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앞에 앉아있는 게 좋았었다.
내가 꿈꾸는 미래를 위해,
정말 열심히 했다.
아주 어릴 적엔 내성적이었다.
반장을 하기 시작하던 국민학교 3학년부터,
고3까지 내내 반장을 했다.
그러면서 활발하고 적극적이고 외향적인 성격으로 변해갔던 것 같다.
부모님의 영향으로
나 또한 당연히 방송국에서 일하게 될 줄 알았고,
방송 관련된 직업을 꿈꾸었다.
집에 방마다 쌓여있던 비디오테이프들,
많은 모니터, 어린 나이에 너무 컸던 많은 카메라들,
스튜디오의 조명, 마이크 등등.
특유의 아빠 회사 냄새, 기계 냄새.
주말마다 놀러 가서 구경하는 재미가 솔솔 했고,
일하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들이
그렇게 부러웠었다.
자연스레 나 또한 모든 기계들과 친해졌고,
거기서 나도 생동감을 느끼곤 했다.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모두가 힘들어진 시점에, 우리라고 피해 가지 않았고,
한참 막 중요한 시점에서 나는 하나둘씩 포기와 선택, 그리고 무언의 희생이 뒤따랐다.
정말 나 하나 빼고, 모두가 학원을 엄청 다녔고,
과외를 같이 하자고 친구들에게 제안이 들어오면, "시간이 안돼"라며 사실이 아닌 거짓말로 거절하였었다.
모두가 사교육을 많이 하다 보니, 학교에서도 늘 자습이었고, 그렇게 되니까 나는 배우는 것 없이 등하교를 하게 되는 꼴이었다.
그래도 그렇게 꿈에 그리던 신방과를 들어갔다.
그날의 눈물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포기, 희생, 책임, 단념 이런 단어들이
마치 나를 설명하는 것 같다.
시간이 한참 흘렀지만, 나는 불행히도 너무 또렷하게 기억이 다 나고,
다른 어떤 친구들은 자기만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보며, 응원해 주고, 정작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몰래 울어야만 했던 숱한 날들이 너무 또렷하게 아직도 남아있다.
그래도 괜찮다.
인생의 반을, 멘땅에 헤딩을 제대로 하면서,
지금이 되었다.
그 사이 비록 나의 두근거리던 십 대의 꿈은 못 이루었지만,
굽이굽이 비탈지고 험하고 멀고 끝이 아예 안 보이는 길을 가다가 또 다른 나의 길을 찾았고,
도중에 힘들고 포기해버리고 싶은 수백억 번의 순간들도 다시 일어났다.
왜냐하면, 나만이 나를 도와줄 수 있으니까.
이번 여행.
왕복 약 2000km의 여행 속에서,
참 많은 생각을 정리하고,
지나온 나를 토닥여줄 수 있게 되었고,
지금의 나를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미래의 나를 두근거리고 설레며 그려보게 된다.
용기가 난다.
집으로 오는 길에 잠깐 들른 프라하에서...
마구 뒤섞였던 생각들이 정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