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사유 : 그냥 이직 때문이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5월부터라도 근무를 해야 했던 나는 구청의 채용게시판을 뒤적거렸다.
환경쪽 채용공고는 딱히 없었기에, 다시 생활비를 벌자는 심정으로 기간제근로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경력에 써먹을 수는 없겠지만 지금은 당장 일이라도 하는게 맞을거 같았다.
그 당시의 나는 채용도 자주 없고 경쟁도 치열한 환경분야에 회의감이 들었다.
그래서, 농업분야를 조금 더 경험해 보고 진로를 살짝 틀어볼까라는 고민도 없지 않아 있었다.
그런 고민을 하던 찰나에 농업분야 기간제근로자 3개월짜리 계약은 구미가 당겼다.
구청 쪽이라서 조금 더 좋은 경험을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딱히 고민할 필요도 없었기에, 우선 지원부터 바로 했다.
이전에 센터에서 3개월 정도 근무했던 경력은 서류작성에 유용했다.
기사 자격증 5개와 컴활 1급, 한국사 1급에 토익까지 있었던 나는 당연히 서류를 통과했고 면접을 보게 됐다.
이번 기간제근로는 구청 쪽이라 뭔가 인기가 많을 거 같아서 면접을 좀 더 열심히 준비를 하고 갔다.
법과 관련된 부분도 있어서 법제처에서 업무와 관련 있는 법조항을 외우기도 했다.
면접 당일날, 당연하게도 정장을 입고 구청을 방문한 나는 또 당황했다.
이번에도 정장 차림을 한 지원자는 나 혼자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다들 청바지 차림으로 캐주얼하게 입은 분들이 많았다.
기간제근로가 알바와 크게 차이가 없어서였는지, 생각보다 되게 편안한 복장으로 면접을 보러 온 분들이 많았다. 나 혼자만 쓸데없이 정장을 입어서 오히려 더 어색한 기분이었다.
내가 쓸데없이 힘을 많이 준 걸 느꼈지만, 그래도 나쁠 건 절대 없었다.
오히려 정장을 입은 나는 조금 더 성실하고 성의 있게 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법 조항까지 외운 나는 나름 자신 있었기에, 면접장에도 자신 있는 발걸음으로 구두를 또각거리며 들어섰다.
면접실에 들어서니 세 명의 면접관이 자리에 앉아있었다.
자리에 앉은 나는 짧게 자기소개부터 해보라는 면접관의 요청을 받았다.
나는 당황했다.
왜냐면 자기소개를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의 나는 대체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다.
자기소개는 너무나도 당연한, 기본 중에 기본이었음에도 이전 센터에서 시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간제근로자는 자기소개를 안 시키는구나라고 생각한 것이다.
정장까지 입는 신중함은 있어도, 자기소개 같은 기본적인걸 빼먹는 이 안일함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때의 나는 정말 제정신은 아니었다. 겨울 동안 자기계발서와 유튜브의 동기부여 강연을 들으면서 이상한 자아도취에 빠져 현실감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도, 나름의 순발력과 그간 준비한 내용을 토대로 나쁘지 않게 답변을 할 수 있었다.
나머지 질문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너무 평이한 인성질문이었어서 잘 생각나지도 않는다.
딱히 변별력 없는 기본적인 인성질문이었는데, 어떤 식으로 답변했더라도 합격에는 크게 영향을 주지 않았을 법한 질문이었다.
합격을 가른 것은 "우리 부서가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있으신가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을 것이다.
나는 암기했던 법조항을 인용하며 자기소개보다 더 자세하게 답변을 드렸고, 이러한 답변에 면접관님들이 전부 고개를 끄덕인 것을 보았다. 이 부분에서 크게 점수를 받아서 내가 합격할 수 있었지 않았나 싶다.
겨울도 거의 다 지나가고 봄이 완연했던 4월 말.
나는 분명 행복했지만 약간은 한심했던 겨울을 끝내고 두 번째 기간제근로를 시작했다.
첫 출근은 언제나 그렇듯이 긴장되고 떨렸다.
4개월간의 겨울잠을 끝내고 다시 사회로 복귀한 것이나 마찬가지였기에, 더욱 긴장되었다.
특히나, 약간 변두리의 센터가 아니라 지역구의 중앙행정이나 다름없는 구청 쪽이었기에 업무가 이전보다는 힘들 것 같았다.
적당히 캐주얼하면서 비즈니스 같은 느낌으로 근무복을 갖춰 입은 나는 심호흡을 하고 사무실로 들어섰다.
사무실의 첫인상은 이전 센터와 달리, 갑갑하고 숨 막히는 느낌이 강했다.
이전 센터보다는 넓었지만, 밀도는 거의 2배는 되는 듯했다.
오밀조밀 공무원들로 가득 찬 사무실은 비좁았고 여러 전화들이 울리면서 정신이 사나웠다.
내가 보조하게 될 주무관님들도 굉장히 바빠 보였다.
나 빼고 전부 여자분들이셨는데, 팀장님은 40대 중 후반정도 되시는 듯했고 여자 주무관님들은 20대 후반 ~ 30대 초반인 듯했다.
4명의 여자 주무관님들은 전부 바빠 보이셔서 나는 뻘쭘했지만 면접을 안내해 주셨던 주무관님이 계셔서 용기를 내어 인사를 했다. 주무관님은 반갑다고 인사를 해주셨지만 바쁘셔서 민원인이 앉아 있는 책상에 잠깐만 앉아 있으라고 했다.
10분 정도 기다렸을까? 주무관님이 근로계약서와 다른 서류들을 들고 와서 설명을 해주셨고, 시키는 대로 서명을 했다.
그러고 나서 바로 나의 자리로 안내받았는데 앉자마자 뭔가 이건 잘못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모니터가 받침대 없이 딱 네모난 화면만 있었는데, 그것을 두꺼운 책 여러권으로 받쳐놓은 형태는 좀 웃겼다.
잘못해서 툭 건들면 모니터에 이상한 선이 그어지면서 화질이 안 좋아지는 그 모니터는 이미 수명이 다 한 게 틀림없었다.
예산이 없어서 구매를 못한 건지 몰라도 이 모니터 하나만으로 뭔가 딱히 신경 써주지는 않겠구나 싶었다.
강한 회의감이 들었지만 일단은 섣부른 판단은 하지 말자는 심정으로 나는 마음을 다 잡았다.
안내받은 사업소개 책자를 열심히 읽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고, 나는 주무관님들을 따라 점심을 같이 먹게 되었다.
이전의 센터에서는 혼자서 항상 끼니를 해결했었는데 여기는 팀끼리 다 같이 먹는 분위기였다.
나는 이 날 점심을 먹으면서 거의 체 할 뻔했다.
딱히 무례하거나 불편할만한 질문은 없었다.
오히려, 그냥 질문이 없어서 더 뻘쭘하고 답답하다고 해야 할까?
별다른 질문 없이 업무에 대한 얘기들만 하는데 나는 끼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묵묵히 밥만 먹어야 했다.
나는 이 부서의 이방인이 된 느낌이 강했다.
어차피 짧게 있다가 갈 기간제근로이고 친하게 지낼 필요는 없는 사람은 맞다. 그래도, 너무 그냥 딱 선이 그어진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첫날이니깐 그런 거겠지? 차차 나아지겠지..?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다른 기관에 붙어서 이직하게 될 6주 남짓의 기간 동안 점심시간은 항상 불편했다.
차라리 혼자 따로 먹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점심을 억지로 먹고 나서, 근무시간에 돌아와 다시 책자를 보다가 담당주무관님이 할 일을 잠깐 알려주셨다.
몇 가지 설명을 듣고 난 뒤 느낀 점은 딱히 어려울 만한 게 없다는 느낌?
그냥 할 만할 것 같았다.
민원인들이 와서 토지 관련 서류를 발급해 달라 하면 발급해 드리고, 필요한 서류를 스캔해드리거나 가끔씩 시키는 작업들만 하면 되는 거였다. 어려울만한 업무는 없었다.
어려운 건 점심시간과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전화기 소리들이었다.
내가 근무했던 부서의 점심은 약간 특이한 문화가 있었다.
각자 돌아가면서 점심 먹을 메뉴나 장소를 고르는 것이다.
제비 뽑기로 고르는 것이었는데, 딱히 강압적이거나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나는 이게 참 스트레스였다.
내 또래 여자 주무관님 4명과 40대 팀장님 한 분이 있는 곳에서, 전형적인 남자 음식(제육, 국밥, 돈가스)을 좋아하는 나는 무얼 골라야 할지 잘 몰랐다.
게다가, 구청 근처에 어떤 식당들이 뭐가 맛있는 지도 잘 몰랐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업무가 별로 없었던 나는 점심 먹을 장소를 고르기 위해 20분 정도씩 지도를 뒤져야 했다.
주무관님이 도움 될만한 정보나 식당정리한 것들을 주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런 문화는 딱히 이해되지 않았다. 점심을 먹게 되더라도 대화 주제는 일 얘기가 많았고 일상적인 얘기는 남자인 내가 참여하기엔 힘든 내용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분들은 공무원이고 나는 취업준비생 입장이다 보니 좀 더 코드가 안 맞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것들이 다 합쳐져서 나는 업무 시간보다 점심시간이 더 힘들었다.
점심시간만 견디고 나면 오후는 수월했다.
내 일과의 가장 힘든 시간이 점심시간이었을 정도였다.
차라리 이전처럼 혼자 점심 먹고 쉬게 놔두는 방치형이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은데, 애매하게 챙겨주는 느낌으로 같이 점심을 먹자고 하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나아지는 느낌이 조금씩 들었다.
살짝살짝 말을 붙이거나 얘기를 하면서 어느 정도 어색함이 풀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다른 문제는 사무실의 분위기였다.
전화가 울리는 소리가 나는 너무나 싫었다.
옆팀과도 다닥다닥 붙어있어서, 전화벨 소리가 다 들릴 수밖에 없었는데 콜센터나 다름없는 느낌이었다.
내가 근무했던 부서도 민원이 많은 부서긴 했지만 전화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농업 쪽이었기에 기본적으로 나이가 많았고, 나이가 많은 분들은 직접 찾아오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전화가 많이 오는 부서는 내 뒤쪽의 동물보호팀이었다.
빈번한 전화와 더불어 민원인들이 짜증을 많이 내는 듯했다.
옆 팀 주무관님이 "욕은 하지 마시고요. 우선 상황 설명부터 해주세요."라고 하시는 말도 자주 들었다.
어차피 나와 다른 부서니깐 그렇게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었지만, 동물보호팀의 전쟁터 같은 분위기는 사무실전체로 퍼지는 느낌이었다.
이전 센터에서 평화롭고도 유유자적한 그런 분위기에서 일했던 내가 거의 전쟁터 같은 이곳에서 적응하기란 쉽지 않았다.
우리 팀도 동물보호팀보다 덜 했을 뿐이지, 민원은 만만찮았다.
보조금 지원을 못 받게 된 농업인이 매일 전화를 해서 주무관님을 괴롭히고, 부모 욕까지 하는 사람도 있었다.
주무관님은 아무렇지 않은 듯 응수했지만 분명 아무렇지 않을 수 있었을까?
말로만 듣던 민원 스트레스를 가까이서 보니 참 힘들어 보였다.
민원인이 친절하더라도 전화를 받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 일거 같았다.
나는 이곳이 싫었다.
열심히 일하는 공무원들을 존경하지만, 나는 딱히 이곳과 맞지 않는구나를 강하게 느꼈다.
그래서, 이곳에 근무를 시작하고 얼마 안 돼서 체험형 인턴 서류전형을 통과했을 때 너무나 기뻤다.
개인 사정이 아니라, 합법적으로 이곳을 그만둘 수 있겠구나!
면접 안내 문자를 받고 난 뒤, 나는 업무시간에도 면접 준비를 열심히 하였다.
정말 열심히 준비했지만 면접 결과는 예비 1번이었어서 절망했으나 합격자가 채용을 포기하여 내가 붙게 되었다.
그렇게, 두 번째 기간제근로는 약 40일 만에 바로 그만두게 되었다.
그만두면서 한 가지 다짐한 것이 있었는데 앞으로 일을 하면서 공무원분들이나 콜센터 분들께 정말 친절히 잘 대해드려야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의 이 마음은 체험형 인턴을 하게 되면서 변하게 된다.
왜냐하면, 업무에 치이고 치여 까칠하고 짜증 내는 공무원들을 상대했기 때문이다.
물론 콜센터분들에게는 여전히 친절하게 문의하고 있다.
어쨌든, 나는 체험형 인턴 합격 문자를 받고 나서 바로 팀장님께 말씀드려 퇴사 절차를 밟았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던 구청에서의 기간제근로는 이렇게 막을 내리고 나는 주말만 쉰 뒤에 바로 출근을 하게 되었다. 나는 이곳 체험형 인턴을 6개월 동안 근무하게 되면서, 여기서 지금까지도 연락하는 소중한 동생과 형을 만나게 된다.
바야흐로, 내 취업 준비 인생의 두 번째 황금기였다.
무더운 여름의 6월부터, 혹독한 12월까지의 시간 동안 계절이 무르익듯, 나의 꿈도 무르익게 되었다.
어찌 보면 내 꿈의 씨앗을 뿌린 시기이기도 하며, 그 씨앗이 떡잎까지 자랐지만 내가 그 떡잎을 자른 시기이기도 하다. 용감하게 몇몇 도전을 했지만 지속하지 못해서 다 그만둬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 뿌린 씨앗은 여전히 나의 땅에 묻혀서 계속해서 꿈틀꿈틀 거리고 있다.
그 시절을 말하기 위해서, 면접을 본 날부터 이야기를 다시 시작해 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