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너 때문이야"
"나는 아무것도 안 했어"
남녀노소 불문하고 이 두 마디로 시작해서 이 두 마디로 하루가 마무리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곳의 삶 1년 차에는,
집 열쇠를 잊어버리고 나와서 업체를 불러 100유로가 나가도, '열쇠를 아직도 쓰는 데는 다 이유가 있겠지' 했고,
이사를 하는 와중에 말도 안 되는 절차들을 보고도, 여긴 그렇구나, 사람 사는 데가 다르니 그렇지, 라며,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처구니없는 긍정적인 사고를 했고,
이곳의 삶 5년 차에는,
혼자서 아이를 아무 정보도 없이, 그 누구도 없이, 아직은 낯선 곳에서 키우느라, 그리고 산후 몸 회복이 안된 채로 모든 걸 해야 해서, 그리고 남편이 아직 졸업도 전, 취직도 전이라, 진짜 가야 할 길이 막막했기에, 그리고 그만큼의 언어도 매우 부족했기에, 진짜 하루씩을 살아내느라 그게 다였다.
이곳의 삶 10년 차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많은 말도 안 되는 억척에도 불구하고, 일단 지금 10년이나 살았으니, 그래도 살아야지 하면서, 100중에 99가 이해가 안 돼도, 마치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으로 포장하여 스스로를 위안하고 매일매일 누르며 살았다.
이곳의 삶 15년 차에는,
사람이건 나라건, 큰 일을 겪어봐야 제대로 보인다는 말을 하고 싶다. 모든 나라가 다 겪는 코로나를 겪어내면서, 우리는 매일 저녁 자기 전 한국의 뉴스와 매일 아침 일어나 유럽의 뉴스를 접하며, 이건 더 이상 아니라는 수많은 생각들로 1분 1초가 어지러움을 겪게 된다. 왜 지금까지 여기에 있어서 이 말도 안 되는 것들을 보고 듣고 있어야 하는지, 그저 침묵뿐, 말이 안 나왔다.
이곳의 삶 18년 차부터 지금까지,
너무 많은 것이 들리고 보이게 된다. 그동안의 매일매일이 다 떠오르면서, 그 수많은 말들 속에 온갖 차별과 무시와 비상식적인 모든 것들이 섞여있음을 이제야 다 알게 된다.
이사 문화의 비상식적임, 의식주의 비합리적이고 불편함, 거리의 모든 사람들의 인상부터 시비, 인종차별, 남녀차별, 거기에 10여 년 전보다 1000배는 많아진 너무나도 많은 난민들과 그 외의 각국의 외국인들이, 각자의 문화로 살아가며 한 곳에 섞여있으니, 될 일도 안되고, 혼란 중의 대혼란이며, 지저분함의 대명사가 되며, 질서와 예의는 온데간데 찾아볼 수 없고, 서로 간의 존중과 존경은 애초부터 없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 20년 전부터 지금까지 바뀐 것이라고는 전 세계가 알고 있는 "스마트폰"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누군가는 우리에게,
"그래도 애들 사교육 안 하니까 돈 안 들어가서 얼마나 좋아"라는 말을 한다.
공교육은 무너졌고, 한 명이라도 공부를 시키려는 한국과 반대로, 한 명이라도 떨어뜨리고, 공부하려고 하는 아이들이 많아질수록 교사들은 의지를 꺾으려 노력하고, 더 밑으로 보내려고 한다. 공교육이 무너졌으면 사교육이라도 되던지, 공부를 하려고 하는 아이들에게는 답이 없음을 알게 된다. 교사들은 툭하면 병가로 한두 달씩 오지도 않고, (그러다 영영 오지 않는 경우도 다반사이고) 의무적으로 시험은 또 다 본다. 교과서도 어떤 것도 쓰지 않고 학기말에 다시 반납해야 하기에, 애초부터 아이들은 쓰지 않고 눈으로만 보는 것에 익숙하고, 점점 그마저도 하지 않는다. 교사들은 유튜브를 보고 알아서 하라고 하거나, 매번 자습이다. 모르는 것을 질문하면, "다음 시간에 물어봐",라고 하고, 그다음 시간 물어보면, "시간이 없어" 란다.
그럼 모르는 부분은, 백 프로 나의 몫이 되고야 만다.
너무 다행히도...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하는 큰아이는 8학년부터 거의 질문 없이 혼자 해결하였고, 11살의 작은 아이는 4년 전 형 때보다 훨씬 더 심각해진 교사들의 부재로, 두세 번의 수업 후 보는 수많은 시험을 위한 질문이 많은 건 당연한 것이다.
그렇다, 사교육 없어서, 해주고 싶어도 없어서, 우리 몫이다. 사교육 없다고 부러워하는 지인들에게 이야기한다.
"만약에 말이야, 국영수는 당연한 거고,
밥 하다 말고 물리 문제 풀어주고, 씻고 나오자마자 화학 문제 도와줘, 퇴근하자마자 옷 갈아입으면서 생물 문제 같이 해결해. 한국어로 말고, 제3의 외국어로. 그렇게 끝없이 하고 싶으면... 언제든 와!"
안 들려서 못 듣고, 안 보여서 못 봤고,
말할 수 없어서 못 말했고,
외국인이라서 받는 억울함과 고통은. 침묵에 묻어두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아이들이 성장하였다.
아이들은 이야기한다,
" 엄마, 우리가 봐도 이건 아니야. 조금만 참아, 우리가 빨리 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