 거겠지.


영문자를 조합한 민국은 여러 포털 사이트에 그대로 쳐봤다.

접속이 되지 않았다.

'어라, 왜 안 돼?'


분명, 이렇게 형광펜을 칠해둔 걸 보면 블로그에 뭘 써둔 건 확실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하마터면 그냥 버려질뻔한 문제집에 왜 그런 수고를 다 했겠는가?

곰곰이 생각하던 민국은 자신이 바보 같은 짓을 했음을 깨달았다.

'아! 수학문제집에 있는 숫자를 왜 생각 못했지?'


수학 문제집에도 역시 숫자들에 형광펜이 칠해져 있었다.

영어 문제집과 같은 색깔로 칠해둔 걸 확인한 민국은 이리저리 조합했다. 영어와 숫자를 적절하게 조합하여 입력을 해보았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 포털사이트에 바로 접속되었다.


민국은 고개를 앞으로 기울여 열심히 노트북을 보기 시작했다.

지태가 만든 블로그에 분명 고시원과 관련된 이야기가 적혀 있을 것이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넋두리, 음식, 수험생활 등에 관한 일기였다.

딱히 특별한 내용이 없었다. 민국은 실망했지만, 끈질기게 페이지를 넘겨가며 글을 읽었다.


그렇게, 20분 동안 열심히 글을 읽던 민국의 눈에 비공개 게시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클릭한 민국은 그대로 몸이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혹시나, 이 글을 읽고 있는 분이 있다면 제가 남긴 암호를 푸신 분이실 겁니다. 과연 이 글을 읽어 줄 분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민국은 글들을 마저 읽어 내려갔다. 시간대별로 글을 읽어가던 그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읽을수록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이 미친 새끼들..'


지금, 저녁 약속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재현은 저녁에 먹을 술을 위해 분주하게 방을 정리하고 있었다.

아끼던 술과 안주들을 꺼내온 뒤 세팅을 하느라 바빴던 그는, 뒤늦게 핸드폰으로 온 메시지를 확인했다.

[민국: 스터디장님 죄송합니다. 제가 지금 몸이 안 좋아서, 술을 못 먹을 거 같네요. 혹시 다음으로 미뤄도 될까요?]


문자를 본 재현은 소리를 지르며 핸드폰을 던졌다.

"아, 시발놈이 진짜 신경 거슬리게 하네."

방 안에 있던 스터디원들이 깜짝 놀라 재현을 쳐다봤다.

"왜요? 재현오빠? 무슨 일 있어요?"

"형님, 왜 그래요?"


재현이 가까스로 화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얘들아. 그냥 우리끼리 술 먹자. 이 새끼가 몸 아프다고 안 온다네?"

재현 옆에 앉아 있던 키 큰 여자가 눈을 크게 떴다. 아침 점호 때 민국의 옆에 있었던 여자였다.

"어라? 아까까지만 해도 멀쩡하다 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말이야. 화장실 청소도 졸라 열심히 하더만 왜 이래 갑자기?"


술잔을 정리 중이던 남자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민국의 옆에서 게임 이야기를 하던 남자였다.

"형, 지태 새끼 그 방에서 뭐 나온 거 아니에요?"

"아냐. 내가 졸라 꼼꼼하게 확인했어. 하필, 그 방 계속 쓴다고 지랄해서 더 꼼꼼히 살펴봤어."

"그러면, 그냥 진짜 갑자기 아픈 걸 수도 있지. 지태 걔 방에 무슨 바이러스라도 남아 있었던 거 아니야?"

육포와 각종 과자를 들고 나온 다른 여자가 말했다. 그녀의 옆에는 남자친구도 같이 있었다.


재현이 한숨 쉬며 말했다.

"그랬으면, 나도 진작에 앓아누워 있었겠지. 그나저나, 민국이 뭔가 눈치 깐 거 같으니까 빨리 진행하자."

"아휴, 잔소리는. 어차피 이런 데인 줄 상상이나 하겠어? 재현 오빠는 너무 걱정이 많다니까."

키 큰 여자가 웃으며 말했다. 그녀의 손에는 이미 육포가 들려 있었다.

"..그래, 그냥 술이나 먹자."


재현의 방은 2층에 있는 방들보다 2배는 넓었다. 가운데에 테이블을 놔두고도 다섯 명이 둘러앉기에는 충분했다. 각자 원하는 술을 따른 뒤 건배를 하자, 분위기는 금세 시끌벅적해졌다.

재현의 옆에 앉아있던 남자가 한 잔 마시더니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캬, 진짜 이렇게 맛있는 술을 마시지 말라니. 성천시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 거야."

여자친구가 그 모습을 보더니 기가 찬 듯 말했다.

"누가 보면 성천시 사람 아닌 줄 알겠네."

"에이, 우리는 처음부터 여기서 살진 않았잖아."


재현은 말없이 술을 조용히 홀짝이고 있었다. 머릿속에는 민국에 대한 생각으로 혼란스러웠다.

'하여간, 골치 아픈 새끼'

그런 재현을 바라보던 키 큰 여자가 다시 물었다.

"그나저나, 지태가 그렇게 돼서 어떡해요? 이러다 우리 회장님한테 혼나는 거 아니에요?"

재현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여간, 지태 그 새끼. 그동안 잘 버텨주다가 하필이면.."

그가 술잔을 다시 채웠다. 소주를 가득 따른 뒤, 입에다 털어 넣으며 말했다.

"그래도 괜찮아."

"뭐가 괜찮아요?"

재현이 여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입꼬리는 섬뜩하게 올라가 있었다.

"우린 민국이가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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