쌩쌩이가 가능한 엄마

방과 후 백신

by 모은수


아이들의 기선을 제압해야 했다.

뭐가 좋을까?

갑자기 태권도 발차기를 차보이는 것도 이상하고

오래 매달리기? 그건 자신 없다.

아이들과 달리기 시합을 하자고 하는 건? 아득 바득 이기려는 꼴이 어쩐지 볼품없다.

좀 더 자연스러운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줄넘기!'


요즘은 줄넘기 학원이 따로 있을 정도로 음악줄넘기가 성행이다.

태권도 체육관에서 줄넘기관만 따로 만들 정도로 아이들이 등록을 많이 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이곳은 시골!

시내까지 나가려면 차로 20킬로, 왕복 40킬로를 다녀야만 줄넘기 학원이라는 곳에 갈 수 있다.

아이들이 접하기 어려운 줄넘기 수업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나는 줄넘기 25개를 구입했다.


그렇다, 이 학교의 전교생은 30명이 되지 않는다!

지금은 입학생이 더 줄어들어서 20명이 되지 않는 상황이라 처참하지만...

뒤에 이어질 이야기에 작은 학교가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었는지 이야기할 예정이니 함께

읽어 주시길 바란다. (겸손모드)


집에서 블루투스 스피커와 줄넘기를 챙겨 수업을 들어갔고 이곳에서는 미리 '학부모'임을 밝히며

아이들의 혼란을 예방했다. (덕분에 시골로 전학 와서도 친구들과 잘 지낼 수 있었다)


믿기 어렵겠지만, 체육선생님이라고 해서 체육을 좋아하거나 잘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운동부였지만 체육이 가장 싫었다. 사회체육과를 나왔지만 그다지 잘하는 운동도 없다.

'산은 보는 것이지 오르는 것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하면 이해가 가시려나.

아무튼 운동이 제일 싫은 내가 유일하게 잘하는 것은 바로 줄넘기였다. 특기로는 쌩쌩이! 일명, 이단 뛰기!

툭툭 가볍게 스텝을 밟다가 발을 바꿔가면서 줄을 돌리면 아이들은 서커스라도 보듯 우와~ 입을 벌린다.

그리고는 조금 더 가볍고 높게 뛰며 휘리리릭!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내며 이단 뛰기를 하면, 박수와 환호성이

쏟아진다.


기선제압은 이렇게 성공하는 듯했다.

하지만 등잔밑에 빌런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큰 아이는 집으로 돌아와 '엄마, 쌩쌩이 몇 개나 할 수 있어요?' 라며 도발했고,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 자식이.. 눈치챈 건가?"


기선제압을 위해서는 쌩쌩이 5개 정도만 해도 무방한데, 갑자기 몇 개나 할 수 있느냐며 나를 떠보기 시작했다.

나는 지지 않았다.


"글쎄, 한... 100개 하려나?"


두 눈이 휘둥그레진 아들이 증명해 보란 듯 쳐다보았고 나는 다음 주에 보여주겠다며 자리를 피했다.


그리고 다음 주.


몸풀기로 해야 할 줄넘기를 건너뛰고 '피구'로 몸을 풀자고 제안하고

그다음 주에는 '컵 쌓기'를 하자며 몸 풀기를 대신하며 나는 녀석의 머리에서 서서히 줄넘기를 지워갔다.

그 사이 100개는 아니어도 녀석을 이길 정도는 해야 했기에, 홀로 쌩쌩이 연습에 나섰고

다행히도 큰 아이와의 대결에서 매번 승리를 거두며 10회 이상 한 적 없이 승자가 되었다.

지금은 삼단뛰기도 거뜬히 뛰는 중학교 2학년이 돼버린 큰 아들. 초등학교 3학년 까지는 속일 수 있었지만

녀석은 이제 속일 수가 없다.




줄넘기는 정말 재밌는 운동이다.

그리고 모든 운동의 기본이 된다.


혼자서 하는 줄넘기는 그럭저럭 하겠는데, 진~짜 어려운 줄넘기가 있다.

바로 합동 줄넘기.

꼬마야 꼬마야 하면서 줄을 돌리면 타이밍을 잡아서 그 안으로 냅다 뛰어 들어가야 되는데

괜히 들어갔다가 줄에 걸리면 그 사람 때문에 실패하기도 하고 모두의 원성을 사게 돼서 은근 공포 그 자체다.


철썩~ 철썩~

바닥을 치는 줄넘기 소리가 덮쳐오는 파도소리처럼 느껴지는 찰나로 뛰어드는 단체 줄넘기!!!

누가 이딴 걸 만든 건지, 진짜 가만 안 둬.

하지만 나는 선생이고, 너희는 학생! 오랜 시간 회피했던 그것을 가르쳐야 하는 입장이 되어버렸으니

깊은 고민에 빠진 날 보며 운동 잘하는 남편이 흑기사로 나서 준다.


"이건 타이밍을 보는 거야. 그래서 소리를 들어야 해"


"소리?"


"응. 숨을 같이 쉰다고 생각해. 눈으로 줄을 좇지 말고 바닥에 닿는 리듬을 듣고

툭- 슥- 탁- 쓱- 이때.

툭- 슥- 탁- 쓱- 이때. "


"어.. 좀 알 것도 같고"


남편은 사이의 빈틈을 기다렸다가 들어가라고 조언했다.

역시, 음악을 해서 그런가, 모든 것을 리듬으로 이야기해 줘서 아이들에게 써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여전히 두렵다.

그래서 남편 찬스!!


위에 멋들어진 설명은 내가 하고, 시범은 남편이 보인다.

이렇게 우리 부부는 주강사와 보조강사로 일주일에 한 번 아이들 체육수업에 함께했다.

자질구레한 일들은 모두 남편의 몫이다.

물론, 월급은 내 거다.

남편은 그렇게 3년이 넘게 무급 보조강사로 일했고 다행히도 나는 노동청에 신고당하지 않았다.


역시, 줄넘기는 당신이 나보다 잘하지만

구렁이가 담 넘어가듯 움직이는 것도 운동이라면 내가 세계 랭킹 1위 일거야!


엄마만 와서 해주던 수업을 이젠 아빠까지 와서 함께 해주니 두 아이 웃는 날이 늘어난다.

남편은 공연을 해서 주말이나 공휴일엔 항상 밖에 있다.

남을 즐겁게 해 주느라 정작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아 늘 아쉬웠던 우리 부부는 아이들의

체육선생님으로 함께 수업하며 데면데면 했던 사이가 조금 가까워졌다.


툭- 슥- 탁- 쓱-

툭- 슥- 탁- 쓱-


줄에 걸리지 않는 비결은 높이 뛰는 것이 아니라 같은 높이로 함께 남는 것이다.

습, 후!

호흡을 같이하며

혼자 앞서려 하지않고, 뒤처지려 애쓰지도 않으며 그저 중앙에 머무는 일이다.

우리는 그렇게 함께, 아이들의 시간에 뛰어들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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