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이슬아 님의 글쓰기 이야기.
INTRO
<공공기관 취업 실패기>를 연재하면서, 한 가지 느낀 점이 있습니다.
옛날의 과거를 되짚어 보니, 제가 생각보다 상처를 많이 받았었구나라는 걸 느꼈고, 또 행복한 시절도 있었다는 것을요.
바쁜 일상 속에서 그저 흘려보냈던 내 삶은 아무 의미 없이 흘러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우여곡절도 많았고 나에게 의미 있었던 일들도 있었더군요.
글쓰기는 분명, 글 쓰는 행위 자체를 넘어서 작가 본인에게도 좋은 영향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글쓰기에 대한 강연을 찾아보다가 유명한 이슬아 작가님의 강연을 찾아서 듣게 되었습니다.
그 내용을 여러분에게 들려드리고 싶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강연 초반부에서 작가님은 본인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1992년생으로 19살에 독립하여 29살인 지금(강연 기준) 10년간 여러 직업을 거쳐왔는데,
잡지사 기사 3년, 누드모델 3년, 모델을 하면서는 웹툰 작가도 하셨고,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글쓰기 교사도 하셨다고 합니다.
모든 것은 월세와 생활비를 해결하기 위한 노동이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본인이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 그저 생계를 해결하기 위한 일이었기에 이렇게 표현하신 듯합니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2500만 원 정도의 학자금 대출이 남아 있었기에 이를 갚기 위한 부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게 바로, 그 유명한 <일간 이슬아 프로젝트>였습니다.
평일 월화수목금 동안 한 편의 글을 구독자에게 이메일로 발송하는 프로젝트로, 한 달 구독료 10,000원으로 시작한 프로젝트는 생각 이상으로 인기를 얻게 되었다고 하네요.
2018년에 시작하여 2020년까지 지속을 하고 있다고 하며, (강연을 한 날이 2020년) 현재에는 아마 글쓰기와 관련된 일로 생계를 꾸려나가고 계시지 않을까 싶네요.
간략한 소개가 끝난 후, 본격적으로 이슬아 작가님이 글쓰기에 대한 내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이슬아 님이 말하기를, 글쓰기는 마음을 부지런하게 하는 속성이 있다고 합니다.
작가님 본인도 게으른 마음이 들 때가 있다고 합니다. 대충 보고, 빠르게 판단하고, 함부로 단정 짓는 본인의 모습을 볼 때 이를 실감한다고 하네요.
하지만, 글쓰기를 할 때는 이렇게 무심히 지나치는 것을 유심히 보게 하기에, 글쓰기는 마음을 부지런하게 한다고 합니다.
글쓰기가 마음을 부지런하게 하는 이유는 대상에 대해 깊이 생각을 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생각과 말은 빠르게 흘러가 버리지만 글은 그렇지 않습니다.
글은 일련의 논리와 흐름이 분명히 갖춰줘야 하기에 생각이나 말과 달리 정리되어야 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이런 행위는 부지런해야지만 할 수 있는 행위입니다.
이처럼, 글을 쓴다는 행위는 대충 보고 판단했던 내용들을 한 번 더 관찰하게 만드는 속성이 있습니다.
이 관찰 과정을 거쳐야만 글이 써지기에, 글쓰기는 필연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부지런하게 만듭니다.
작가님은 어릴 때부터 일기를 써왔다고 합니다.
내성적이고 쑥스러움이 많았던 아이였기에, 하루를 곱씹으며 장면과 대화를 복기했는데요.
일기를 쓰는 주된 동력은 '아쉬움'이었다고 합니다.
필요한 말을 제 때 하지 못하고, 좋은 생각이 늦게 들기도 하며, 흘러간 순간에 대한 아쉬움을 어릴 때부터 느끼셨던 거 같습니다.
이렇게 글을 쓰는 날은 인생을 두 번 사는 느낌이 든다고 합니다.
인생을 겪으면서 1번, 해석하면서 1번 사는 느낌이라고 하는데요, 이렇게 인생을 두 번 살게 되다 보니 삶에 대한 기억력의 화질, 즉 해상도가 높아진다고 합니다.
INTRO에서 말씀드렸듯이, 저도 <공공기관 취업실패기>를 연재하면서 과거를 잠깐 살아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짧게 기록해 뒀던 그 감정들을 복기해 나가면서 과거의 상처와 즐거움을 복기한 그 과정은 인생을 한 번 더 사는 기분이었습니다.
글이라는 것은 가장 정제된 생각이며 자전적 에세이는 내 과거의 삶을 복기하는 과정이라 그렇습니다.
우리의 무의식은 모든 것을 기억한다지만, 의식 속에 떠오르지 않으면 그것은 재생되지 않는 영상일 뿐입니다.
어쩌면 그대로 묻혀버릴 영상 속에, 우리의 소중한 추억과 깨달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글쓰기는 그렇게 묻힐 수 있는 영상을 다시 끄집어내어 재생하는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글쓰기를 꾸준히 하다 보면, 글의 주어는 '나'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나'에 대한 글은 금세 바닥이 나고, 2인칭, 3인칭 화자에게로 확장이 됩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무심히 내뱉은 혼잣말도 기억하고 누군가의 고민도 곱씹게 됩니다.
그렇게 자신의 게으른 마음에 안주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마음과 삶에 지속적으로 접속하게 됩니다.
이것은 시선을 이동하여 남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연습이기도 하며 나 자신에게만 갇히지 않는 멋진 일입니다.
또한, 입체적인 관찰을 통해 상대의 여러 모습을 헤아리려는 의지이기도 하죠.
우리가 누군가를 알면 알수록 단순하지 않고 복잡하고 풍부한 사람인 걸 알게 됩니다.
글쓰기는 이러한 입체적인 타인들을 잘 설명하기 위해 풍부한 표현을 준비하고 고민하는 과정이기에,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롤랑 바르트의 말을 하나 소개하자면,
글쓰기란 사랑하는 대상을 불멸화 하는 일이다.
블로그를 하든, 웹소설을 쓰든, 처음의 주제와 장르는 보통 본인이 제일 잘 아는 내용일 겁니다.
소설 속의 주인공은 "나"의 성격을 가장 많이 본뜬 인물일 것이며, 블로그 포스팅의 내용은 내가 관심 있는 주제일 겁니다. 처음 글을 쓸 때는 내가 제일 잘 아는 내용이 제일 쓰기 쉬우니까요.
하지만, 글을 쓰다 보면 더 이상 "나"에 대한 내용은 떨어집니다.
쓸 내용이 떨어짐에 따라, 우리의 관심사는 외부의 대상으로 확대됩니다.
나 자신에게 갇혀 있던 글쓰기가, 타인의 시선으로 옮겨가는 행위라는 것이죠.
작가님은 이 과정을 사랑이라고 표현한 것 같습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무언가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그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을 표현할 때는 글쓰기만큼 좋은 도구가 없습니다.
글은 그 세상을 포착하여 기록으로 남기는 행위니까요.
그렇게 기록으로 남아서 흩어지지 않게 만든다면 우리는 이것을 불멸화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대상을 풍부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그리고 기억에 잊히지 않기 위해서 기록으로 남기는 행위.
나를 사랑하는 것을 넘어서 나 외의 타인과 세상을 사랑하게 되는 것.
그렇기에, 글을 쓴다는 것은 부지런히 사랑하며 세상을 살아가는 행위라고 작가님은 말하는 듯합니다.
삶은 계속해서 흘러가는데, 그 흐르는 순간을 포착하여 기록해 두는 일.
그 기록을 위해선 부지런해야 하며, 입체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대상을 주의 깊게 관찰하게 되고, 그 관찰은 결국 사랑의 과정이라는 것.
속절없이 흘러가는 순간을 포착하여, 나의 마음에 기록하고 한없이 추억하는 행위.
이것이 사랑이 아니면 무엇이 사랑일까요?
나 자신의 과거를 추억하며 쓰는 자전적 에세이는 결국 나 자신을 사랑하는 행위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작가님 강연의 내용을 풀로 듣고 싶으시다면, 아래의 링크에서 확인하시면 되겠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r6z0JdcxbI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