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정리-수첩과 공책

그리고 나에게 사과.

by Traum

그동안, 이런저런 이유들로

크고 작은 수첩들과 공책들이

내 책상 한편에 제법 많이 꽂혀있다.


하나하나씩 다 들여다봐보니

이제는 더 이상 필요 없는 것들이 많았다.

더 이상 알고 싶지 않은 것들,

불필요한 많은 것들,

지나간 세세한 많은 기록들.

다 찢어서 버렸다.


수첩과 공책을 정리했을 뿐인데,

이렇게 속이 시원해질 일인가.

그동안 참 뭐가 너무 많았네.



요 며칠새 각각 다른 도시의 여러 한국 가족들이

너무 힘들어하시며,

한국에 다시 가신다고 크고 작은 충격과 일희일비할 수밖에 없는 너무 많은 상황들에 힘들고 당황하셔서 연락에 오신다.

"독일 사람 이상하다, 차갑다, 발뺌한다, 그 누구도 사과를 안 하고, 서로 "ich(나)"만 외치다가 싸우고,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남에게 피해 끼치고"

이렇게 이상한 곳인지 와봐야 안다고...

아무도 몰랐다고... 억울하다고,

왜 진작에 이런 정보는 못 들었냐며,

왜 아무도 안 가르쳐주냐며,

우시면서 내게 연락하시는 분들이 많아졌다.


다 들어보니.. 말문이 그저 막힌다.

물론 각자 상황에 의해 지금 현재 그들은 가장 아픈 것임을...


하지만 나에게 이곳에서의 힘듦이란,


추운 겨울에 본인 딸 가족이 들어와야 하니까 당장 나가라는 통보를 받은, 두 살짜리 애기를 여섯 살짜리 아들에게 맡기고, 매일 오후마다 눈을 헤치며 빈 집을 찾으러 다녀야 하는 상황,


갑자기 새벽마다 온갖 소리를 내는 위층 집주인, 그러나 오후에 애들 소리로, 본인들은 애들을 제일 싫어한다며 당장 나가라는 소리를 들어, 매일 잠 못 자고 몇 달을 동동거리는 상황.


크리스마스 축제의 인형극에,

독일 여자아이는 마리아, 남자아이는 예수, 나머지 외국인들은 동물. 그중에 우리 아들 당나귀라며,

"넌 앞으로 매일 말도 하지 마, 넌 동물이니까!!! " ,

그래서 유치원 교사들 눈치 보고, 애들한테 놀림받아

말 한마디 못했던 우리 아들을 봐야만 했던 상황,


우리 큰아들 갓난아기 때, 남편 졸업학기 때,

갑자기 벨을 눌러 나가 보니, 같은 건물 터키 할아버지가

"여기 복도에 너네 아기가 볼 일 봐놨으니, 니들이 치워"라는 소리에, "우리 아기 태어난 지 두 달 돼서 아직 못 걷는데" 하니,

그럼 이게 누구냐며, 우리 집 들어와서 다 때려 부수던 일을 눈뜨고 보고 참고, 오히려 할아버지를 진정시켰지만,

우리 집 애기라며, 우리가 발뺌한다며 뒤집어 씌우는 걸 겪은 이런 상황.


내가 트램 안에서 묶여 있는 머리가 싹둑 잘렸거나,


외국인청에서 죄도 없이 죄지은 사람처럼 기다리며, 떳떳한 학생 비자인데도, "독일이 선진국이라서 듣지도 보지도 못한 너네 나라 같은 데서 와서 빵만 축낸다"는 소리를 들어야 했던 날들.


뿐 아니라, 수만 가지의 아픔이 내 안에 있는데,


온 지 6개월뿐인데, "독일어 점수"가 기대만큼 안 나와서 실망해서 갈라고 하고,

온 지 8개월 되었는데, " 학교에서 못 알아듣겠어서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라고 하고,

온 지 3개월 됐는데, "답답해서 왜 이러고 살아야 하냐"며 우신다.


난....

난....

울며 하소연할 곳도 없던 그때의 나에게,


"미안했어, 그때 너를 혼자 두었어서. 미안했어" 라며,

매일 밤마다 흘렸던 눈물에 사과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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