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강도가 유독 강한 공공기관에 입성하다.
컨설팅사에서 고작 한 달 일했지만, 고생했던 기억이 너무 강렬했던 탓일까.
자존감이 약간 무너진 나는 집에서 꼬박 한 달을 쉬었다.
쉬는 동안 나는 참 많은 고민을 했다.
환경공학과라는 내 전공 분야를 계속 살리는 게 맞는 걸까? 나는 혹시 사무직이 맞지 않는 게 아닐까?
나는 대체 무얼 하면서 먹고살아야 하나? 내년이 30인데 이렇게 자리를 못 잡고 있는 게 맞나?
고민은 나를 잠식시켜 갔고, 나는 점점 우울해졌다.
하지만, 세상은 내가 우울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다.
나는 다시 일을 해야 했고, 의미 있는 경력을 쌓아야 했지만 정확히 내 진로를 정하지 못했다.
그러던 와중에, 내가 관심 있었던 기관의 체험형 인턴과 작년에 지원했지만 떨어졌던 기관의 체험형 인턴 공고가 또 떴다.
진로 고민은 방구석에서 하는 것보다, 체험형 인턴이라도 하면서 겪어보는 게 더 맞는 것 같았다.
한 번만 더, 공공기관을 경험해 보자.
나는 마음을 추스르고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이미 작성해 놓은 자기소개서가 있었기에, 금방 작성하여 두 군데에 지원할 수 있었다.
두 기관 모두 자기소개서 비중이 높았기에, 나는 마음을 비우고 지원하였다.
항상 자소서를 못 써서 스펙으로 밀어붙였던 나였기에, 합격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딱히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다.
인턴이 떨어지면, 다른 곳의 육아휴직 대체 계약직 같은 곳을 하면 된다는 마인드였기 때문에, 나는 자기소개서를 제출하고 나서 별생각 없이 시간을 흘러 보내고 있었다.
마음을 비우면 오히려 더 잘된다는 것이 자기소개서에도 통했던 것일까?
발표날에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고 있던 나는 별안간 울린 핸드폰에 눈길이 확 갔다.
[합격자 안내]로 시작되는 문자.
딱히 관심이 없던 기관이라 하더라도, 합격하면 괜스레 기분이 좋아지는 법.
놀라운 건 두 기관 모두 합격을 했다는 점이다.
딱히 자기소개서를 크게 수정하지 않았는데도, 자소서 비중이 높았던 기관의 체험형 인턴을 통과할 줄이야.
컨설팅사에서 고생한 것에 대한 보상이었던 걸까?
나는 기분 좋게 면접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마침, 내가 첫 계약직을 했던 곳에서 사귄 친구가 계약기간 만료로 백수였는데, 그 친구도 합격을 해서 우리는 같이 준비하기로 했다.
사실, 딱히 준비할 게 없어서 우리는 그냥 면접날에 같이 택시를 탄 게 전부였지만.
면접 당일날, 정장차림으로 만난 우리는 서로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그 친구나 나나, 여기저기 면접을 좀 봤기도 했고 말주변이 없는 편이 아니었기에 우리는 면접을 딱히 준비하지 않았다.
그냥 같이 면접 보고 나서 면접비로 맛있는 거나 사 먹자는 생각이었고, 갈 때의 택시비는 내가, 올 때의 택시비는 그 친구가 내기로 했다.
택시를 타니 면접장소는 금방 도착했고, 우리는 면접 대기실에 안내받아서 여러 설명을 들었다.
그룹 면접이었지만 조가 달랐던 우리는 각기 다른 장소에 마주 앉았고, 눈이 마주칠 때마다 웃음이 나왔지만 참아야 했다.
딱히 긴장감도 안 들었던 나는, 그저 지루했다.
솔직히 말하면 빨리 면접비나 받고 집에 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합격하고 싶긴 했지만, 작년에 떨어진 기관이 더 가고 싶었기에 나는 좀 무성의하게 준비했다.
그냥 기존에 공부했던 지식과, 항상 써먹던 1분 자기소개를 그대로 써먹자는 생각이었다.
어차피 인턴이니깐 면접이 어렵지는 않을 것이고, 떨어져도 딱히 아쉬울 거 없었던 나는 편하게 면접에 임했다.
면접은 정말 무난무난했다.
기본적인 인성은 내가 생각해도 답변을 잘했고, 전공 질문은 생각지 못한 것이 좀 어려웠지만 남들도 다 대답을 못해서 딱히 감점요소는 없을 것 같았다.
문제는, 친구들이 말하는 나의 단점을 말해보라는 질문에 너무 솔직하게 답변한 것이었다.
고집이 좀 있는 편이라고 말해버린 나는 순간 아차했다.
아무리 면접을 솔직하게 보는 게 좋다 하더라도, 이건 너무 솔직한 답변이 아닌가 싶었다.
이게 치명적인 실수라는 걸 직감하게 되었고, 결과는 딱 그대로 예비 1번이 나왔다.
친구는 면접을 딱히 잘 본건 아니라고 했는데, 합격했다고 했다.
나와 친구가 지원한 분야는 총 5명을 뽑았는데, 인턴의 경우에는 예비가 잘 빠지는 편이기에 나는 기다리면 그냥 합격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내 친구가 빠질 줄은 생각지 못했지만 말이다.
친구는 첫 계약직의 정규직 필기시험을 통과하여 면접을 준비 중이었는데, 면접 일정과 인턴 근무시기가 합쳐져서 근무하기가 애매하다고 했다.
결국, 정규직 면접에 올인하고 싶어서 채용을 포기할 거라고 일찌감치 나에게 말해주었기에 나는 우선 안전하게 하나의 기관에 합격한 셈이었다.
하지만, 나는 친구와 같이 면접을 본 기관을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작년에 떨어진 기관의 체험형 인턴도 합격을 했기 때문이다.
면접관 5명과 면접자 나 혼자서 보는 다대일의 면접, 그리고 딱 5분만 이뤄지는 면접은 생각보다 난이도가 높았지만, 나는 그동안에 쌓인 면접 경험치를 바탕으로 합격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알아보니, 처음에 합격한 기관은 완전히 독서실 인턴으로 일도 거의 안 하고 근무시간에 공부도 할 수 있다고 했지만, 동기가 5명밖에 안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작년에 떨어진 기관은 근무시간에 대부분 일을 해야 하지만, 동기가 40명이나 되었다.
나는 근무시간에 편하게 공부하면서 다시 살 것이냐, 아니면 40명이 넘는 인턴 동기들과 친하게 지낼 것이냐를 두고 행복한 고민을 시작했다.
고민의 결과, 나는 40명의 동기들을 사귈 수 있는 기관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이미 체험형 인턴과 기간제근로를 하면서 근무시간에 공부를 하고 많이 놀기도 했기에, 이번에는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5월 말에 두근거리는 마음을 품고 나의 동기들을 만나러 가게 되었다.
규모가 좀 컸던 기관이기도 했고, 나름 체계가 있었던 공공기관이라 그런지 우리는 입사 첫날에 3일의 교육을 받게 되었다. 인턴으로서의 근무 자세, 사업에 대한 소개 등등의 교육이었는데, 이렇다 할 경력은 없지만 마냥 사회초년생이 아니었던 나는 교육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솔직히 저런 것보다는 내가 근무할 부서의 사업이나 사수가 알려주는 내용들을 숙지하는 게 더 중요한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정말 불량한 태도로 교육을 들었다.
맨 뒷자리에 앉아서 교육을 듣는 척하면서 핸드폰만 했는데, 웃긴 게 내 옆자리 짝꿍도 그랬다.
시력이 별로 안 좋은 사람이었는데, 안경을 들고 오지도 않고 그냥 가만히 앉아서 수업을 듣는 척하는 게 조금 웃겼다. 먼저 말을 걸어주셔서 얘기를 나눠보니 유머코드가 잘 맞아서 우리는 급속도로 친해졌다.
내 짝꿍은 이번이 첫 사회생활이었는데, 처음 사회생활인데도 교육을 열심히 안 듣는 게 벌써부터 베테랑(?) 같은 느낌이 들었다. 딱히 불량한 느낌의 사람은 아니었다. 내가 교육을 제대로 안 들으니깐, 딱히 들을 맛이 안 나서 그런 것일까? 우리는 그냥 서로 핸드폰 하고, 조용히 떠들었다. 그러다 보니 첫날은 금방 흘러가버렸는데, 채용담당자님이 둘째 날에는 한 명씩 자기소개하는 시간을 가진다고 했다.
다들 약간의 탄식을 하면서 싫어하는 티를 은연중에 드러냈는데, 나는 이상하게 설렜다.
그냥 뭔가 대학교에 온 느낌이기도 했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성격이 외향적으로 변했던 나는 동기들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둘째 날 아침이 되자, 채용담당자님은 안내한 대로 한 명씩 마이크를 돌려가며 자기소개를 시켰다.
앞쪽 자리를 기준으로 제일 오른쪽 뒷자리에 앉았던 우리는 마지막에 자기소개를 할 거라 생각했는데, 담당자님이 약간 장난기가 있으셨는지, 우리 쪽 자리부터 먼저 시키셨다.
내 짝꿍부터 처음 시작한 자기소개는 마지막 동기가 끝날 때까지 40분 넘게 진행되었는데, 인턴임에도 여기저기 일하다 온 경력자들이 많았다.
거의 절반에 가까운 인원이 경력자들이었는데, 마음 한편으론 좀 쓸쓸한 감정이 들었다.
사회초년생의 첫 발걸음이나 다름없는 인턴임에도 경력자들이 즐비하다니.
자기소개를 끝내고 나니 인턴들끼리 긴장감도 풀리고, 같은 부서 사람들을 알게 돼서 그런지 쉬는 시간에 인턴끼리 활발한 교류가 시작되었다.
같은 부서인 사람들끼리 미리 인사도 하고, 점심시간에는 같이 밥을 먹으러 가기도 했다.
나는 같은 부서 사람들이 어디에 앉아있는지 알긴 했지만, 자리가 멀리 떨어져 있어서 친해지기는 어려웠다.
제일 많이 친해진 건 짝꿍이었고, 그 짝꿍은 첫 사회생활을 하는 애였기에 나는 이것저것 좀 챙겨주고 싶었다.
민원전화가 많기로 악명 높은 부서에 배치받았기 때문에, 조언을 해주려다가 나는 잠깐 주춤했다.
나도 민원 때문에 첫 계약직을 중도에 퇴사하지 않았던가? 끝까지 버텨내지도 못한 내가 감히 그런 조언을 해줘도 되는 걸까?
누군가에게 조언을 해주고 싶어도, 내가 그럴 위치나 경험이 없다는 것.
속된 말로 깜냥이 안 되는 나 자신이 씁쓸했다.
나는 그냥 힘내라는 말밖에 해줄 수가 없었다.
3일간의 교육은 즐거웠고, 그 즐거운 시간만큼 교육은 금세 끝나버렸다.
수요일부터 시작된 교육은 금요일 4시에 끝났고, 4시가 되자 드디어 부서 배치가 시작되었다.
각 부서의 책임연구원들이 인턴들을 데리러 왔다.
하나둘씩 인턴들이 각자의 부서로 빠져나가면서, 우리 부서 인턴 몇몇 사람들만 눈에 남은 게 보였다.
그때서야, 우리는 서로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나랑 같은 부서인 동기는 한 살 어린 남자 동기였고, 같은 본부지만 다른 부서인 3명은 전부 여자였다.
서로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한 번 나누고 잠깐 얘기를 하다 보니 우리 본부의 책임연구원이 우리를 데리러 오셨다.
우리는 각자의 부서로 흩어졌고, 나랑 남자동기는 같이 부서 사람들에게 인사를 나눴다.
부서의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부서원들끼리 서로 친하게 지내는 거 같기도 했으며, 딱딱한 분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파티션이 너무 높아서 삭막한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우리 부서는 신설된 지 얼마 안 된 부서였으며, 업무강도가 높고 민원전화도 제법 많은 부서라고 들었기에 나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기관에서 열심히 일을 해보면서, 내 진로를 다시 고민해 보리라.
사무직의 거의 끝판왕이나 다름없는 이곳을 거치면, 나도 내 진로를 더 확실하게 결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부서 배치를 오후 5시쯤에 받았기에, 1시간 동안 내 자리를 정리하고 컴퓨터를 세팅하고 나니 금방 퇴근시간이 다가왔다.
부서 사람들에게 인사를 나눈 후, 퇴근하고 주말 동안 나는 다시 한번 열심히 해보리라는 각오를 다졌다.
하지만, 그 각오는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깨지고 만다.
왜냐하면, 나는 부서 배치를 받은 지 일주일도 되지 않은 날에 2시간이나 지각을 해버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