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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s Oct 26. 2024

10화. 사기업 면접을 살짝 맛보다

달콤하면서도 씁쓸했던 맛은 침을 뱉게 만들었다.

처음에 나는 서류합격도 기대하지 않았다.

최종 합격자를 1명만 뽑는데, 지원자만 200명이 넘다 보니 당연히 서탈이겠구나 했다.

스펙은 짱짱했지만, 사기업이다 보니 학벌을 많이 볼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별 기대 없이 자소서를 작성하였고 귀찮아서 그냥 솔직하게 작성했다.

딱히 꾸밀 생각 없이 자소서를 작성하였더니 금방 글이 채워졌고 그냥 그대로 제출해 버렸다.

합격 발표 날짜도 잊고 지냈을 정도이니, 내가 얼마나 기대를 안 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합격날짜도 잊은 채 얼마 안 남은 회사 생활을 하고 있을 무렵, 난데없는 문자메시지가 날아왔다.


<신입공채 서류전형 결과 안내>

귀하는 00 2024년 신입공채 서류전형에 "합격"하셨음을 안내드립니다


별 기대도 안 한 회사의 서류전형 합격문자였지만, 솔직히 기분이 꽤 좋았고 우쭐해졌다.

허수도 많겠지만, 190명을 다 무찌르고 서류를 통과하다니?

괜히 땄다 싶은 기사자격증들이 그래도 도움은 되는구나 싶었다.

친구들이 다들 대단하다고 칭찬해 줬고, 무조건 면접을 보라고 하면서 내게 용기를 줬다.

나는 의례적으로 하는 면접 준비를 간단하게 했다.

회사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내용들을 모조리 읽고, 환경분야 기초적인 전공지식들을 암기하였더니 면접날은 금세 다가왔다.

금요일 면접이 잡혔기에, 나는 기분 좋게 취업휴가를 신청했다.

팀장님, 과장님, 멘토님, 사수님 전부 응원해 주셔서 나는 기분 좋게 면접을 보러 갈 수 있었다.

12월 초의 겨울 날씨는 정장에 코트를 걸치니 딱 알맞았고, 코트가 제법 잘 어울린다 생각했던 나는 더욱 자신감이 붙었다.


내가 지원한 회사는 서울의 초역세권에 위치한 회사였고, 빌딩도 신축 건물이었다.

그동안 다닌 회사는 약간 노후화된 건물에다가, 빌딩 같은 것도 아니었기에 서울에 온 실감이 안 났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 회사의 건물에 들어오자마자 역시 서울은 서울이구나 싶었다.

깔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안내인들이 로비에 있었고, 보안 출입문들과 경비원들도 눈에 보였다.

빌딩에는 여러 회사가 입주해 있었는데, 각기 다른 회사의 직장인들이 커피를 들고 움직이는 모습은 정말 드라마에 나오는 모습 그대로였다.

면접을 보러 가기 전에는 회사에 관심이 없었는데, 건물에 들어오자마자 나는 갑자기 이 회사에 입사해지고 싶어졌다. 나는 열심히 해보자는 마음으로 회사의 면접장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회사의 첫 분위기는 정말 좋았다.

잘 꾸며진 라운지는 따뜻한 색감들로 꾸며져 있었다.

그 라운지의 중심에는 바리스타가 커피를 만들고 계셨는데, 회사 복지로 커피가 무료라는 말이 정말 사실이구나 싶었다. 그동안은 항상 커피를 사 먹었는데, 사기업 복지는 정말 다르긴 다르구나 하며 감탄했다.

나는 면접 안내실이 눈에 보이지 않아서, 커피라도 하나 얻어마셔야 하나 싶어서 바리스타분께 다가갔다.

바리스타분은 내가 면접 보러 온 사람인 걸 어찌 알았는지, 바로 면접대기실이 어디 있는지 친절하게 안내해 주셨다.


면접대기실에는 그 유명한 에비앙 생수와 함께 외국 과자들이 나열되어 있었고, 회사에 대한 동영상이 틀어지고 있었다. 얼마 전에 회사 멘토님이 베트남 여행을 갔다 오면서 사 온 과자가 똑같이 나열되어 있었어서, 이 무슨 기막힌 우연인가 싶었다. 좋은 징조 같아서 더욱 자신감이 생겼다.

면접 대기실은 30명은 넘게 앉을 수 있을 정도로 넓었지만, 4명씩 그룹면접을 30분 동안 보는 형태였기에 사람은 적었다.

나와 같이 면접을 볼 4명의 지원자들은 금세 도착했고, 다 같이 회사 소개동영상을 2번 정도 반복해서 봤을 쯔음, 채용담당자가 안에 들어와서 설명을 시작했다.

면접 장소와 면접관에 대한 소개, 그룹면접에 대한 간단한 안내였다.

그렇게 설명이 끝나고 나니 우리들에게 궁금한 걸 뭐든지 물어보라고 하셨다.

그 말에, 다른 분이 다들 궁금하지만 내심 물어보지 못했던 질문을 시원하게 물어봤다.


“연봉이 어떻게 되나요? “

“초봉 계약연봉이 4600입니다.”

4600이란 말에 다들 놀란 듯했다. 환경업계가 연봉이 좀 짜기에, 이 정도로 주는 회사는 없었기 때문이다.

성과급 미포함인지, 복지는 무엇인지까지 물어보기에는 우리는 너무 어리고 경험도 없었기에 더 물어보지 못했다.

“혹시 총 몇 명을 뽑나요?”

“기본적으로 1명을 뽑지만, 지원자의 역량에 따라 저희가 더 뽑을지 말지 결정하기도 합니다.”

이 대답은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냥 용기를 주기 위한 발언이었던 것 같다.

실제로 한 명 더 뽑을 수도 있겠지만, 신입들이 잘해봤자 얼마나 잘하겠는가? 이미 채용할 때부터 채용인원은 거의 고정되어 있었을 것이고.

그래도 면접 긴장감을 풀고, 용기를 주기 위한 하얀 거짓말은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 외 여러 가지 질문을 하고 나니깐 금방 면접 시간이 다가왔고, 우리는 4명씩 짝을 지어 면접장으로 향했다.

원래 회의실로 쓰는 공간에 들어서니, 에비앙 물이 하나씩 또 놓여있었고 면접관 3분이 자리에 앉아있었다.

인사 쪽 부서의 과장님과, 우리가 지원한 환경 분야의 이사님, 그리고 다른 부서의 부장급 사람들 전부 매서워 보였다.


자리에 착석 후, 간단한 자기소개를 하라 해서 나는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나는 이도라는 회사를 간단하게 설명한 후, 내 얘기를 살짝 곁들이는 방식으로 1분도 안되게 짧게 끝냈는데, 다른 여자 지원자가 정말 말도 안 되게 길게 했다.

2분은 정말 넘겼고, 3분은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자기에 대한 얘기를 주절주절 꺼내는걸 계속 들으려다 보니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하지만, 다른 지원자의 말에 경청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줘야 했기에 나는 눈을 살짝 바닥을 향해 뜨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시늉을 했다.

그 뒤로는 평이한 전공질문과 지방 이동이나 야근과 관련된 간단한 인성질문들이 이어졌다.

솔직히 별 거 없었다. 내가 다니고 있던 공공기관의 체험형 인턴 면접이 훨씬 더 어려웠다.


이번 면접에서 제일 힘들었던 건 다름 아닌, 옆자리 여자 지원자의 구구절절한 설명과 내용들이었다.

어떻게든 한 마디 더 하고, 어필하고 싶어 하는 태도는 적극적인걸 넘어서 솔직히 짜증이 났다.

공공기관 면접에서는 보지 못했던 지원자 유형이었고, 나는 지하철에서 발 밟힌 것보다 더 화가 날 정도로 기분이 더러웠다.

혼자서 면접을 보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자기 어필을 하고 남에게 피해를 줘야 하는가?

30분이라는 면접시간에서 그 지원자만 15분 넘게 답변을 했다.

내용이 좋으면 모르겠는데, 쓸데없는 내용까지 너무 구구절절 얘기해서 지치게 만들었고, 다른 면접관분들도 좀 지루한 듯 의자를 움직이거나 숨을 좀 크게 내쉬는 분도 있었다.

당연히 이런 사람은 탈락시킬 거라고 생각하며 나는 숨을 참았다.


4명이서 30분 정도 보는 면접은 생각보다 금방 끝났고, 우리는 면접대기실로 다시 돌아왔다.

면접확인서가 필요한 사람들은 앞에서 서류를 챙기라고 했기에 챙겼고, 그 뒤에는 그냥 가면 된다고 하셨다.

면접비는 주지 않는 듯했다.

사기업은 안 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정도 규모 있는 회사면 알았는데 참 아쉬웠다.


회사 건물 밖을 나오면서, 나는 새삼 다른 분야의 지원자들은 면접 분위기가 어땠는지 궁금했다.

내가 오후에 면접을 봤기 때문에, 이미 오전에 다른 분야의 지원자들은 면접을 끝내고 채팅방에서 글을 남기지 않았을까?

나는 바로 사이트에 들어가서 확인해 보았는데, 분노에 가득 찬 몇몇 글들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이미 인턴을 하고 있던 사람들이 내려와서 면접을 보고, 그냥 다시 올라가는 모습을 봤다는 글.

면접에서 대놓고 편애하는 듯한 질문을 했다, 아예 우리는 병풍이었다.

같은 인턴끼리 면접기출 질문을 공유하고 있었다 등등..


나는 단순히 지원자가 너무 적극적이고 말을 많이 해서 짜증 난 것이었는데, 저런 일을 당한 지원자는 얼마나 기분이 더러울까 싶었다.

신입사원을 채용하는데, 이미 인턴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지원을 해버리면 어떻게 우리가 뽑히냐는 말도 있었다. 나는 이 말의 심정에는 공감이 갔지만, 같은 회사 인턴이나 경력이 있는 사람이 유리한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는 입장이라 씁쓸한 마음만 남았다.

나 같아도, 우리 회사에서 일 잘한 사람이 정규직으로 지원했다면 적극적으로 푸시할 게 뻔하니깐.

이미 검증된 사람을 뽑는 게 회사 입장에서도 좋을 테니 말이다.

회사 채팅방에 올라온 내용에 비하면, 내가 지원한 분야는 그런 부조리함은 없었다.

그냥 말 많은 여자 지원자 때문에 내가 짜증이 났을 뿐. 내정자도 딱히 없는 듯했다.

그렇게, 나는 8명 중에 4명을 선발하는 2배수 1차 면접은 간단히 통과했고, 다음 면접을 바로 준비하게 되었다. 1차 실무진 면접 다음에 2차 임원면접이었기에 인성 면접이 대부분일 게 뻔했다.

딱히 준비할 게 없었던 나는 했던 공부를 또다시 하며, 앵무새처럼 말만 반복하고 갔다.





2차 면접에서는 1차 면접 때 봤던 여자 지원자가 또 있었다.

그 지원자는 1차와 똑같은 자기소개를 앵무새처럼 또 반복했다. 

3분에 가까운 자기소개는 아무도 끊지 않았고, 그 여자는 아예 신이 났는지 계속해서 톤도 높아져갔다.

가증스럽고 짜증이 났지만, 꾹 참고 나는 1차와는 다른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예상했던 대로 인성면접 질문이 대부분이라 어렵지 않았지만, 내가 한 가지 준비하지 못한 질문이 나왔다.

회사가 사업하는 분야가 다양한데, 어떤 분야에 정확하게 열심히 일을 하고 지원하고 싶냐는 질문에, 나는 다소 움츠러든 말투로 답변을 했다.

내가 생각해도 자신감 없는 어조로 답변을 했는데, 왜냐하면 진짜로 준비를 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도 그렇고 뭔가 회사에 대해 나쁜 평들을 많이 듣고 읽고 보니 입사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것이 승부를 가른 포인트였다.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한 지원동기와, 입사 후 포부 같은 질문에서 적극적이지 못했던 나는 그대로 미끄러져버렸다. 준비한 필살기는 있긴 했는데, 그건 마지막으로 할 말을 물어보면 할 얘기였다.

내 나름대로의 사업을 분석하고 향후에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간단한 브리핑이었는데, 그 브리핑을 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다른 여자지원자가 말을 너무 주저리주저리 많이 해서 면접 종료 시간이 금방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허무하게 2차 면접이 끝나버렸고, 우리는 회의실을 나왔다.

다른 여자 지원자가 면접을 잘 본 거 같다는 느낌으로 약간 신나게 걸어가는 게 눈에 보였다. 자기 친구도 다른 분야 면접을 봤는지,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자기 친구로 보이는 사람과 함께 걸어가는 그 모습이 너무나 가증스럽고 짜증이 났다.

내가 정말, 이 회사에 들어가고 싶은 사람이었다면 불러서 정말 한 마디를 했거나 욕을 퍼부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냥 한 번 지원해 보자는 마인드이기도 했고 욕심이 딱히 없었기에 그냥 넘어갔다.

사실 욕을 퍼붓는 행위 자체를 하면 안 된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고.

그냥 기분이 그때 정말 나빴다는 뜻이다.


어쨌든, 면접 결과는 당연히 불합격.

그래도 예비 1번으로 2등을 했는데, 예비가 빠질 거라는 기대는 안 했다.

이 회사만큼 채용조건이 좋은 곳은 없었고, 200명이 넘게 지원한 회사에서 자기가 뽑혔는데 설마 빠지겠는가? 내 예상대로, 예비 1번은 빠지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아무도 기억해주지 못하는 2등으로 불합격이라는 쓴맛을 보게 되었다.


불합격 통보를 받고 나서 며칠 뒤, 나의 인턴계약기간도 끝나버렸다.

11월 중순부터 시작된 첫 사기업 취업 여정이 끝나자, 갑작스레 추운 겨울이 다가왔다.

이번 겨울은 속에 울분이 쌓인 겨울이었다.

원래 승부욕과 경쟁심이 강했던 내가, 왜 그렇게 면접을 안일하게 봤을까?

공공기관에 내가 너무 안주해 버린 걸까?

그 지원자처럼 나도 그냥 적극적으로 했어야 했나?

끝날 줄 모르는 자책과 자기반성은 내 마음을 서서히 달궜다.

날은 시퍼렇게 추웠지만, 내 속은 춥지 않고 울분으로 뜨거웠다.


이 울분은 다른 좋은 기업에 취업을 해야 풀릴 거 같았다.

그래서, 나는 또 자취방에 갇혀서 이것저것 자기소개서를 준비하고 다른 기업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신기하리만큼 다른 기업들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내가 탈락한 회사가 절호의 찬스였던 것이다.

실업급여를 또 받을 수 있었기에 마음은 급하지 않았지만, 나는 어서 빨리 취업을 해서 그 여자 지원자에게 나름의 복수를 하고 싶었다.

더 좋은 회사를 다니는 게 가장 올바른 복수가 아니겠는가?

공공기관 채용시장은 다 얼어붙었기에, 나는 사기업 쪽으로 본격적으로 진로를 틀게 되었다.

그렇게, 12월부터 시작된 사기업 탐색은 두 달 뒤, ESG 컨설팅사 입사라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경력만 잘 쌓으면 무궁무진한 미래가 열리는 컨설팅.


하지만, 나는 컨설팅사에 입사한 지 한 달 만에 바로 퇴사를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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