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일기' 김애리 작가님의 강연 후기
이번에 소개해드릴 강연은 <어른의 일기> 책을 쓴 김애라 작가님의 강연 '평범한 일상을 특별하게 만드는 글쓰기'입니다. 18살 때부터 21년간 일기를 써서 47권의 일기를 썼다고 하시는 김애라 작가님은 어려서부터 생각이 많고 복잡한 아이였다고 합니다. 사랑 결혼 이별 죽음 이런 문제에 대해서 깊이 고민하고 밤잠을 설쳤다고 하는데요.
마음에서 말들이 차고 넘쳐서 덜어낼 공간이 필요했던 작가님은 뭐라도 쓰면 마음이 시원해진다는 걸 느꼈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바로 일기를 쓰게 된, 변화의 시작이었다고 하며 본격적인 강연을 시작합니다.
- 거창하고 대단한 뭔가를 적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
작가님은 엄마아빠 뒷담화, 연애사를 대하소설처럼 쓰기도 하고 오늘 해야 할 일을 그냥 적기도 했다고 합니다. 어차피 내 안에 없는 건 쓸 수 없기에, 내 안에 있는 시시콜콜한 얘기들도 다 적은 것이죠.
꾸준하게 지속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일기를 쓰면서 엄청난 해방감과 자유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보통 일기라고 하면 방학 때 숙제로 했었던 기억이 강하잖아요?
담임선생님의 피드백을 받으며 숙제처럼 했던 일기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 나를 들여다보는 글쓰기를 했던 것. 그렇게 들여다보는 글쓰기가 작가님에게 있어, 좋은 감정과 경험을 가져다준 것이죠.
좋은 경험이 삶에 생기면 우리는 자발적으로 자신의 가장 소중한 자원인 시간을 바치게 됩니다.
그 일이 내 삶에 유용하고 좋다는 확신이 생기면 그 일을 하는데에 의지력에 의지하지 않게 되죠
자신만의 소소한 기쁨과 즐거움을 찾게 되기에 즐겁게 지속할 수 있는 마음이 생깁니다.
이것이 작가님이 꾸준히 글을 쓸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고 합니다.
나를 알아가니깐 불안감도 줄어들고 어떤 마음으로 이런 행동을 했는지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쏜살같이 흘러가는 내 하루도 어떻게 흘렀는지를 알게 되었다고 하네요.
그렇게 자신을 알아가다 보면 잘 살고 있다는 확신도 하게 된다고 합니다.
딱히, 대단하고 뛰어난 삶을 살지 않아도 나와의 약속을 지키며 살고 있다는 것을 일기를 통해 알게 되죠.
만약, 누군가 내 일상을 브이로그로 촬영한다고 생각한다면 관찰자의 입장에서 나 자신이 얼마나 잘 지내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잖아요?
일기도 바로 그런 효과가 있었던 겁니다.
일상이 우리가 가진 인생의 전부다
- 프란츠 카프카 -
우리의 인지능력은 과거와 미래도 인생의 일부로 생각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사실은 우리가 살아가고 가꾸어가는 매일의 일상만이 인생의 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는 어제의 일상이고, 미래는 내일의 일상일 뿐이라는 거죠.
오늘의 일상만이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이고, 그 현재를 포착하는 예술이 바로 일기를 쓰는 행위라고 할 수 있겠네요.
김애라 작가님은 계속해서 말합니다.
공감과 위로는 타인에게서만 받아야 하는 줄 알았다고.
하지만, 일기를 쓰면서 누군가가 나에게 해줬으면 하는 공감과 위로를 스스로에게도 할 수 있는 걸 깨달았다고 합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안부를 묻는 그 부드러움을 자기 자신에게도 하자는 걸 깨달았다고 하네요.
어느 날, 작가님의 딸이 자신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엄마는 어떤 할머니가 되고 싶어?"
"엄청 예쁜 할머니."
하지만, 딸은 만족 못했는지 다시 물어봅니다.
"어떻게 사는 할머니가 되고 싶어?"
"할머니가 돼서도 일기가 쓰고 싶어."
70대 중반에도 쓸 수 있는 일기가 있을까 했지만, 생각을 고쳐먹었다고 합니다.
18살에 처음 일기를 쓸 때에도, 마흔이 가까워진 지금까지 일기를 쓸 줄은 몰랐다고 하니까요.
일기를 계속 쓴다는 것은 나에 대한 관심을 끝까지 놓지 않겠다는 마음다짐이기도 하니깐.
70대에도 일기를 쓴다는 행위는, 작가님에게 있어서 70대의 할머니가 되어서도 자기 자신을 사랑하겠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자신에 대한 관심을 놓치지 않고, 끊임없이 사랑하겠다는 다짐인 것이죠.
"모든 사람에게 공통이 되는 세상의 의미 따위는 없다. 우리는 자신의 인생에 개별적인 의미와 줄거리를 부여한다. 한 사람이 하나의 소설, 하나의 책인 것처럼"
- 아나이스 닌 -
60년간 일기를 썼다고 하는 소설가 아나이스 닌의 말처럼, 우리는 스스로 "나"라는 책을 성실하고 꼼꼼히 기록해보고 싶지 않은가요?
일기는 결국 아무도 보지 않는 책에 헌신할 만큼 내 삶이 가치 있다고 판단하는 행위입니다.
상품성도 없고, 누군가에게 팔리지도 않지만 소중한 시간을 들여서 기록하는 행위.
그건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가장 멋진 선물이라고 하면서 작가님의 강연은 끝이 납니다.
저는 김애라 작가님의 강연을 보면서, 이슬아 작가님의 <글쓰기는 사랑이다>라는 강연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이슬아 작가님이 말한 사랑은, 당연히 본인에 대한 사랑도 있었겠지만 외부의 대상에 대한 사랑으로 확장된 느낌이라면 김애라 작가님이 말하는 사랑은 본인 자신에 대한 온전한 사랑을 말하는 듯했습니다.
두 작가님은 글쓰기를 왜 사랑이라고 표현한 것일까요?
그저 흘러가는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나의 시간과 마음을 쏟아붓는 행위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시간과 마음을 쏟아붓는 행위를 우리는 보통 사랑이라고 표현하기 때문에, 글쓰기도 충분히 사랑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과거의 저 자신을 그냥 흘려보냈지만 글을 쓰면서 그때의 저를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마냥 나약하고 한심하다고 생각했던 나였지만, 그래도 꽤나 열심히 살고 고군분투했더군요.
그 당시에는 스스로 사랑하지 않았던 나를, 글을 쓰는 지금에서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분명, 나의 감정과 생각을 온전히 담아서 기록하는 행위는 그 자체만으로 자신에 대한 사랑임이 분명합니다.
남에게 보여주지 않고 자신만 본다 하더라도, 나를 좀 더 알고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 순간을 기록하는 행위니 까요.
그렇게 순간을 기록하여 글로 남기게 되면 그 순간은 나에게 있어 영원해집니다.
언제든 다시 펼쳐서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기에, 이제는 흘러간 시간이 아니라 기록하여 "기억"된 시간이니까요.
쉴 틈 없이 흘러가는 바쁜 세상 속에서, 나를 위해 조금이라도 시간 내어 일기를 쓰는 행위.
그렇게 자신을 사랑해야만이, 나를 넘어서 타인을 향한 사랑으로도 발전할 수 있겠죠?
다음에도 좋은 강연 리뷰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애라 작가님 강연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