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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s Nov 02. 2024

12화. 결국 한 달 만에 도망치게 된 컨설팅사

이 길은 내 길이 아닌가 보다.

일주일 동안 PPT 작성과, 영어로 된 지침을 공부한 나는 바로 실무에 투입되었다.

고객사와의 1억짜리 프로젝트에 바로 투입이 되는 것이었는데,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기에 팀장님이 하나하나 잘 케어해 주면서 업무를 할 것이라 기대하였다.

하지만, 그 기대는 너무나도 큰 착각이었다.

나는 무에서 유를 창조할 정도로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스스로 해야 했다.


그 창조작업의 시작은 고객사 팀장님과의 미팅을 기반으로 시작되었다.

대략 1억 정도의 예산을 기반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는, 기본적으로 고객사들의 데이터들이 필요했다.

그 데이터들을 어느 정도 범위까지 수집해야 할지 정하는 것이 관건이었는데, 데이터의 범위에 따라 결과값이나 작업의 난이도가 확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데이터 범위를 정하기 위해서는 내가 초반에 공부했던 보고서의 지침을 따라야 했는데, 지침은 항상 그렇듯이 필요한 내용을 상세히 적어놓지는 않았다. 정말 기본적인 가이드라인만 존재할 뿐. 나머지는 내 역량이었다.

내 사수가 해놓은 템플릿을 참고해서 만들라고 했지만, 사수의 템플릿은 내가 하는 프로젝트와는 거리가 좀 멀었다.

나는 새로 템플릿을 만들어서 고객사 팀장님께 전달해야 했는데, 거의 맨땅에 헤딩을 해야 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맨땅에 헤딩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라는 인간은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가고 앞지르는 것보다는, 이미 만들어진 길을 탄탄히 하는 데에 최적화된 인간이었다.


일을 하나도 모르겠는데, 고객사 팀장님은 계속 전화가 와서 물어보지만 나는 아무것도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사수한테 물어볼만한 분위기도 아니었다.

나는 스스로 혼자 자립해서 하나하나 해결해나가야 했다.

그게 컨설턴트, 프로젝트 매니저라는 직함의 무게였다.

그래도 그렇지, 생초짜인 나를 그렇게 방치하고 알아서 하라는 게 말이 되는가?

알아서 무엇을 만들고 와도, 그 만든 것에 대해서 왜 이렇게 했느냐, 생각 없이 하지 말라는 핀잔을 들어야 했다. 미칠 노릇이었다.


설상가상, 이것은 하나의 프로젝트일 뿐 우리는 다른 공공기관에 용역사업을 받아서 보고서를 작성해야 하는 게 있었다. 이것은 사이드 프로젝트로, 내가 고객사 팀장님과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도 같이 병행해야 하는 작업이었다.

그나마 이 작업은 할 만했다.

다른 기업이 보증기금을 받기 위해 자신들의 에너지 절약 계획이 타당한지 평가하는 것이었는데, 이전에 다른 분들이 해놓은 예시도 많았고 정부가 발표한 자료들을 토대로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고객사 팀장님과 함께하는 프로젝트는 앞서 말했듯이 참고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영어로 된 보고서 지침을 토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컨설팅을 할 수 있다면 내가 왜 이러고 있겠는가?

나도 그냥 회사를 하나 차렸을 것이다.


이 모든 걸 극복하는 것이 컨설턴트의 길이라면, 나는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한 달 정도 일하다가 팀장님께 면담을 요청하여 그만두게 되었다.

들어가는 것만큼이나, 나오는 것도 정말 허무할 만큼 간단했다.


팀장님이 대표님과 부대표님에게 나의 퇴사의사를 전달한 후에, 나는 퇴사날에 본사로 돌아가서 대표님과 부대표님을 면담하게 되었다.

컨설턴트라는 길이 맞지 않아 그만두게 되었다는 말에, 그럴 수 있다는 반응이었다.

이 길은 맞는 사람만이 걸을 수 있기에, 아니면 어쩔 수 없다는 느낌으로 따뜻하게 말해주셨다.

'그 어떤 사람도 이렇게 막무가내식으로 업무를 시키면 누구도 맞지 않을 건데..'라는 말이 마음속에 울려 퍼졌지만 끝내 참았다. 퇴사하는 마당에 이런 얘길 해봤자 무얼 하겠는가?


어떠한 업무적인 지식이나 스킬을 익힐 시간도 없이, 바로 실무에 투입되어 고객사의 베테랑 팀장님과 상의하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방식은 누구라도 맞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말은 꾹 참은 채 그냥 컨설턴트는 정말 나랑 맞지 않는다고 말씀드린 후에 퇴사하게 되었다.



한 달 만에 다시 백수로 복귀한 나는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

공공기관을 피해 도망친 사기업은 낙원이 아니었다.

공공기관과 달리, 매출을 책임져야 하는 사기업의 업무 압박과 스트레스는 나에게 너무 버거웠다.

그래서, 나는 다시 공공기관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정규직 채용공고는 역시나 없었고, 있었다 하더라도 필기 공부를 손에 놓은 지 오래되었기에 나는 다시 계약직과 인턴을 해야 했다.


지원할 만한 채용공고가 아직 안 떴기에, 나는 쉬면서 진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는 머리를 좀 써야 하는 사무직종은 맞지 않는 걸까?

새로운 사업을 하고 발전을 하는 진취적인 일들은 나와 맞는 줄 알았는데, 첫 번째 공공기관 계약직과 컨설팅사를 겪으면서 이런 업무가 맞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그냥 했던 걸 또 하고 반복하는 쳇바퀴 같은 삶이 맞는 것 같았다.


나는 머리를 쓰는 것보다는, 그냥 단순 반복작업을 하는 게 맞는 거 같았다.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지식을 배우고 익히는 건 좋아했지만, 그러한 작업이 "일"로써 다가오는 건 싫었다.

머리는 글을 쓸 때 사용하고 싶었지, 일을 하면서 너무 많이 쓰고 싶지는 않았다.

머리는 적당히 쓰고, 몸도 적당히 움직이면서 일하지만 매일매일이 똑같은 업무의 반복인 직종.


내가 원하는 직종은 이런 것이었지만, 4월의 나는 아직 이런 생각을 구체적으로 하지는 못했다.

'그저, 공공기관 사무직을 한 번만 더 경험해 보고, 맞는지 안 맞는지 확실히 결정하자!'라는

막연한 생각만 하고 있었을 뿐이다.


이러한 고민을 하고 있을 때쯤, 작년에 떨어졌던 기관의 체험형 인턴 채용공고가 올라왔다.

나는 망설임 없이 이곳에 지원하여 합격하였고, 5월 말에 체험형 인턴을 하게 되면서 나의 고민에 대한 답을 얻게 된다.

업무 강도가 높기로 유명한 기관의 체험형 인턴을 하게 되면서, 사무직종은 정말 안 맞겠구나라는 답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새로 찾은 직종은 시험연구원이며, 현재 나는 연구원으로 재직하며 매일매일 똑같은 실험을 반복하며 살아가고 있다.




2022년 2월에 공공기관 사무직을 꿈꾸며 상경했던 청년은, 2024년 8월부터 시험연구원으로 새로운 경력을 쌓아가며 살아가고 있다. 공공기관 취업에 필요한 NCS와 전공 공부를 손에 놓은 지는 1년이 다 되어가고 있으니, 나는 공공기관 취준 포기가 맞는 셈이다. 좀 더 심하고 직설적이게 말하자면, 이 브런치북의 제목처럼 공공기관 취업 실패자가 된 것이다.


이렇게 공공기관을 포기하면서까지, 직종을 변환하게 된 이유는 2년 반의 기간 동안 여기저기 근무하면서 얻은 경험과 생각의 변화가 쌓인 결과가 가장 크다. 하지만, 2024년 5월 말 ~ 7월 말의 두 달 동안의 체험형 인턴 영향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이곳에서 드디어 진로 고민을 끝내고 현재의 시험연구원의 길을 걷게 되었다.



공공기관 취업실패기의 이야기는 이제 종반부에 다다랐습니다.

7월 말부터 재직하고 있는 시험연구원의 이야기까지 끝나고 나면, 그간의 경험을 살려 공공기관 취준을 준비하는 사회초년생 분들에게 감히 간략한 조언을 하고자 합니다.

공공기관 이야기가 끝나고 나면, 꼭 취준이 아니더라도 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재밌게 풀어나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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