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천국은 없다.
고등학교 2학년, 2학기 독일어 시험.
4시간 연속 시험이다.
인내와 끈기가 요구되는 시험.
학교의 많은 수업에서, 선생님이 자주 안 나오신다.
자주라고 하기엔 너무 일상이다.
시험 범위만 알려주고,
“알아서 공부하라”는 말만 남긴 채 계속 부재중이다. 아이는 언제나 늘 그랬듯이, 요즘에도 꾸준히 수업이 없어져서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 많아진다.
(작은 아이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큰아들은
시내에 있는 아빠 학교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리고,
혼자 공부를 한다.
얼마 전, 산책 겸, 또한 미술 시간에 보이지 선생님이 내주신 중요한 과제를 위해,
네 식구가 함께 르 코르뷔지에의 건물을 보러 갔다.
미술의 앞으로 2년 동안의 테마는,
건축이다.
작은 아들은 마음껏 뛰어다니고,
나는 오랜만에 햇빛을 바라보고 있었고,
큰아들과 남편은 건물 앞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남편이 말했다.
우리가 둘만 있었을 때, 공부하다 지쳐서 산책할 때,
그 많은 시간에 이곳을 지나다녔는데,
이제는 이렇게 커버린 아이들과 와서,
아들한테 설명을 하고 있는 게 너무 새롭다고.
중간이 없는 것 같다.
한국의 현실과 독일의 현실.
어디가 더 좋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여기에는 학원이 없다.
있다고 해도 성적을 올리기 위한 곳은 아니다.
과외도 없다.
도움을 줄 수 있는 선생님도 없다.
문제집도 없다.
인터넷에서 누구나 바로 찾을 수 있는 프린트가 전부다.
집에서 고3까지 도와줄 사람이 없다면,
(대부분의 집은 부모가 고3까지 전 과목을 봐줄 수 있지 않으며, 봐주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아이가 공부를 하겠다고 선택한다면,
그때는 방법은 딱 한 가지이다.
모든 것을 혼자서 하는 아이가 되는 것.
교과서는 흔적도 남기면 안 된다.
다시 반납해야 한다.
결국 남는 것은 모든 과목시간에 받은
얇고 흐릿한 갱지 프린트가 전부다.
금방 구겨지고, 쉽게 버려질 수 있는 종이들.
무언가 아이들에게 동기부여가 전혀 없으며,
공부도 그렇게 흩어지는 느낌이다.
이게 정말 좋은 방식일까.
외국인 부모 입장에서는 더 막막하다.
독일어가 모국어가 아닌 부모가,
이곳에서 고등학교를 안 다녀 본 부모가,
독일 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순간부터
모든 것은 놀라움의 연속이다.
그런데도 이 시스템은 계속 간다.
큰 시험을 앞두고 있는 아들,
모든 수업은 점수화되고,
교사는 언제나 부재중이며,
시험과 과제는 아이의 몫이다.
이곳의 교육은
결국 하나를 전제로 한다.
스스로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그래서인지
대학 진학률은 전혀 높지 않다.
결과는 당연히 전혀 놀랍지 않다.
큰아이는 다행히
어릴 때부터 스스로 하는 아이였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시스템의 무게를 아주 늦게 다른 통로로 느끼게 되었다.
세상에 완벽한 곳은 없다.
다만,
어떤 시스템이든
결국 버텨야 하는 것은
아이 자신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