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사무직은 안 맞더라.
주말을 푹 쉬고 맞이한 6월의 첫째 주.
월요일에 출근한 나와 남자동기는 자리를 정리하고 필요한 프로그램을 깐 뒤 교육을 듣느라 정신이 없었다.
프로그램을 깔고 나서, 자리를 정리하고 나니 실장님께서 간단하게 복무제도를 설명해 주셨다.
다른 기관의 인턴처럼, 한 달에 1회씩 인턴휴가를 부여해주고 있었고 한 달 만근시 연차 하루가 생기는 식이었다. 복무 제도를 설명 듣고 나서 나랑 남자동기는 다시 컴퓨터 프로그램을 깔기 시작했다.
프로그램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메신저였다.
교육 때 친해진 사람들과는 전부 다른 층과 건물로 뿔뿔이 흩어졌기에 메신저가 아니면 소통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첫 주에는 인턴들에게 딱히 일을 시키지 않고 사업 공부만 시키다 보니 지루했다.
3일 동안의 인턴 교육도 안 들었던 내가 사업 공부를 과연 했을까?
나는 그냥 같은 부서 동기들과 메신저를 하며 히히덕거리기만 했다.
내 교육 짝꿍이랑도 메신저를 하고 싶었지만, 설치가 좀 늦는지 계속해서 접속하지 않아서 아쉬웠다.
이튿날 즈음에 짝꿍도 메신저에 접속하자, 나는 하루종일 짝꿍이랑 메신저만 했다.
이렇게 사업보고서를 읽고 동기들이랑 메신저만 하다 보니 현충일이 다가왔다. 현충일이 목요일이었으므로, 금요일에 연차를 내면 4일을 쉴 수 있었다. 그래서, 이전 직장 친구들이 연차를 쓰고 현충일에 번개모임을 가지자고 했다.
술 좋아하는 애들이 모인 이 모임을 나는 조심했어야 했다.
왜냐하면, 바로 이 모임이 내 지각의 원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출근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나는 당연히 연차가 없었기에, 금요일에 출근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처음부터 아예 술을 적당히 마실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사 한 친구가 있어서 집들이를 하게 되었고 집들이로 위스키를 사게 된 것이 화근이었다.
20대 후반의 직장인들이 집에 모여서 하는 게 도대체 뭐가 있겠는가?
그것도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말이다.
술을 적당히 마실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맛있는 화채를 시작으로 가볍게 1차를 시작한 우리는, 점점 무거워지는 안주와 함께 술도 무겁게 먹기 시작했다. 하이볼, 소주, 위스키 등등을 먹다 보니 나는 취할 대로 취해버렸다.
내일이 출근날인지도 새까맣게 잊은 채, 계속해서 술을 먹기 시작했다.
이미 저녁 9시부터 그만 마셔야 했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고 새벽 3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같이 새벽까지 마신 친구들은 전부 금요일 휴가를 썼던 애들이었기에 미처 나를 신경 쓰지는 못했을 것이다.
나는 결국 필름이 끊겨버렸고, 그 필름이 돌아온 것은 오전 9시 동기의 전화 덕분이었다.
동기의 전화 덕분에 정신을 차린 나는 후다닥 전화를 끊었다.
핸드폰을 보니 9시 3분이었는데, 출근까지 1시간이 넘게 걸렸던 나는 시간을 보자마자 마음이 철렁했다.
이미 1시간 이상은 무조건 지각이었지만, 2시간 이상 지각할 수는 없었기에 나는 미친 듯이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평소에 30분은 넘게 걸리던 출근준비가 15분도 걸리지 않았다.
회사까지 잘하면 10시 30분까지 도착할 거 같았다.
지하철을 타고나니, 서서히 숙취와 함께 정신이 다시 돌아오면서 어떻게 얘기를 하고 사과를 드릴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예전에 인턴을 할 때도 지각을 하긴 했지만, 3분 정도만 늦었고 택시가 막혔던 거라 어떻게 잘 무마할 수 있었는데, 이번은 정말 대형지각이었기 때문이다.
심란한 내 마음과 달리, 지하철은 생각보다 한산하고 평화로웠다.
9 to 6의 일반 직장인들의 출근시간을 넘겼기 때문인 듯 했다.
하지만, 내 몸과 마음은 평상시 출근시간대의 지옥철보다 더 불편했다.
아무리 빠르게 가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더 빨라질 수는 없었기에 나는 그냥 자포자기 심정으로 눈을 감았다.
숙취가 몰려와서 약간 어지럽기도 했고, 이미 벌어진 일은 그냥 무조건적인 사과를 하면서 잘 수습하자는 뻔뻔한 마인드였다.
지하철을 탄 50분은 금세 흘러갔고 드디어 역에 도착하자, 나는 부리나케 뛰어갔다.
중간에 커피점에서 아이스커피를 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지각자가 커피까지 사가는 건 도저히 안 되는 일이었기에 나는 지체 없이 사무실로 향했다.
아직 깨지 않은 숙취로 인해 술냄새를 풍기며 말이다.
나는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실장님을 찾아가서 사과드렸다.
다행히, 실장님은 정말 친절하게도 다음부터 조심하고, 피치 못할 사정으로 9시 넘어서 도착할 거 같을 때에는 미리 같은 팀원분에게 말을 해달라고 하셨다.
물론, 나도 여러 사회생활을 통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다.
하지만, 9시 넘어서 깨어나버렸으니 시간여행을 하지 않고서야 9시 이전에는 도저히 미리 말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무사히 사무실에 도착하였고, 아직 숙취가 남아서 나는 탕비실에 물을 마시러 갔다.
거기서 우연히, 면접관으로 참석하셨던 다른 부서 실장님을 만나게 되었다.
실장님이 나에게 이것저것 좋은 얘기를 막 해주셨는데, 내가 면접 때 정말 인상이 좋았고 칭찬이 자자했다는 말을 해주셨다. 정말 기분이 좋았고 황송하였지만 나는 좀 많이 부끄러웠다.
왜냐하면, 나는 출근한 지 일주일도 안 됐는데 지각을 하고 숙취 때문에 입에서 알코올 냄새를 풍기면서 눈도 충혈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지각한 날은 물을 많이 마시고 술을 깨려고 노력하면서 행동도 조심했다.
메신저로 동기들과 이것저것 얘기하다 보니 퇴근시간이 또 금방 다가왔다.
첫 주는 이렇게 아무 일도 안 시키고 끝났다. 다음 주는 슬슬 일을 시킬 꺼 같았지만, 마찬가지였다.
계속해서 사업공부를 하고, 정말 간단한 행정업무를 맡길 뿐이었다.
밖에서 들린 악명과 다르게,
여기 인턴도 꿀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슬슬 들기 시작했다.
공부를 하기에는 부서 분위기가 너무 바빠 보여서 뭔가 눈치 보이는 게 좀 흠이었지만.
동기들과 메신저를 하고, 구내식당에서 만나면 인사를 하면서 지내는 인턴의 일상.
무료하지만,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3주 차가 되니 드디어 나에게 업무를 하나 맡기셨다.
10년 치의 데이터 분류 작업이었는데, 여러 회의 자료와 조사한 자료들을 연도별, 제품별로 분류하여 정리하는 작업이었다. 이게 참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중구난방으로 흩어져 있는 자료들을 취합하는 작업이다 보니 처음에는 단순해 보였는데, 자료를 또 연도별로 대조하면서 바뀐 내용들을 선별해야 했다. 자료들도 생각보다 더 많이 흩어져있었으며, 하나하나 살펴봐야 하는 게 좀 고역이었다. 처음에 2달 넘게 걸릴 거라고 말해주셨을 때, 이게 정말 두 달이나 할 작업이라고? 의문이 들었었다. 하지만, 실제로 해보니 진짜로 2달이 걸릴만한 작업이 맞았다.
어찌 보면 사무 노가다, 즉 서류를 계속 살피고 분류하는 작업이었다.
하루종일 앉아서 데이터들을 보면서 분류하고, 가끔씩 담당자님이 자리를 비우면 전화를 대신 받고, 다른 팀의 파트장님이나 책임연구원님이 부탁하는 자료조사를 하는 게 나의 업무가 되었다.
인턴이었기에 그렇게 난이도가 높거나 업무 스트레스가 높은 건 아니었지만, 하루종일 사무실에 앉아서 자료들을 보면서 나는 드디어 확신하게 되었다.
아, 나는 진짜로 사무직이 좀 안 맞는구나. 새롭게 무언가를 찾아서, 공부하고 자료조사하는 게 재미없구나.
차라리 연구기관에서 정부기관 과제 업무를 하는 거면 몰라도, 뚜렷한 성과나 목표가 보이지 않는 사업을 위해서 공부하고 자료조사를 하는 작업은 맞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드디어 이 기관에서 확신을 하게 되었다.
공공기관 사무직이 하는 일들이 나한테 맞지 않음을.
내가 사무직과 맞지 않다는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면서, 나는 다시 진로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사무직의 반대는 현장이지만, 또 그렇다고 내가 현장 체질은 아닌 듯했다.
사무직과 현장의 중간이 섞인 게 뭐가 있을까?
예전에 생각해 뒀었던 답이 그제야 명쾌하게 떠올랐다.
시험연구원이었다.
현장의 육체노동처럼 신체에 크게 무리가 가지 않는 시험 작업을 하면서도, 시험 데이터와 성적서 작업을 위한 사무직도 섞인 직종.
그러면서도, 연봉은 환경분야 공공기관의 그 어떤 곳보다 연봉이 높은 곳.
마지막으로, 큰일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수도권에 무조건 근무할 수 있는 곳.
이리저리 고민해 봐도, 여기만 한 곳이 없었다.
이렇게 확신을 하게 되자, 이 기관에서 근무하는 것이 시간 낭비처럼 느껴졌다.
적성에도 딱히 맞지 않고, 경력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곳이니 하루빨리 떠나고 싶어졌다.
동기들과 술자리도 가지면서 정말 재밌게 인턴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결국은 이직을 위한 발판이 아니던가?
친해진 동기들을 더 못 보는 것이 아쉽긴 했지만, 나중에 다시 만나면 되는 일이었다.
어차피 6개월짜리 인턴이었으니 언젠가는 헤어질 터.
우선은 내가 답을 내린 시험연구원이라는 직종이 나에게 정말 맞는지 확인해봐야 했다.
그렇게, 나는 시험연구원 쪽 기관에 이력서를 넣기 시작했다.
첫 번째는 서류부터 탈락했지만, 두 번째는 서류를 합격하여 면접을 보게 되었다.
면접도 일사천리로 통과하게 된 나는 드디어, 시험연구원으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삶은 글을 쓰고 있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제 이야기는 이제 드디어, 마지막 종착지인 시험연구원에 도착하였습니다.
공공기관 취준을 꿈꾸던 27살 풋내기 청년은, 이제 29살 시험연구원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1~2화 안에 제 이야기는 끝이 날 듯하며, 에필로그나 부록으로 취준기간 동안 느낀 점들과 여러 팁들을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기까지 제 이야기를 읽어주신 독자분이 계신다면,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얼마 안 남은 제 이야기를 끝까지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