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 후 백신
"엄마라고 해요, 선생님이라고 해요?"
첫 수업을 앞두고 큰애가 물었다.
"음... 우선 학교에서는 선생님이라고 해야지"
"네. 엄마인 거 말하면 안 되죠?"
".... 음.... 우선은?"
우리는 서로의 호칭정리를 마치고 들뜬 마음으로 1학년에 입학했다.
오랜만에 첫 출근이었다.
돌봄 교실의 방과 후 놀이체육 선생님으로 강당에 입성할 때의 설렘이란!
15명 정도의 아이들을 1부와 2부로 나누어 주 1회 4시간 정도 체육수업을 해야 하는 날이었다.
우리는 통성명을 하고, 출석을 불렀다.
1부는 저학년, 2부는 고학년 수업으로 이루어졌는데 녀석들은 날 보며 짓궂게 물었다.
"남자예요, 여자예요?"
나는 이 질문을 평생 듣고 산 사람이다.
일단 커트머리였고, 생긴 거나 꾸민 거나 영 남자 같은 행색이었으니 어느 정도 이해하지만
그날은 립글로스도 바르고 갔건만 그것이 그냥 침을 흘린 거라고 생각한 걸까.
짜식들은 나의 색조화장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날도 내게 질문을 쏟아냈다.
물론, 알고도 하는 질문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나는 웃으며 '남자야'라고 말했고, 녀석들은 혼란에 빠진 눈동자로 나를 바라봤다.
"헤헤, 뻥이야"
아이들은 예감했을 것이다. '저 선생님... 이상해'
수업 중에는 참으로 다양한 아이들이 온다.
요즘은 특히나! adhd친구들이 정말 많은데 우리 둘째 아이도 그렇고 나의 친한 친구들은 물론 내게도 adhd성향이 있어서 나는 그들이 편하고 좋다. 일화를 하나 소개해 보자면 증상이 심한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그 친구는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앞으로 구르고 개구리처럼 점프를 하거나 옆돌기를 하고는 했다.
물론, 맥락 없이 해댔기 때문에 수업에 방해가 되는 행동이었지만
나는 그것을 놀이로 생각했고 아이가 갑작스러운 행동을 하면 그걸 몸풀기 체조로 사용했다.
녀석은 처음으로 자신을 제지하지 않고 따라 하는 이상한 인간을 만난 거다.
온 아이들을 다 따라 하게 하면서 문제아를 리더로 만들어 버렸다.
아이들은 낄낄 거리며 준비운동을 시작했다.
나는 3년 정도 장애인센터에서 어린 친구들의 신체활동 교사를 한 적이 있기도 하고
사회부적응 청소년들을 모아놓은 사회복지관에서도 수업을 한 적이 있다.
나는 나름 베테랑 강사였다.
녀석들을 움직이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딱 하나다.
'하리보 젤리'
나는 젤리 하나를 들고, 온 세상을 지배하듯 어깨를 활짝 펼쳤고 아이들은 젤리를 하나라도 더 얻어먹기 위해
달리고 또 달렸다.
7세까지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방귀, 똥, 코딱지'가 세 글자면 천하를 호령할 수 있고
초등학생들에게는 젤리 하나면 모든 것이 끝난다.
그러나 한 가지 간과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애매한 나이에 끼인 녀석들이었다.
사람들은 사춘기 애들이 무섭다고 고학년들의 이야기를 하지만, 모르시는 말씀.
5, 6학년들은 자신들을 굉장한 고위급으로 생각하며 4학년부터 아주 낮은 계급으로 여긴다.
'유치한 놈들..'이라는 표현을 쓰며 자신들의 세계에 껴주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1-3학년 까지는 완벽한 저학년이다. 그들은 젤리만으로도 줄을 세울 수 있다.
그러나 움직이지 않는 녀석들이 있다.
4학년.
놈들을 잊고 있었다.
4학년들은 자아가 자라기 시작하는 나이다. 허세의 끝판왕 들이고 자신의 감정에 너무나도 솔직한 개체들인데 수업 중 4학년과 부딪치고 만 것이다. 그것도 일진 녀석에게.
녀석은 수업 내내 비협조 적이었다. 줄을 서라고 하면 줄을 서라고 하는 내 말투를 따라 하거나
공을 던져달라고 하면 문밖으로 던져 버리기도 했다.
다른 아이들 수업할 때 방해하는 것은 기본이고, 핸드폰을 하고 떠들고, 장난치고....
나는 참을 인을 새기며 녀석들의 기강을 잡으려 눈에 힘을 빡 주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 녀석들의 미끼를 문 것일지도 모른다.
4학년들은 '시비'걸기를 좋아하고, 그 시비의 주인공이 되어 자신이 우월해지기를 바라는 존재들인데
내가 바로 그 싸움의 덫에 걸린 것이다.
말을 듣지 않고, 무시해 버리기에 "00아 대답해야지"라고 말했지만 녀석은 눈으로 뻐큐를 날렸다.
나는 한 번 더 참고, "00아 선생님이 말하잖니. 대답해야지?" 했고, 역시나 비웃음만 돌아왔다.
군인의 혼이 들어온 듯 각이 잡혔다.
"차렷"
녀석은 나의 나지막한 음성에 멈칫하며 몸을 움찔거렸지만 차렷은 하지 않았다.
"입 없어? 대답 못해?"
이 정도면 꽤나 무서웠을 텐데 녀석은 얼굴을 찌푸리더니 나를 향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낮은 음성으로 에이 씨... 하는 욕을 하더니
해바라기의 김래원처럼 눈 코입을 확장시켜 소리쳤다.
"아 씨ㅂ, 왜 나한테 입 없다고 하는데!! 사과해! 내가 입이 없어? 사과하라고!!"
나는 순간 얼어붙었고, 녀석을 밖으로 돌려보냈다.
교무실로 간 아이는 오지 않고 학교 선생님이 내게 와서 하는 말은 너무다 황당했다.
"선생님. 학교에서도 00은 아무도 건들지 않아요...
저 아이 부모님이 민원을 많이 넣고, 전화를 너무 많이 하시거든요.
집에서도 건드리지 않고, 학교에서도 그냥 두는 아이니까... 그냥 두세요..."
라는 거다!!!
녀석은 승기를 손에 쥔 승자처럼 나를 비웃었고
봤지? 내가 이런 사람이야! 라는 듯 자신의 친구 3명을 불러 체육관 앞에 죽치고 앉아 수업을 방해했다.
어떤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일주일 후, 수업시간이 돌아왔다.
녀석은 오늘도 나의 수업을 방해하기 위해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체육수업을 휘저었다.
나는 축구공을 체육창고 쪽으로 뻥! 찼고, 조용한 체육창고 쪽으로 공이 굴러들어갔다.
녀석은 공을 쾅! 하고 차며 시비 걸듯 날 째려봤고, 나는 창고에 놓인 돌돌 말린 초록색 앞 구르기 매트를 향해
주먹을 날리기 시작했다.
"우워워웡워!!!"
괴물 같은 소리를 지르며 초싸이언의 주먹처럼 빠르게 매트를 가격하고 박치기를 시작하는 날 보며 녀석은 잠시 이성이 마비된 듯 멈춰 있었다.
나는 내안의 화를 잠재운 후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녀석에게 다가가 말했다.
"내가 생각해 봤는데, 그날 너에게 입이 없다고 한 거. 그건 미안하다.
지금 보니 입이 있네!
내가 니 입을 미쳐 보지 못했어! 사과할게!"
녀석은 멍하게 나를 쳐다봤다.
나는 뒷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 뜻은 말이다.
대답을 하라는 뜻이지, 1차원 적으로 네가 입이 없다는 욕은 아니었다는 걸 알길 바란다.
그리고, 수업시간에 방해하는 건 안돼. 나는 그런 건 못 봐.
그리고, 선생님. 태권도 4단이다."
나는 그 말만 하고 밖으로 나갔고, 녀석은 생각이 많아진 듯 보였다.
아마도 그간 자신이 꼬투리를 잡아 어른의 우위에 서서 머리채를 잡고 돌리고 다녔을 녀석에게
나는 아무도 하지 않았을 법한 '사과'라는 것을 했고
그 녀석을 '주장'으로 승급시켰다.
"자 오늘부터 00 이가 주장이다.
선생님이 없으면, 00 이가 너희들을 돕고, 잘 알려줄 거다. 그렇지?"
녀석은 처음 직책을 맡아본 것처럼 설레는 표정을 했고
그 후로 나를 마주칠 때마다 복도에서 일진 친구들과 함께 90도로 인사를 했다.
너를 잘 못 가르친 벌을 내가 받겠다며 초록매트에 연신 사랑의 벌을 셀프로 맞는 이상한 선생님의 사과를
녀석은 쿨하게 받아줬고, 우리는 좋은 친구가 되었다.
사실 진짜효과는 태권도4단에있었다.
부모도 학교도 무섭지않은 녀석들의 가장 강력한
대상은 보통 관장님인데
아마도 내가 자신의 관장님을 알고있다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큰 아들은 그런 날 보며 조금 부끄러워하는 것 같았지만 수업시간에 '엄마'라고 잘못 불렀다가 아이들은 모두
내가 학부모라는 사실까지 알게 되었다.
'엄마'가 선생님이에요?라고 묻는 아이들을 보며 큰 아이가 걱정스러운 눈빛을 하는 걸 보고 나는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지금부터 모두 나를 엄마라고 불러도 좋다!"
아이들은 한 학기 동안 나를 선생님이 아니라 엄마라고 불렀고
4학년 일진 녀석은 꽤나 모범생이 되어 학교에서도 행실이 달라졌다는 얘길 전해 들었다.
문제아 라고 해서 포기해버리지 말자.
문제아는 괜히 문제아가 된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 내어진 문제를 풀지 못해서 문제아가 됐을 뿐이다.
그럼, 이걸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정도는 가르쳐 줘야 되는 것 아닌가?
나 역시 어린 시절 문제아 소리를 듣고 자랐다.
'왜?'라는 질문에는 '그냥 해'라는 답을 들어야 했고
'도대체 왜?'라는 질문에는 '그냥 좀 가만히 있어'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녀석이 어쩌다 어른들에게 '포기당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스스로 답을 찾기 위해 그런 모습으로 변하는 것을 시도해 봤을지도 모른다.
나는 문제아를 좋아한다.
그들은 문제를 풀기 위해 끊임없이, "왜!"라고 질문하는 사람들이니까.
우리 아이들은 집에서도 나에게 '선생님'이라고 했다가 다시, '엄마'라고 고쳐 부르고는 한다.
처음엔 엄마가 선생님이라 우쭐 댈까 봐 걱정이었는데 생각보다 관심이 없어서 괜한 걱정을 했구나 싶었다.
부모들이란 원래 걱정이 과한 사람들이다.
우울증이 있던 큰 아이는 점차 엄마와의 시간을 보내며 조금씩 마음을 여는듯 보였다.
학교 수업시간에 함께 뛰어놀고
학교가 끝나면, 자전거를 타고 무작정 바다로 향했다.
(영종도는 씨사이드 파크 라는 곳이 있는데, 자전거 타기가 정말 환상이다!)
초1의 아이 앞에 휴대폰 카메라를 켜고 인터뷰 하듯 속마음을 물었다.
"엄마가 언제 가장 좋고, 언제 가장 미워?"
"나랑 놀아줄때 가장 좋고, 잔소리 할때는 좀 싫지만... 밉지는 않아"
우리는 이렇게 자주 인터뷰 형식으로 일상을 찍었고 나는 그것을 자주 모니터 했다.
영상 속의 내 말투나, 행동은 굉장히 짜증이 많은 목소리였다.
제 3자의 입장으로 내 모습을 보니 부끄러워 졌다. 조금 더 다정한 사람이 되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다정이라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것인지 몰랐다.
아이의 우울이 언제 그렇게 깊어졌을까 생각해보니 '수용 받아본 적 없는 경험'에서 쌓인 상처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허용'과 '수용'은 다르고
'대답'과 '대화'는 다른건데
그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아이를 대하고 있었다.
때론, 부모 역할을 하면서 '나도 받아 보지 못해서 모르겠다' 고 합리화를 하고는 했는데 아이들 수업을 하면서 생각을 좀 달리해보려 했다. '내가 받아 보고 싶었던 것은 뭐 였을까?'
'내가 받았던 상처는 뭐 였지' 그렇게, 나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아이와 부모는 함께 자란다.
큰 아이가 8살 이니까, 부모도 8살이다.
수업시간에 아이와 눈이 마주쳤는데 날 보며 환하게 웃었다.
피구를 할때 선을 밟았지만, 눈감아 주기도 했다.
"엄마, 다음 수업땐 뭘 할거에요?"
우리는 일방적 질문과 대답이 아닌, 대화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