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의 마음

by Traum

큰아들의 사춘기는,

갑자기 내 아들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던

아이가 7학년 때, 어느 날이었다.

애교도 많고, 우리에게 정말 많은 말을 했던 아이가,

문은 닫고 들어가지 않았지만, 말수가 적어졌다.

방에서 혼자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어도,

우리에게 보여주고, 언제나 종알종알했던 아이가,

어느 날부터 보여주지도 않고, 책 내용도 말도 안 해준다.


나는 아들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사춘기라고 부를 수 있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엄청 감사한 거야 "

이렇게 하늘색의 하늘이 있었구나...



아이들의 선택과 상관없이 아이들은 독일에서 태어났다.

나 또한 내가 아이를 여기서 낳고 키우게 될 거라는 생각도 상상도 한 번도 안 해봤었기 때문에,

나도 처음 해보는 엄마이지만,

세상에 태어나 어느 순간, 나가기만 하면 엄마 아빠와 다른 얼굴, 언어 등 모든 것을 맞서야 하는 아이를 생각하니 너무 미안했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유치원을 보내지 않았다.

독일어는 무조건 쓰지 않았다.

어차피 나가면 내 선택과 상관없이 보고 듣는 것은 독일어, 독일 사람들이다. 그런데 나는 나의 자식과 절대로 독일어로 소통하고 싶지 않다.

하나부터 열까지 한국어로만 아이와 소통을 했고, 한국만큼 뿐 아니라 아예 있지도 않은 책들, 배로 몇 권을 보내달라고 부탁하고, 그 긴긴 사이에 내가 이야기를 만들어 그림을 그려서 아이에게 읽어주고 연극 놀이를 해주었다.

지금이라면 방법이 여러 가지겠지만, 그때는 인터넷도, 핸드폰도, 티비도, 아무 매체가 없이, 온전히 멘 땅에 헤딩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그렇게 아이는 완벽한 한국어가 되었고, 4년 후 동생이 태어나고, 곧 초등학교 지원할 시기가 되었을 때에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해서 딱 6개월을 다녔다.

유치원을 6개월 다니면서, 나는 둘째 애기를 데리고, 한글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초등학교 입학 전에 한글을 다 쓰고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엄마가 책을 읽어준 날들이...

지금까지이다.


아들이 사춘기가 왔을 때, 처음에 긴가민가 했던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저녁에 엄마가 한국어로 책을 읽어주는 시간에 붙어 앉아서 같이 이야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그런 큰아들의 모습을 보고,

"사춘기가 아니야"라고 했지만,

여자인 엄마인 나의 시선으로는,

차가워지기 짝이 없는, 다른 아이로 느껴졌던 것이다.

그러던 8학년 시작하고 겨울 어느 날...


아이가 하교해서 집에 오자마자 갑자기 나를 크게 부른다.


"엄마, 나 이상한 거 알아냈어. 학교에 반 애들이 너무 이상해.

모두가 말을 안 하고, 대답도 안 하고, 남자애들은 심지어 갑자기 싸워. 여자애들은 뭐 채팅인가 하다가 싸웠대. 너무 이상해. 그리고 선생님들은 자꾸 한숨 쉬다가 그냥 나가셔. 그리고 아무도 발표를 안 해. 진짜 나만 해.

엄마, 왜 그런 거지?"


순간 나는 웃음을 애써 참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 엄마가 우리 아들 한 번 안아봐도 돼?

축하해! 어둡고 긴 동굴을 이렇게 빨리 나왔네.

고생 많았어! 우리 고기 파티 해야겠다!!"


그 의미를 아들이 알았을는지는 모르겠지만,

하고 싶었던 많은 질문과 이야기는 뒤로 하였다.

아들은 큰 미소로 답해주었던,

그날이 잊히지가 않는다.


그리고 우리 작은 아들,

아직 오지 않은 사춘기.


"나는 사춘기가 제일 싫어, 형아처럼 사춘기 그거 안 할 거야"


라고 했던 3학년 어린이의 음성이 아직도 들리는 듯하다.

그저 형아가 덜 놀아줬다고 사춘기가 세상에서 제일 싫다는 꼬꼬마 아기였었는데...

아직 어린이인 우리 작은 아들의 사춘기도,

지혜롭고 현명한 길을 가게 되길.


오늘 부쩍 여러 소식을 들어서인가.

모두 지혜롭게 성장해 나가길

이렇게 이모의 마음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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