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터 여러 도시가 폭설과 강풍에 갇혔다.
세상은 한순간에 하얗게 변했고, 바람은 사람을 밀쳐내듯 휘몰아쳤다. 걷는 것조차 쉽지 않은 곳들이 있었다고 한다. 뉴스 속 장면을 보며 생각보다 피해가 크겠다는 마음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내가 사는 이 도시는 달랐다.
폭설이라기보다는 강풍과 함께 잠시 눈비가 흩날렸고, 이내 소복이 눈이 내려앉았다. 소란스러울 만큼의 자연은 아니었지만, 그 며칠의 날씨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지쳐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오늘은 모두가 늦잠을 잤다.
작은아들은 이불속에서 얼굴만 빼꼼히 내밀었다.
복숭아처럼 말랑한 얼굴로,
“엄마, 좋은 아침이야.”
아직 사춘기도, 변성기도 오지 않은 아이의 목소리는 깨어나자마자인데도 맑고 이뻤다.
세상에 대한 경계가 아직 생기지 않은,
환한 아침의 소리였다.
나는 자석에 이끌리듯 아이에게 다가갔다.
이불 안으로 들어가 아이를 꼭 끌어안았다.
따뜻하고 복슬복슬한 체온, 달콤한 냄새가 나는 듯한 살결. 손으로 등을 쓰다듬다 보니, 애기였던 시절의 모습들이 겹쳐 떠올랐다. 밤새 안고 재우던 시간들, 이유 없이 웃어주던 얼굴, 잠든 숨결.
그 짧은 순간에 마음이 말랑해졌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이미 충분히 위로받고 있었다.
이불에서 나와보니 큰아들이 아침을 차려두었다.
나와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커피도 내려놓았다.
동생을 위해 카모마일 차까지 준비해 두었다.
주말 아침의 서비스란 바로 이런 것인가.
거대한 덩치의 아이가 세심하게 이쁜 커피잔을 골라 세팅을 하는 모습이 떠오르자, 참..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이번 주는 유난히 마음이 많이 힘들었다.
몸도 마음도 무리를 했고,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히는 순간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냥, 참았다. 무조건 참았다.
그런 시간 끝에 찾아온 늦잠과 여유로운 아침.
이 평범한 장면이 이렇게 달콤할 줄은 몰랐다.
마치 딸기맛 사탕 같이.
누군가와 의논하고 싶었다.
묻고 싶은 것도 많았고, 내 머릿속을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을 정리하고 싶다.
하지만 이번 주말만큼은, 그 모든 질문을 잠시 미뤄두기로 했다.
까르르 웃으며 넘어지는 아들 둘을 바라보며,
지금 이 순간에 감사하고 싶었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행복, 분석하지 않아도 충분한 마음.
온전히, 나에게 주어진 선물 같은 아침.
오늘은 하얀 세상과 복숭아 살결과
다정한 배려의 선물들이면, 그것으로 됐다.
근심 걱정과 깊은 생각은
월요일 아침에 다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