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비유와 상징으로 나타낸 자아실현 이야기.
아마 책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은 다들 들어보셨을 법한 책이 있습니다.
바로 파울로 코엘료 작가님의 <연금술사>라는 책이죠.
이 소설은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기법을 이용하여 '인생'을 다루고 있는 소설입니다.
좀 더 정확히는 '진정한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자아를 실현하기 위한 여정'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겠네요
예전에 대학생 때 한 번 읽었던 책인데, 내용을 다 까먹어서 오랜만에 다시 읽었더니 너무나도 감동적이었습니다. 저 또한 꿈을 이루기 위해(자아실현)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연금술사>는 자아실현의 여정을 상징과 은유로 나타낸 만큼, 소설의 문체는 유려하고 아름답습니다.
그 아름다운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꿈을 가진 독자들은 모두 어느샌가 작가가 전하는 따뜻한 위로와 격려, 응원의 메시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 내용을 지금부터 조금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줄거리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자아의 신화'를 이루기 위해 모험을 떠나는 양치기 산티아고의 이야기입니다.
산티아고는 자유로운 성향을 가진, 그저 평범한 양치기 소년이었습니다.
산골 마을의 어느 소녀를 사랑하여 그 소녀가 사는 마을에 정착하기를 꿈꾸는 평범한 소년이었던 산티아고.
그러다가, '늙은 왕'이라고도 불리는 존재를 만나 보물을 찾으러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그 여행은 '자아의 신화'라고도 불리는 일종의 순례길이며, 그 자신을 알아가게 되는 여정이기도 합니다.
보물은 피라미드에 있는데, 그 피라미드에 가기 위해선 드넓은 사막을 가로질러야 합니다.
사막을 가로지르는 과정에서 산티아고는 자신의 진정한 반려자이자 사랑을 바칠 상대인 '파티마'를 만나고, 자신의 스승인 연금술사를 만나게 됩니다.
파티마를 운명적으로 사랑하게 된 산티아고는 사랑에 혹해, 그의 '자아의 신화'를 포기할 뻔 하지만, 파티마의 격려로 다시 여정에 오릅니다. 그 험난한 여정 속에서, 그는 마침내 보물을 찾게 됩니다.
<연금술사>의 은유적이고 상징적인 내용을 거둬내고, 현실적으로 정리하면 그냥 꿈을 좇는 소년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니, 꿈도 어찌 보면 상징적이죠.
정말 표면적으로만 내용을 보면, 그저 피라미드에 숨겨져 있는 보물을 찾으러 떠난 산티아고의 이야기 일 뿐입니다. 어떻게 보면 도굴꾼으로도 보일 수 있는 듯한 내용이죠.
당연히, 이는 농담이고 그 상징과 은유들을 해석하면 "인생을 살아가는 진정한 의미와 목적을 찾기 위해 당신은 목숨까지 바칠 정도의 각오가 되어 있는가? 만약 그렇게 각오가 되어 있다면 우주는 당신에게 어떻게든 그 의미를 찾기 위한 여정(자아의 신화를 이루기 위한 여행)을 선사할 것이며, 그 여정이 아무리 힘들고 위험할지라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진정한 보물을 찾고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포괄적으로 해석한다면 이런 내용인 거 같고, 좀 더 세부적으로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가장 비슷한 단어는 '꿈'이 아닌가 싶습니다.
산티아고가 보물을 찾기 위해 떠나는 그 여정은 사람들이 본인의 꿈을 위해 노력하는 그 과정을 나타낸다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단순히 '꿈'이라고 치부하기엔 소설 속에서 나타나는 '자아의 신화'는 좀 더 깊은 내용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하게도, 산티아고가 너무 고생을 하기 때문입니다.
목숨까지 잃을 뻔하는 여정은 "꿈"으로만 치부하기에는 너무 무거운 여정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우리는 보통 꿈을 위해 목숨까지 걸진 않잖아요? 꿈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고 꿈이 없다 해서 인생을 잘못 보내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어쩌면 '자아의 신화'는 꿈이 아니라, 인간이 자기가 태어난 의미를 찾는 과정.
삶 그 자체에 대한 의미를 찾고 그 의미를 실현하게 되는 여정을 의미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좀 더 현실적이고 세속적으로 생각한다면 "꿈"인 것이죠.
구도자, 종교적으로 생각한다면 자신의 존재의미를 탐구하는 과정으로 해석될 수도 있겠네요.
소설 속에서, 산티아고가 '자아의 신화'를 이루기 위해 겪는 여정은 정말로 위험천만한 과정이었습니다.
사막을 가로지르는 거 자체만으로도 힘든데, 사막의 전사들로 인해 몇 번이나 목숨을 잃을 뻔하기도 하죠. 그의 스승인 연금술사도 직접적인 도움은 주지 않고 간접적으로만 도와줄 뿐이었습니다.
이는 모두, 삶의 의미는 본인이 직접 찾을 수밖에 없고 그 여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다는 걸 은유적으로 나타낸 내용이 아닌가 싶네요.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일상 세계에서, 그 누가 내 존재와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찾아 나설까요? 점심에 뭐 먹지라는 고민과 퇴근 후에 그저 침대에 누워 쉬는 현대인의 삶은 신화라고 하기엔 너무 안일한 삶입니다.
내 인생의 의미나 목적을 알기 위해서는, 끝없는 노력과 자기 탐구를 해야 하며 어쩌면 누군가는 그렇게 하더라도 끝끝내 자신을 알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습니다. 소설 속에서 자아의 신화를 이루지 못하고 죽어간 이들은 모두 그런 사람들이겠죠.
분명, 자아의 신화를 실현하는 과정은 쉬운 여정이 아닙니다.
쉽게 해석하면 "꿈"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데, 요즘 세상에 꿈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아시잖아요? 꿈 없이도 돈만 많으면, 분명 이 세상을 재밌고 행복하게 지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정말로 그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을까요?
물질적인 풍요로움과 여유로움만으로 우리의 정신까지 모든 것이 만족될 수 있을까요?
<연금술사>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 거 같습니다.
산티아고가 얻은 보물은, 물질적인 그 금화들보다 피라미드를 향해 떠난 여정 속에서 얻은 자신의 지혜와 용기, 자신의 반려자 파티마와 확고히 정해진 인생의 방향표이기 때문입니다.
피라미드는 그저 산티아고가 꿈을 향해 나아가기 위한 일종의 목적지일 뿐이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간단하게 예시를 들자면, 누군가는 단순히 부자가 되는 것이 자신의 꿈이라고 쳐봅시다.
자산 50억 정도가 부자라고 한다면, 그 사람의 피라미드는 자산 50억이 되는 순간인 것입니다.
피라미드는 우리의 최종 목적지이며 앞으로 나아가야 될 목표가 되어주는 상징으로 해석됩니다.
하지만, 피라미드는 도착지는 아닙니다.
산티아고가 피라미드에 도착했다 해서, 그 여정이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분명, "자아의 신화"는 피라미드에 도착함으로써 이루어지지만, 삶은 죽음이 찾아올 때까지 계속 이어집니다.
피라미드는 "자아의 신화"를 이루기 전에는 최종 목적지이지만, "자아의 신화"를 이루고 나서는 다시 출발점이 되는 곳입니다.
왜냐하면, 정작 진짜 보물은 피라미드에 있지 않고 양치기들이 들를법한 어느 버려진 교회에 있었거든요.
여기서 재미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바로, 산티아고가 피라미드에서 비몽사몽 할 때, 한 청년이 나타나 이렇게 얘기합니다.
걱정 마, 넌 죽지 않을 테니. 그리고 다시는 그렇게 바보처럼 살지 마. 지금 네가 쓰러져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나 역시 이 년 전쯤 같은 꿈을 두 번 꾼 적이 있지. 꿈속에 스페인의 어떤 평원을 찾아갔는데, 거기 다 쓰러져가는 교회가 하나 있었어. 근처 양치기들이 양 떼를 몰고 와서 종종 잠을 자던 곳이었어. 그곳 성물 보관소에는 무화과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지. 나무 아래를 파보니 보물이 숨겨져 있지 않겠어. 하지만 이봐, 그런 꿈을 되풀이 꾸었다고 해서 사막을 건널 바보는 없어. 명심하라고
이 말을 듣고, 산티아고는 버려진 교회에 방문하여 손쉽게 선물을 찾아냅니다.
만약에 반대의 상황이었다면, 청년은 사막을 건너서 스페인의 교회에 방문했다가, 다시 피라미드에 와서 보물을 찾았을 겁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합니다.
산티아고는 피라미드에 도착함으로써, 자신의 자아의 신화를 이뤘습니다.
자아의 신화를 이룬 자에게는 이제 자신의 진정한 보물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이제, 인생에서 가장 값진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행동력도 갖춘 사람이니까요.
산티아고와 청년의 차이는 바로 자아의 신화를 위해 어떤 위험도 무릅쓰고 찾아 나선 행동력의 차이입니다.
청년은 그저 꿈만 꾸고 노력하지 않았고, 산티아고는 목숨까지 버릴 각오를 하면서 여정을 떠난 것.
청년은 산티아고가 보물을 찾게 해주는 '표지'임과 동시에, 꿈을 포기한 사람의 모습을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꿈은 꾸는 자에게만 이뤄지는 게 아니라,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행동하는 자에게 이뤄지는 내용을 아름답게 비유한 내용인 것 같습니다.
바로 그게 연금술의 존재 이유야. 우리 모두 자신의 보물을 찾아 전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게 연금술인 거지. 납은 세상이 더 이상 납을 필요로 하지 않을 때까지 납의 역할을 다 하고, 마침내는 금으로 변하는 거야. 연금술사들이 하는 일이 바로 그거야. 우리가 지금의 우리보다 더 나아지기를 갈구할 때,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도 함께 나아진다는 걸.
인간은 의식을 가진 존재로써,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을, 오늘보다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의지를 가진 존재입니다.
우리의 그 의지야말로, 연금술 그 자체이며 이 의지는 납처럼 볼품없던 나의 하루도 어느 순간 금처럼 값진 하루를 만들어내게 됩니다. 바로 여기에, 인생의 연금술이 드러납니다.
어제 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의지.
이것이야 말로 납을 금으로 바꿀정도의 마법, 인생에서 가장 신비로운 연금술인 것이죠.
주요 내용들을 해석했으니, 이제 좀 더 다른 아름다운 내용들도 해석해 보겠습니다
이것이 작업의 첫 번째 단계야. 불순물이 섞인 유황을 분리해 내야 하지. 실수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져서는 안 돼.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야말로 이제껏 '위대한 업'을 시도해 보려던 내 의지를 꺾었던 주범이지. 이미 십 년 전에 시작할 수 있었을 일을 이제야 시작하게 되었어. 하지만 난 일을 위해 이십 년을 기다리지 않게 된 것만으로도 행복해.
산티아고가 처음 사막으로 떠날 때, 만나게 된 영국인 동료입니다.
연금술에 아주 심취하여 수많은 이론과 내용들을 공부하였지만, 정작 실행하지는 않았던 사람.
즉, 자신의 꿈과 인생의 의미에 대해 많은 공부와 내용을 탐구했지만, 정작 실천에 옮기지는 않았던 사람을 상징하는 인물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우리의 현실에서도, 꿈을 간직하고만 있고 정작 시도도 안 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물론, 그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사정을 가진 사람도 있겠지만 누군가는 그저 단순히 시도해 볼 용기가 없어서 포기한 사람들도 있겠지요. 그런 사람들은,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지기에 앞서 우선 시작부터 먼저 해보는 게 좋겠네요.
끝으로, 오직 금만을 찾으려는 자들이 있었네. 하지만 그들은 결코 그 비밀을 찾아내지 못했어. 납과 구리, 쇠에게도 역시 이루어야 할 자아의 신화가 있다는 걸 잊었던 걸세. 다른 사물의 자아의 신화를 방해하는 자는 그 자신의 신화를 결코 찾지 못하는 법이지.
금은 처음부터 금으로 존재하고 있다면, 연금술이 필요할까요?
연금술은 납을 금으로 바꾸는 마법입니다. 처음부터 금을 바라는 요행을 꿈꾸고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자아의 신화"를 이룰 수 있을까요? 금은 최종적으로 진화한, "자아의 신화"를 이룬 자들이 얻을 수 있는 보물입니다. 납과 구리, 쇠는 금으로 변하기 위한 아직 때 묻지 않은 금속일 뿐이죠.
그들의 신화는 금으로 변하는 것인데, 이 금은 찾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 과정은, 위에 영국인이 말한 대로 우선은 불순물부터 분리해 내야겠네요.
무언가를 찾아 나서는 도전은 언제나 '초심자의 행운'으로 시작되고, 반드시 '가혹한 시험'으로 끝을 맺는 것이네.
삶은, 무언가를 찾아 나서는 구도자들에게 실마리를 제공해 줍니다.
답은 어쩌면 이미 다 정해져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여정이죠.
그 답을 찾기 위해 떠날 준비가 되어있는 구도자들은 뜻하지 않은 행운으로 그 길을 걷게 됩니다.
이는 초심자들을 "자아의 신화"로 이끌기 위해 삶이 선사하는 조그마한 선물입니다.
하지만, 그 길의 끝에는 가혹한 시험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아마, 이 길이 너무 순탄하면, 그 도전으로 얻는 진정한 결실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여행으로만 따져도, 우리는 순탄하게 흘러간 여행보다 고생했던 여행이 더 기억에 남는 것처럼 "자아의 신화"는 가혹한 시험 끝에서만 탄생하는 신화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연금술사>의 주요 주제는 이전에 제가 리뷰했던 <면도날>과 비슷한 주제인 거 같습니다.
인생의 의미를 찾기 위해 험난한 여정을 떠났던 <면도날>의 주인공 래리는 <연금술사>의 산티아고와 약간 닮은 구석이 있거든요.
래리는 자신만의 의미를 찾고, 다시 세속적인 세상에 돌아가 삶을 살아가는 것을 선택합니다.
<연금술사>의 산티아고는 보물을 찾으며 이야기가 끝이 나지만, 그는 분명 자신의 연인 파티마를 찾아가 인생을 살아가겠지요.
분명한 것은, 래리와 산티아고 모두 순례길과도 같은 그 구도적인 여정이 있었고, 그 여정 끝에 다시 자신의 출발점으로 되돌아와서 인생을 살아가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그 여정이 없었다면 어느 곳이 출발점인지, 도착점인지도 모르는 채 그저 방황하며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아니면 그냥 세속적인 행복만 즐기면서 살아가며 때때로 공허함을 삶에서 느꼈을 테지요.
때때로, 삶을 살아가다 보면 공허함과 외로움에 사무쳐 가슴이 저릿할 때가 있습니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삶 속에서 인생이 텅 빈 거 같고,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우울해지는 순간이 오죠.
저는 글쓰기를 통해 작가가 되는 것이 제 진정한 꿈임을 깨닫고, 그 꿈을 걷기 위한 여정을 걷게 되면서 공허함이 없어졌습니다. 즉, 저도 어찌 보면 피라미드(작가)를 찾아 나선 산티아고와 같으며, 산티아고가 걷는 그 여정은 저에게 있어 글쓰기를 하는 과정이겠지요. 피라미드에 도착하고 나면, 제 보물은 아주 손쉽게 찾을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그 보물은 당연히, 제가 만들어낸 책 한 권이 되겠지요.
소설을 읽은 여러분 모두가, 자신만의 피라미드를 정하고 그 피라미드에 도착하여, 진정한 보물을 찾게 되시기를 바라봅니다.
이상으로, <연금술사 리뷰>였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