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대한 회의감이 가장 깊었던 시절
근무 첫날에 가졌던 좋은 인상은 일주일 동안 출근하면서 거의 확신으로 바뀌었다.
우리 팀은 정말 좋은 분들만 있으셨고, 업무량도 다른 부서보다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일도 거의 안 시키셨어서, 나는 컴퓨터로 전자책을 읽거나 PDF로 공부를 하면서 시간을 유유자적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자, 적응은 거의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지 업무를 주기 시작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되게 별거 없던 지출결의였지만, 처음 배울 때는 왜 그렇게 모르겠고 헷갈리겠던지.
그래도, 친절하고 온화하셨던 사수님 덕분에 나는 수시로 물어가며 빠르게 배울 수 있었다.
1~2주에 한 번씩 모아서 지출결의를 부탁한다고 하셨는데, 3시간 정도 잡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업무량이었다.
처음에 헷갈려서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업무를 했더니, 사수분이 벌써부터 나를 좋게 봐주셨다.
인턴에게 거는 기대치가 낮으셨던 걸까? 뜻하지 않은 대우에 나는 황송했다.
이대로만 가면 좋은 이미지를 쌓고 편한 인턴생활이 이어질게 분명했다.
하지만, 이렇게 잘 차려진 밥상을 내가 스스로 뒤엎어버리는 짓을 하고 만다.
바로 지각을 한 것이다.
근무를 시작한 지 2주쯤 되었을 때, 친한 동생과 형, 그리고 같은 기관 정규직 2명까지 해서 5명이서 술을 마셨다. 쌓이고 쌓인 이야기보따리는 끝날 줄 몰랐고, 보따리가 풀어질 때마다 술이 쭉쭉 들어갔다.
막차가 끊기고 나서도 한참 마시던 우리는 친구 집으로 가서 잠을 잤고, 새벽에 다시 일어나서 출근해야 했다.
택시를 불렀지만, 생각보다 출근길이 막혀버렸던 우리는 5분 정도 지각을 해버리고 말았다.
나는 전날과 똑같은 옷에다가 제대로 씻지도 못한 몰골로 사무실에 들어와야 했다.
참담한 심정이었다.
고개 숙여 사과를 했는데, 우리 팀분들은 아무 일도 아니라면서 그냥 1시간 연차를 내시면 된다 하셨다.
1시간 연차를 낸 후, 편의점에서 숙취해소제를 먹으며 알코올을 해독하고 있는데, 스스로가 한심하고 짜증이 났다. 이 날은 하루종일 별 다른 말도 없이 그냥 열심히 일을 하며 보냈다.
앞으로 다시는 지각을 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술을 안 마실수는 없으니깐) 근무에 임했다.
약간 헝클어진 머리와, 어제와 똑같이 입은 옷은 주름져 있어서 내내 창피했다.
어서 빨리 퇴근하고 싶었던 마음밖에 없었고, 퇴근하자마자 꼼꼼하게 샤워를 하고 바로 잠들었다.
근무를 시작한 지 한 달 정도 되었을 7월 중순의 무렵.
사수분이 나를 불러서, 앞으로 약 두 달 동안 해야 할 업무가 있다면서 차근차근 설명을 하기 시작하셨다.
지방자치단체의 사업을 평가하고 점수를 부여하는 업무였는데, 어느 사이트로 들어가서 지자체가 올려놓은 서류와 사업가이드라인을 보면서 등급을 매겨 점수를 부여하는 작업이었다.
"00 씨가 이렇게 1차 검토를 하고 나면, 대리님이 2차 검토를 한 후 지자체 담당주무관님이 마지막으로 검토하면서 사업이 마무리될 거예요."
여러 가지 엑셀 파일과 책자를 받은 나는 처음에 막막했다.
엑셀로 만들어진 시트 속에는 많은 지자체와 평가항목들이 빈칸으로 남아 있었고, 나는 그걸 등록해 놓은 서류 하나하나를 보면서 해야 했기 때문이다.
서류 몇 장만으로 평가할 수 있는 항목도 있었지만, 수십 페이지로 이루어진 서류들을 꼼꼼히 보고도 평가하기 애매한 항목들도 있었다.
두 달 내내 정말 하루종일 해야 할 업무라는 게 실감이 났고, 우선 무작정 시작해야만 했다.
그렇게, 나는 하루종일 사업평가를 시작했다.
생각보다 할만하다가 싶다가도, 어려운 항목이 나오면 막막했고 이렇게 평가를 해도 되나? 싶은 것도 많았다.
멘토님이 2차로 검토를 하고, 정부기관 주무관님이 마지막으로 검토를 해서 평가가 나간다 하더라도 1차 검토인 내가 꼼꼼하게 못하면 큰일 날 거 같았다.
아침에 출근하면 엑셀을 켜서 사업평가를 시작하고, 점심 먹고 와서도 사업평가를 계속하다가
가끔씩 다른 지원업무가 생기면 지원을 해주다 보니 두 달의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버렸다.
사실, 하루종일 열심히 하려 했지만 그렇게 한 것도 아니었다.
어느 정도 미적거리기도 했고, 나는 하루종일 이것만 해도 되니깐 진도가 빨라서 조금 놀면서 하기도 했다.
그래도 2달 동안 나름 꼼꼼하게 한 결과, 나는 1차 평가를 제일 먼저 끝내서 멘토님에게 넘겨드렸고 그렇게 내 업무는 갑자기 끝나버렸다. 1차 검토사항을 보내고 나면, 계속해서 담당 주무관이 전화를 하거나 멘토님이 이것저것 물을 줄 알았는데 그런 일이 거의 없었다.
아마도, 내가 평가항목 가장 옆 시트 비고란에 평가한 이유와 애매한 사항들을 꼼꼼하게 적은 덕분인 거 같다. 넘겨드린 것이 9월 중순이었고, 다들 수고했다며 9월까지 아무런 업무도 주지 않으셨다.
다른 동기들은 전부 바쁜 시즌이었지만, 나는 9월 말까지 한가하여 칼퇴를 하면서 여유로운 일상을 보내기 시작했다. 이렇게 여유로운 일상이 또 시작되니, 나는 첫 번째 기간제근로처럼 업무 시간에는 공부를 하고 퇴근 후에는 내가 하고 싶은 업무를 하다 보니 다시 또 꿈이 커지기 시작했다.
"글쓰기"에 대한 꿈을 말이다.
나는 이번에 웹소설에 한 번 집중해 보기로 했다.
다시 웹소설 작법서를 읽으면서 스토리를 구상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구상한 스토리로 글을 끄적이기 시작했다.
매일 퇴근하면 카페로 가서 글을 썼는데, 예전보다는 확실히 좀 더 열심히 글을 쓰기 시작했다.
구상한 스토리와 몇 화 정도 습작이 생기자, 나는 바로 그냥 실전에 뛰어들었다.
무작정 연재를 시작한 것이다.
웹소설은 매일 1화씩 올리는 것이 순위권에 들기도 좋고, 순위권에 들어야 유료 연재라는 기회를 얻기 쉽다 해서 나도 무작정 시작해 보았다.
칼퇴가 항상 보장되었기에, 퇴근 후에는 카페에 들러 글을 쓰면서 연재를 시작했다.
비축분이 몇 화 되지 않았기에, 하루에 무조건 1화~2화는 만들어내야만 했다.
한 화에 5000자 정도의 분량이 기본이었는데, 초보자였던 내가 그 정도 글을 만들어내기엔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워라밸이 확실히 보장되어 있었기에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으나, 일주일 정도 지났을 무렵에 연재에 차질이 생겨버렸다.
코로나에 걸려버린 것이다.
생전 처음 걸려본 코로나는 생각보다 너무 아팠고, 집에 꼼짝없이 누워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일주일 정도 앓고 나니, 비축분은 다 떨어져 버렸고 갑자기 웹소설 쓰기에 대한 의욕이 사라져 버렸다.
슬럼프는 아니었다. 고작 2주 정도 연재한 걸로는 슬럼프라 보기에는 무리다.
그냥 잠깐 불었던 바람에 내가 지나치게 의욕을 높였고, 그 의욕이 순식간에 꺼져버렸을 뿐이다.
그렇게 꺼져버린 나의 불은 타다 남은 잿더미만 남아버렸고, 나는 그 잿더미를 다시 태울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내 글을 꾸준히 읽어준 독자 분은 몇 분 안 계셨으나 그분들에게 예의를 갖추기 위해 연재중단 공지를 올리고 끝내버렸다.
연재를 중단하고 나서, 나는 스스로에게 꽤나 심한 자책을 하기 시작했다.
'항상 생각은 비대한데, 행동력은 작고 중도에 포기해 버리는 한심한 놈.'
'혀는 뱀처럼 길고, 손은 개구리보다 작아서 의미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놈'
스스로에게 상처를 많이 받았던 시기였다.
자책은 혐오로 짙어지면서, 나는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사람들과 술 마시는 약속만으로는 나에 대한 혐오가 누그러지지 않아서 혼술을 시작했다.
술을 마시면서, 글쓰기뿐만 아니라 진로에 대한 고민도 다시 시작되었다.
10월이 되면서 사수분의 용역사업 보고서 작성을 보조하기 시작했는데, 이를 위해 지자체의 협조가 필요했다. 보고서 작성에 필요한 데이터 수집을 위해, 지자체에게 관련 서류를 제출받아서 협조를 구해야 했다.
정부기관의 공문을 이용하면 쉽게 협조가 되었으나, 정부기관이 공문을 보내기까지 마냥 기다릴 수 없다고 했다. 기한이 촉박하여 우선은 지자체 공무원들에게 전화해서 서류를 빨리 제출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사수분이 이 전화업무를 나한테 부탁하셨고, 나는 그렇게 전화를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까칠한 분들이 많았다.
공무원분들은 마냥 친절한 줄 알았었는데, 그런 건 아니었다.
뭐 사실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별다른 공문도 없이 무작정 전화해서 서류를 제출해 달라니.
아무리 민원인들에게 시달리고 국민들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공무원이라 하더라도, 공공기관 직원보다는 힘이 센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공공기관 인턴이 무작정 전화해서 서류를 제출해 달라고 한다니.
내가 공무원이었어도 미심쩍고 좀 의심스러웠을 것이다. 짜증도 물론 났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이름을 묻고 짜증을 내고 이것저것 캐물으며 공격적인 주무관 몇몇 분들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의 첫 번째 회사 민원만큼은 아니었지만, 주무관들의 짜증과 화풀이를 듣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필요한 데이터를 수집하기까지 나는 수십 군데에 전화를 해야 했는데, 이때부터 공공기관 사무직 업무에 대한 회의감이 들기 시작한 것 같다.
끝내 서류를 제출받지 못한 몇몇 지자체를 제외하고는, 어떻게든 서류를 받아낸 경험은 면접에서도 얘기할 수 있을 만큼 좋은 경험사항이 되었다. 하지만, 면접 말고 나의 진로에 있어서는 악영향을 미쳤다.
공공기관에 대한 회의감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웹소설 연재 실패와 공공기관 업무에 대한 회의감까지 겹치면서, 2023년의 가을은 너무나 씁쓸했다.
11월이 다가오면서 날씨가 매섭게 추워지기 시작했고, 추운 겨울이 다가왔음이 실감 나자 괜스레 마음까지 공허해졌다. 나는 이 마음을 또 술로 달래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약속을 잡을 수 있는 날은 많지 않아서, 혼자서 술을 더 마시기 시작했다.
나에게 있어 혼술은 국밥 하나에 소주 1병을 까면서, 스스로에 대한 한심함과 자책감을 소주잔에 말아서 들이키는 것이었다.
분명 소주도 쓰고, 자책과 한심함까지 섞으면 더욱 쓴 맛이 나야 정상이다.
하지만 목구멍을 넘어서서 내 몸에 들어가는 순간 달콤한 맛이 났다.
마이너스 곱하기 마이너스는 플러스가 되는 것처럼, 부정적인 감정과 소주가 곱해지면 내 마음엔 쌉쌀한 플러스가 생기나 보다.
나는 이 달콤함에 취해 현실 도피를 또 시작했고, 술이 달콤할수록 공공기관에 대한 회의감은 점점 짙어졌다.
글쓰기에 대한 꿈은 사그라든 것은 아니었는데, 그 꿈이 다시 치고 올라오기에는 알코올이 그 공간을 다 차지해 버렸다.
그래도, 이번에는 좀 빠르게 정신을 차려서 11월 중순의 무렵에 나는 다시 도전을 하기 시작했다.
공공기관은 더 이상 지원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이제는 그냥 사기업에 도전을 해보자.
12월 초면 계약만료로 다시 백수가 되었기에, 12월부터 근무할 수 있는 사기업들 몇 가지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여러 군데에 서류를 넣어봤지만, 나의 애매한 경력 때문인지 몇 번은 서탈을 맛봐야 했는데 한 군데에서 서류가 붙었다.
무려 200명을 제치고 말이다.
5000에 가까운 초봉과 서울 초역세권 근무 위치.
공공기관으로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조건을 갖춘 곳이기에 나는 주저 없이 면접을 바로 보게 되었다.
2023년 11월 말.
나는 그렇게 공공기관에 대한 꿈을 접어두고 사기업 첫 면접을 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