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스스로 돌아볼 시간도 없이 보냈었던 2025년,
지금에야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적어 내려 갈 수 있을 만큼
정리가 되는 듯하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도 참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에게,
또한 가족, 친구, 지인, 동료 등등
마음의 상처를 참 많이 입었다.
들리면 들리는 대로, 안 들리면 안 들리는 대로,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나만의 벽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나를 보호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나를 보호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나를 보호하는 방법을. 나름대로 찾을 수밖에 없었고, 처음부터 잘 통한건 아니지만, 이제는 나를 보호할 방법이 생겼다.
예전의 나는,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아도, 무시를 당해도, 대꾸가 없어도, 연락이 늦어도, 고집으로 나를 곤경에 빠뜨리고, 내치고 버려져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을 이해하려 애썼다.
관계가 틀어지면,
'그게 무슨 큰 의미가 있겠나' 생각 들었다.
하지만,
한 번 일은 반드시 두 번째, 세 번째가 되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러한 배려와 다정함, 먼저 숙이고 가는 것이 항상 존중으로 돌아오지는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떤 친절은 당연한 것으로 소비되었고,
어떤 배려는 약점처럼 취급되었다.
그럴수록 더 나는 그들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들은 그들이 맞다고 더 날뛰며, 그럴수록 나는 더 이용당하는 도구가 되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예전보다 조심스럽고 신중하다.
누군가를 알아가는 데 시간을 쓰고, 말 한마디에도 마음을 담기보다 여백을 남긴다.
벽을 쌓았다고 해서 완전히 닫힌 것은 아니고, 단지 문을 함부로 열지 않겠다는 선택에 가깝다.
아마 앞으로도 나는 쉽게 마음을 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나를 지킬 줄 아는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제는 알 것 같다.
모두에게 이해받을 필요도 없고, 모든 관계를 이어갈 책임도 나에게 있지 않다는 것을.
필요 이상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거리,
굳이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나 자신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정리되는 관계라면,
애초에 나는 그 관계에서 하나의 사람이라기보다
도구처럼 소비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선택들로 인해
사람을 덜 만나게 된다면,
그건 외로움이 늘어나는 일이 아니라
진정한 사람이 아닌 이들과 보내야만 하는
불필요한 시간들이 줄어드는 일일 것이다.
내 마음이 상처 입은 채로,
알면서도 계속 가게 되는,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느니,
나는 이제 그 강 앞에서 멈추는 법을 연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