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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s Oct 19. 2024

8화. 체험형 인턴을 시작하며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 곳

구청에서 기간제근로를 시작한 지 일주일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다.

근무 시간 중에 딱히 할 게 없었기에 무심코 들른 채용사이트에 환경분야 체험형 인턴 채용공고가 두 개나 올라왔다. 둘 다 딱히 가고 싶은 기관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내 전공분야였고 여기보다는 나을 듯했다.


비단 점심시간뿐만 아니라, 동기가 하나도 없는 이곳은 너무나도 외로웠다.

2022년 7월 이후로 나는 내 또래의 동기 없이 혼자서 묵묵히 일을 해야 했다.

환경분야와도 동떨어지고, 퇴근하고 나서도 딱히 사람 만나는 일이 없었던 나는 고독했다.


그러던 와중에, 동기들을 40명씩 뽑는 A기관의 체험형 인턴 하나와, 동기는 5명 정도로 적지만 인턴치고 월급을 꽤나 많이 주는 B기관의 체험형 인턴 채용공고가 하루 차이로 올라온 것이다.

나는 너무나도 기뻤다.

'여기 기간제근로를 탈출할 수 있으면서도, 내 원래 전공분야로 돌아갈 수도 있다!

그리고, 나에게도 드디어 동기가 생기겠구나!'

나는 퇴근 후 부푼 마음으로 자소서를 작성했다.


남는 게 시간뿐이었던 나는 빠르게 작성을 하여 지원까지 완료했다.

결과는 5월 말에 각각 나왔는데, 충격적 이게도 A기관은 서탈이었고, B기관에만 합격할 수 있었다.

내심 동기들이 많은 A기관에서 근무하고 싶었던 나는 조금 충격이었다.

A기관은 자기소개서가 서류 전형의 80%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스펙은 좋았던 나는 자소서를 정말 못쓰는구나를 이때 느꼈다.

이렇게 된 이상, B기관은 무조건 합격해야 했다.


B기관의 면접날은 6월 초에 잡혔는데, 다행히 기간제근로는 5월 만근을 하면 연차 하루를 줬다.

이 연차 하루로 승부를 봐야 했다.

총알은 단 한 발.

이 총알 한 발이 빗나가면 다시 꼼짝없이 한 달을 더 다녀야 했다.

한 달을 더 다닐 생각에 눈앞이 캄캄했던 나는, 이번 총알 한 발에 모든 걸 걸기로 했다.

나는 합격이라는 과녁을 맞히기 위해, 열심히 면접을 준비하였더니 어느새 사격을 할 시간이 다가왔다.




무덥지만 어쩔 수 없이 풀정장차림으로 면접장에 온 나는 긴장해야 했다.

기간제근로자와 달리, 인턴의 경우는 내 또래들이 대부분이었고 다들 정장차림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4명이 전부 참석하여 1시간 동안 진행하는 그룹면접이었다.

우리 조는 나 빼고 전부 여자였는데, 대체로 여자들이 면접을 더 잘 본다는 걸 소문으로 들었기에 더욱 긴장하며 면접장에 들어섰다.


원래 회의실로 쓰던 면접장소였는지, 생각보다 넓었던 면접장에는 면접관 4명이 앉아있었다.

우리는 차례대로 맞은편 의자에 1명씩 앉았고 그렇게 면접이 시작되었다.

형평성을 위해, 순서는 무작위로 계속 뒤섞였는데 질문이 생각보다 어려웠다.

본인이 지원한 분야의 사업 발전을 위한 아이디어를 한 번 내보라니?

기간제근로자에선 상상도 못 했던 질문이었다.


다행히 행운의 여신이 내 어깨를 두드려줬는지, 어려운 질문은 내가 마지막 순서에 받을 수 있었다.

다른 지원자들의 아이디어는 대충 흘려들으면서, 나의 아이디어를 즉석으로 만들어내어 답변을 했다.

마일리지 제도를 이용하여 홍보효과와 소비자들의 직접적인 이익을 주는 방안을 말씀드렸는데, 반응이 꽤 좋았다. 몇몇 어려운 질문들은 첫 번째가 아니라 2~4번째로 배정을 받는 행운이 계속되었다.

이런 행운과, 같은 지원자들의 답변 수준을 가늠하던 나는 점점 확신이 생겼다.

'이거 내가 승산이 있다!'

왜냐하면, 4명 중 2명은 면접이 정말 처음이었는지 질문과 동떨어진 답변만 했고, 아예 답변을 못하기도 했기 때문. 이 2명은 애초에 나랑 상대가 되지 않았다.

문제는 나머지 1명이었는데, 지원한 기관과 관련된 경력도 있었고 답변도 곧잘 했기 때문에 결국 이 사람과 나의 맞대결이구나라고 생각이 들었다.

계속해서 치열한 면접이 이뤄지면서, 다른 1명도 답변을 잘 못한 질문이 생겼다.

나는 그 질문에 침착하게 답변을 하고 난 뒤, 거의 확신했다.

내가 면접 자체는 제일 잘 봤다는 것을. 이거 조금 기대해 봐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면접 결과날까지 반은 불안감에, 나머지 반은 약간의 설렘을 가지고 기다렸다.

오후 5시에 결과가 발표가 났기에, 나는 그날 근무시간은 하루종일 긴장과 설렘에 집중을 하지 못했다.

드디어 5시가 되고, 핸드폰에 진동이 울려서 나는 화장실 가는 척하며 복도에서 핸드폰을 확인했다.


결과는 예비 1번이었다.

나는 이 결과를 믿을 수 없었다.

그때는 정말 면접만 잘 보면 합격할 수 있다고 순진하게 믿었던 시절이기에,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면접을 더 잘 봤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불합격 안내 문자에 이의 제기 관련 내용도 있었기에, 나는 바로 절차를 통해서 이의를 제기했다.

면접 점수를 알려 달라고.

지금 생각해 보면 약간 억지를 부린 느낌이었지만, 절박했던 나는 생떼를 부려서 점수를 알아냈다.


면접 점수는 95점 이상이었다.

그렇다면 합격자는 100점이었다는 건가? 분명, 답변을 이상하게 한 부분도 있었는데?

나는 너무나 억울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논리적으로는 내가 더 답변을 잘했고 실수를 한 부분도 없었기 때문이다. 분하고 억울했지만, 나는 차분히 생각을 정리했다.

어쩌면 나 혼자만의 생각일 수도 있고, 면접관이 보기엔 부족했던 점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계속해서 불합격안내 문자를 보며 생각을 정리하자, 자연스레 마음을 내려놓게 되었다.

'어쩔 수 없다. 정말 아쉽지만 경력자를 선호할 수도 있지 뭐.

여기 구청 기간제근로를 3개월까지 다 채우겠구나. 그러면 슬슬 다시 다른 기간제근로나 채용공고를 살펴봐야겠지?' 나는 절망스러운 심정으로 근무에 임했다.


하루종일 다른 채용공고는 안 올라오는지 확인했지만, 새로운 공고는 없었다.

2022년처럼, 2023년도 무더운 여름에 채용시장은 차가웠다.

나는 그렇게 어색한 점심시간을 견디면서, 그냥 3달 다 채우자고 생각했을 때쯤, 핸드폰으로 난데없는 전화 하나를 받게 되었다.

"B기관 인사채용담당자인데요. 혹시 다음 주부터 출근이 가능하실까요?"

합격자가 채용을 포기해서 예비 1번인 나에게 기회가 주어진 것이었다.

나는 바로 수락했고, 임용등록을 위한 서류와 갖가지 절차를 안내받았다.

근무가 다음 주부터 바로 시작해야 했기에, 나는 전화를 받자마자 팀장님에게 가서 퇴사의사를 밝혔다.

다행히, 퇴사절차가 간단했기에 나는 바로 퇴사를 할 수 있었다.




출근 마지막날에는 뭐 없었다.

당연히 일을 주지는 않았고, 점심을 사주시면서 힘내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들었다.

주무관님들도 수험생활을 다들 하셨던 분이기에, 수험생 시절을 얘기해 주며 따뜻한 얘기들을 많이 해주셨다.

치열하게 공부하셨던 그 말들은 오히려 내가 듣기에는 좀 부끄러웠다.

나는 작년의 한심한 여름과 겨울을 아직 기억하고 있었으므로.

하지만, 잠자코 들으면서 열심히 살겠다는 말을 한 뒤 어색한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내가 앉았던 자리의 모니터에도 속으로 인사를 했다.

'이 혹독한 사무실에서 예산 부족으로 간신히 목숨을 이어가는 모니터야 잘 지내렴.'

냉정하게 말하면 지금쯤은 재활용이 되었을게 분명한 그 모니터.

받침대가 날아가서 책들로 자신의 머리를 받치고 있었던 그 모니터만큼, 이번 기간제근로는 좀 쓸쓸했다.


이전에 이미 2번의 퇴사를 해봤기에, 나는 퇴사 당일에 하면 좋을 팁을 알고 있었다.

바로, 미리 짐을 일찍 챙겨둬서 퇴사하는 당일에는 가볍게 나오는 게 더 폼이 난다는 것.

특히, 사무실에서 신던 슬리퍼는 퇴사 전날에는 무조건 챙겨야 냄새 안 나게 퇴사가 가능하다.

미리 짐을 다 집으로 가져가뒀던 나는 아무 짐도 없이 맨몸으로 구청을 나왔다.


나의 두 번째 기간제근로는 40일 만에 이렇게 막이 내렸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근무를 하면서 분명 느낀 점은 있다.

겉으로 봤을 때는 멋져 보이던 구청 건물도, 그 안에선 정말 치열하게 일을 하는구나.

하나의 구가 돌아가기 위해서 행정적으로 참 많은 일들을 해야 하는구나.


행정 서비스를 위해 고생하는 공무원분들에게 간단한 감사의 마음을 느끼며 나는 집으로 향했다.

더 이상 그 어색한 점심시간을 견디지 않아서 좋았지만, 또다시 새로운 조직에 들어가서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리고 일을 배울 생각을 하니 막막했다.


주말에는 아무것도 안 하고 푹 쉬었지만, 언제나 그렇듯 주말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첫 출근날인 월요일 아침은 항상 무정하게도 밝아온다.

누군가에게는 제발 찾아오지 않길 바라는 월요일이지만, 그래도 월요일이 있어야 금요일과 토요일도 찾아오는 법이다.

아침부터 싱숭생숭했던 나는 괜스레 감상적인 마음에 사로잡혔다.

이번 직장은 자취방에서 거의 1시간 30분은 걸렸으므로, 나는 7시 10분엔 집에서 나와야 했다.

지하철로 왕복 40분 정도 걸리던 곳에 출근하다가 왕복 3시간 정도의 출퇴근은 고단했다.

다행히 한 번만 환승하면 됐고, 환승한 곳은 첫출발역이라 앉아서 갈 수 있어서 편했다.


보통, 공공기관 출근 첫날은 정장을 입는 것이 관례인 건 어렴풋이 알았지만 더위를 많이 타던 나는 그냥 반팔차림으로 왔다. 예전에 첫 직장에서 같이 일했던 친구가 B기관 정규직으로 있기도 했고, 친한 동생의 대학동기도 정규직으로 근무 중이었다.

그 친구들도 편하게 입고 근무를 한다 했으므로, 나는 많이 편하게 입고 갔다.

카라티도 아닌, 흰색 라운드 반팔티를 말이다.

그때의 나는 더위를 좀 먹었던 것이 분명하다.


관례를 시원하게 말아먹은 만큼, 흰색 라운드 반팔티는 시원했다.

근무 첫날 출근장소인 회의실은 더욱 시원했다.

이제는 나만의 룰이 되어버린 첫날 8시 40분 출근은 다른 사람들에겐 약간 늦은 시간이었던 것 같다.

항상 나만 제일 늦게 도착하고, 다른 동기들은 이미 다 도착하는 시간이 8시 40분이었기 때문이다.


약간 긴장하면서 들어간 사무실에는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는 동기들이 보였는데, 이상하게 남자가 보이지 않았다. 여자만 4명이었고, 남자는 나 혼자였다.

두 번의 기간제근로동안 나를 담당했던 주무관님들은 전부 여자였고, 부서에도 여자가 많았기에 나는 친한 남자 동기를 사귀고 싶었다.

아무래도 친해지는 데에는 동성만큼 편한 게 없으니깐.

오랜만에 만나게 될 동기였기에, 더욱 사람과 친해지고 싶었던 나는 아쉬움이 컸다.


그래도 내색하지 않은 채, 자리에 앉아서 가만히 채용담당자님을 기다렸다.

담당자님이 오실 때까지 시간이 잠깐 남았던 우리는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했다.

이름과 지원한 분야를 간단히 소개하고 연락처를 주고받다 보니 담당자님이 오셨고, 우리는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면서 인턴 제도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내가 근무하게 된 곳은 규모가 그렇게 큰 기관은 아니었지만 담당자님이 꽤 노력하셨는지 인턴제도가 꽤 체계적이었다. 취업을 위한 특별휴가를 쓸 수 있다는 것과, 최저시급보다도 더 높았던 월급은 꽤나 만족스러웠다.

여러 가지 설명을 듣고 신원조회를 하고 나니 오전 10시가 넘었고 이제 본인이 근무하게 될 부서로 이동해야 한다고 채용담당자님이 말하셨다.

그전에, 전체 부서를 돌면서 인사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는데 나는 좀 걱정되었다.


딱히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게 부끄럽거나 쑥스러웠기 때문은 아니었다.

첫 직장에서 같이 근무를 했었던 친구가 정규직으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인턴 신분으로 내가 인사를 하러 가는 게 좀 창피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그 친구는 출장 중이라서 자리에 없었고 나는 떨떠름하게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오늘부터 00에서 근무하게 된 000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각 층을 돌면서 한 번씩 인사를 나누었고, 마지막 층까지 가서 인사를 나누고 나니 채용담당자님이 말하셨다.

"아, 000님은 여기가 근무부서라서, 바로 가서 인사하시고 자리에 앉으시면 됩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내 자리로 쭈뼛쭈뼛 다가갔다.

내 왼쪽 자리에는 무려 과장님이 계셨고 맞은편에는 남자 선배님 두 분이 있었으며, 더 안쪽에는 팀장님이 계셨다. 나까지 포함해서 5명으로 이뤄진 작은 팀이었지만 사무실이 널찍하고 자리도 넓어서 좋았다.

팀장님과 과장님은 여자분이셨는데, 몇 마디 안 나눴지만 좋은 분인 게 딱 티가 났다.

남자 두 분은 옥상에 담배를 피우러 가셔서 자리에 안 계셔서 잠깐 기다리게 되었다.

한 분은 대리님이셨고 다른 한 분은 무기계약직 분이었다.

대리님은 내 멘토가 되어 줄 분이었으며, 무기계약직이신 분은 내가 주로 업무를 도와드릴 사수였다.


대리님과 무기계약직 선배님은 금방 자리에 오셨는데, 나를 아주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방금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고 오신 듯했는데, 잠깐 얘기 나누자면서 다시 옥상으로 나를 데려갔다.

두 분은 간단한 인적사항(실례가 되지 않는 범위에서)을 묻고, 이것저것 업무에 대한 얘기를 간단히 한 후 앞으로 잘 부탁드린다고 하며 정중하게 인사를 하셨다.


옥상으로 갑자기 데려가시길래 이상한 긴장(?)을 했던 나는 마음이 편안해졌다.

자리로 돌아오고 나니, 간단한 사업소개 책자를 주시면서 읽어보라고 하셨다.

과장님이 모르는 게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보라 하셨고, 앞으로 일하면서 남는 시간엔 공부를 하셔도 된다고 말하셨다!


내가 기간제근로를 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

"남는 시간에 공부를 해도 좋다"라고 말하면 기본적으로 일이 별로 없다는 뜻이다.

좋은 멘토님과 사수님에다가 공부를 해도 좋다고 할 정도의 업무량.

첫날이라 긴장되었지만, 속으로는 정말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생각은 한 달이 지나고 나서 잠깐 흔들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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