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방과 후 엄마활동

by 모은수


자기 일이 가장 중요한 '개인주의자'가 아이를 낳으면 육아 인생은 후회밖에 남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이들은 조금만 관심을 소홀히 해도 잡초처럼 무성하게 자라버리더군요.


2015년, 도저히 제정신으로는 살 수 없을 것 같은 무거운 세월을 어딘가에 털어버려야만 했고렇지 않으면 죽을 요량이었습니다.

무책임하게도 나는 평생 '자살'이라는 것을 꿈꿨던 못난 사람입니다.

자식이 태어나고도 그런 생각들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고, 우울과 공황 불안 속에서 길을 헤맸어요.


그렇게 처음 글쓰기를 시작한 것이 벌써 11년 전이네요.

'쓴다'라는 행위가 그 어떤 외침보다 후련했고, 미친 듯이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서 걸음마를 시작했을 때도

나는 글에 미쳐 마감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일상도 무너진 채로 놀아달라며 발 밑에 앉아 발목을 붙잡고 우는 아이를 모른 척하며 8시간 동안 의자에 앉아 있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나는 살기 위해 글에 매달렸던 것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어디 목이라도 매달았을지도 모르는 심각한 상황이었으니까.

그렇게 7년간 무모하게 글을 쓰며 여러 공모전에 당선되고, 회사와 계약하며 작품활동을 이어나갔습니다.

부모가 자라느라 아이들은 자라지 못하고 있었음을 7년이 지나고 나서야 커다란 후폭풍을 겪어야했습니다.


큰 아이에게 찾아온 틱장애.

상담센터에서는 아이에게 우울증세가 보인다며 상담치료를 권유했고

둘째 아이는 자폐증상이 보인다며 adhd 검사를 함께 해보라는 얘기를 들었네요.

아이들과 저의 세상이 무너져 버렸지요.

그때 처음으로 손에서 글을 놓았습니다. 1년간 아무것도 쓰지 않고, 아이들을 지켜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좋은 부모가 되는 건 대체 뭐고, 망할 놈의 독박육아로 놀아줘야 하는 것까지 엄마의 몫이니 실로 눈앞이 캄캄하더군요. 7년간 부모님의 집에 얹혀살던 나에게 엄마는 더 이상은 못하겠다며, 분가를 요청했고 우리 네 식구는 독립 후 수도권을 떠나 영종도라는 연고도 없는 섬에 들어가 살게 되었습니다.


공항철도가 잘되어있는 영종도는 배를 타면 인천 월미도까지도 갈 수 있는 곳인데

인천공항과 가깝고 10만이 되지 않는 인구비율로 한적한 자연경관을 누릴 수 있었어요.

다행히 남편의 일이 조금씩 풀리며 전셋집이지만 태어나 처음 아파트라는 곳에서도 살게 되었던 그때

큰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영종도에 이사를 와서 아이들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는 8년 만에야 '엄마의 역할'을 해야 했어요.

그러나 여전히 알 수 없었습니다.

과거를 떠올려 봐도 내가 부모님과 함께 놀고, 웃었던 때는 없었거든요.


'믿음'이라는 방임아래 '방목'이라는 좋은 핑계와 함께 자라온 나의 유년시절은 기쁜 날보다는 외로웠던 날이 훨씬 더 많았던 것 같아요.


내가 부모님께 원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받지 못한 것을 아이들에게 해주면 어떨까?


그런 고민에서 시작된 문제에 해답이라도 주듯, 아이의 학교 홈페이지에 '방과 후 체육선생님 모집'이라는 채용공고를 보게 되었죠.


저는 태권도 선수로 활동하며, 장애인센터에서 아이들의 신체교사로도 일을 한 적이 있어요.

10년간 에어로빅과 요가 다양한 운동강사로도 일한 전적이 있어 자격은 충분했지요.


'작가'라는 직업과 '체육'이라는 장르를 섞어 '놀이체육'에 '이야기'를 입히면 어떨까?

오랜만에 정장을 차려입고 긴장되는 마음으로 교무실에 들어갔고 교감선생님을 비롯한 5명의 선생님 앞에서 면접을 봅니다. 그렇게 방과 후 교사가 되어 아이와 함께 초등학교에 들어가게 된 것이 벌써 6년이네요.


우리는 참으로 다양하게 놀았습니다.


그 덕에 지금 큰아이는 중학교2학년, 작은아이는 중학교1학년이 되었고

후회로 점철된 과거를 씻어내 보라고 하듯 막내를 낳아 '그때 후회했던 행동' 들을 되돌리며 참회하는 중입니다.


방과 후 백씬은 아이들과의 관계를 건강하게 하기 위한 <백신> 같은 이야기에요.

체육수업과 태권도수업 그리고 영화교실과 독서지도까지.

일주일에 두 번, 아이들과 학교에서 만나며 우리는 같이 자라났습니다.


처음부터 좋은 부모가 어디 있을까요,

함께 자라는 거지.


육아에 지친 당신과

어린시절의 상처로 미쳐 자라지 못한 어른 아이들에게

6년간의 기록이 '백신' 처럼 작용하길 바래요.

몸도 마음도 건강하기를 바라며.

함께 놀고 웃었던 6년의 시간을 소개하겠습니다.


제 얘기를 들어주시겠어요?

지금부터 같이 놀사람 손!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