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 후 백신
어려서부터 태권도선수를 했지만 언제나 내 꿈은 소설가였다.
그렇다고 국어를 잘하지도 않았고, 책도 읽지 않아 놓고 소설가를 하겠다니.
중학교 국어 시간에 독후감 발표를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나는 칠판 앞으로 나가 ‘천사의 키스’라는 이야기를 발표했다.
선생님은 내용이 좋은데, 작가가 누구냐? 물었고 나는 당당히 웃으며 ‘제가 썼는데요?’라고 말했다. 선생님은 표정을 굳히며 몽둥이로 머리를 때렸다.
다른 아이들은 누군가 쓴 책을 읽고 발표하는 수고만 했다면, 나는 직접 쓰기까지 했는데, 칭찬은 못해줄망정 때리기는 왜 때려?
선생님은 다시 한번 기회를 줄 테니 독후감 발표를 준비하라 말했고 일주일 후 다시 그 시간이 돌아왔다.
이번에도 호기롭게 ‘휘슬’이라는 책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선생님은 이제야 내가 말을 듣는다 생각하고 작가가 누구냐 물었고, 나는 24권짜리 만화책이라고 답했다. 이번엔 매 한 대로 끝나지 않았다.
“아 왜 때리는데요! 쟤들은 한 권 읽고, 저는 24권이나 읽었단 말이에요!!”
나는 이렇게 종종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매를 맞았는데, 한 날은 태권도부 훈련시간의 일이었다. 선수생활은 꽤나 고됐다. 새벽 5시에 일어나 6시부터 시작된 새벽운동, 오전운동, 오후운동, 야간운동의 패턴으로 훈련을 해야 했고 시간이 남으면 개인 훈련을 해야 했다. 코치님은 자신의 장래희망을 적어 내라고 말했고 나는 또 빈 종이에 <소설가>라고 써서 냈는데, 나 때문에 운동부 전체가 집합을 하게 된 것이다.
당연히 국가대표가 꿈이라고 써야 하는 장래희망 란에 소설가라니?
코치님은 정신머리가 빠졌다며 한 시간이 넘게 벌을 주었고, 나 때문에 벌을 받은 게 억울했던 선배들은 2차 집합을 시켰다. 소설가라고 썼다가 뒤지게 맞은 거다.
“꿈 도 못 꿉니까?”
그 후로도 눈에 가시가 되어 무슨 행동만 하면 소설가나 되라는 비아냥을 들어야만 했다. 피곤함에 자주 유체이탈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당시 스트레스 때문이었는지 내 몸에서 내가 빠져나가 어디론가 사라지는 현상을 자주 겪었다.
어디 얘기할 곳도 없어 그저 멍하니, 내 몸을 빠져나가는 나를 무기력하게 바라보던 날들이 있었는데 그날은 몸과 마음이 다 지쳐 악다구니 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훈련이 시작되고, 도저히 못 뛰겠어서 훈련에 대충 임한 게 화근이었다.
인터벌을 돌며 초 안에 들어와야 하는데 자꾸만 뒤처지는 나를 코치는 벼르고 있었다.
물도 주지 않아 탈진 직적이었는데 마른 수건을 짜 먹으며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더이상 못뛰겠다며 주저앉자
코치의 협박이 이어졌다.
“딱 한 바퀴만 뛰어 안 뛰면 100대 맞아”
나는 100대를 맞겠다고 했다. 그대로 엎드려 당구큐대로 100대를 맞았다.
숨을 헐떡이는 코치가 다시 한번 물었다.
“한 바퀴만 뛰면 된다니까? 안 그럼 100대 추가야”
나는 다시 엎드렸다. 그렇게 통합 200대를 맞고 집에 돌아와 시커멓게 멍든 다리에 엄마는 눈물을 참으며 약을 발라주셨다.
태권도 훈련 중에 고무튜브를 발목에 걸어 발차기를 하는 운동이 있다.
저항성을 통해 근력과 신경근을 향상하고 부상을 예방한다.
저항하는 힘이 생기면 흔들리지 않고 발차기를 찰 수 있고 중심을 잡을 수 있다.
나의 고집은 반항이 아니라 저항이다.
기준을 세우고 중심을 잡는 과정 속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이 자신의 근력을 키울 수 있도록 똥고집도 인정해 줘야 한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냐 해놓고 왜들 자라나는 꽃의 모가지를 잡아채지 못해 안달인지! 어쩌면 나도 누군가에게 그러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가만히 기도해 보는 날들이 새치만큼 늘어간다.
이런 고집과 성질머리는 닮지 않았으면 했는데 큰아이가 쏙 빼다 박아 고민이다.
아닌 건 절대 아니라고 하고, 굽히지 않는 성미를 보니 짜식이 배짱 한 번 두둑하다 싶다.
승부욕이 강한 큰 아이는 피구 시간에 남. 여 할 것 없이 세게 던지고, 맞히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나는 피구를 가장 싫어하는 사람 중에 하나인데 이유는 '너무 잔인하다'는 것이었다.
스포츠의 세계에서 뭐가 잔인하냐? 묻겠지만
피구만큼 서열이 확실하게 보이는 게 또 없다.
특히나 '편 가르기!' 가위바위보를 해서 자기가 마음에 드는 사람을 뽑고 마지막에 남는 아이들은 괜히
나도 뽑아줘~ 비굴해지거나, 또는 안될 걸 알기에 미리 빠지며 의욕을 상실하기도 한다.
어린 시절의 나도 피구를 잘하지 못해서 늘 마지막에 뽑히거나 깍두기가 되었던 학생이었다.
하지만 큰 아이는 단연 1등이다.
가위 바위 보에서도 늘 선택하는 쪽이었으니, 나는 이 관행을 뒤엎어버리고 싶은 욕망이 들끓었다.
우선, 제일 못하는 아이들이 가위바위보를 하게 했다.
하지만, 약자도 강자를 뽑고 싶은 법.
약자 중에서도 또 약자가 나오는 상황이 반복되었고, 다시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이번엔 실력이 비등한 사람끼리 짝을 짓게 해서 이긴 팀과 진 팀으로 나누었다.
그나마 이렇게 팀을 나누는 것이 가장 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좋아하고, 잘하는 사람하고만 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되니 짜증을 내는 거다. 나는 가만 듣고 있다가 녀석들은 모조리 한 코트에 집어넣고, 홀로 코트에 섰다.
그리고는 양팔을 벌리고 '맞춰봐라 이놈들!' 소리쳤다.
아이들은 눈을 끔뻑거리더니 마구 공을 던지기 시작했고 나 역시도 사정 봐주지 않고 무자비하게 던졌다.
똘똘 뭉쳐 선생님 죽이기에 진심이었던 아이들의 눈이 반짝거렸다.
우리는 게임을 마치고 모두 자리에 동그랗게 둘러앉았다.
나는 큰아이를 보며 말했다.
혼자서 다 하려는 이기적인 승부욕을 고쳐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피구 하다가 공 맞았다고 울지 않았으면 좋겠어. 자존심 상해하지도 말고.
피구는 피하기도 하고 공으로 치기도 하는 운동이야.
맞으면 끝이지만 피하면 다시 기회가 오고 잡으면 부활도 하잖아.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을 혼자만 던지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그럼 지잖아요."
"하지만 피구가 혼자만 던지는 게임은 아니야.
같이 던질 때 더 오래, 더 재미있게 할 수 있어. 그리고 공을 잡았다는 건 다른 친구에게 기회를
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해. 그러니까 우리, 대형을 서보자"
무작정 공을 던지고 맞히기만 하는 아이들에게 사각패스, 삼각패스 같은 것을 알려주었다.
자리를 잡으니 좀 더 균형감 있게 경기가 돌아갔고
공이 한 사람에게만 가는 일이 줄어들어 이번엔 아이들 모두 게임에 열심히 임한다.
특히나 저학년 여자아이들은 살짝만 맞아도 주저앉아 울고는 했는데, 이젠 공을 똑바로 보고 피하거나
맞서려고 했다.
하지만 내 말이 마음에 걸렸는지, 큰 아이는 소극적으로 경기를 했고-
나는 괜히 눈치가 보여 마음이 불편해졌다. 경기가 끝나고 아이들에게 음료를 사주며 말했다.
" 너희 피구왕 통키 봤냐?"
"그게 뭐예요?"
"빨간 머리 초등학생이 피구왕이 되는 이야기야. 아빠가 돌아가셨는데 왜 돌아가셨게?"
"공 맞아서?"
(오 그 생각은 못했는데, 의외로 웃겼다.)
"아니"
(아이들이 옆에서 '바보야 공 맞아서 죽냐?' 했지만, 나는 답을 말해준다)
"금 밟아서~ 죽었지~"
"아 뭐예요, 아재 개그~"
큰애도 어이가 없는지 피식 웃으며 분위기가 풀어졌다.
우리는 이후로도 몸풀이 게임으로 피구를 한다.
어느 날은 피구만 하는 날도 있는데, 아이들 눈이 가장 빛나고 날아다닌다.
학교에서는 아이들 실력이 꽤 늘어서 시에서 열리는 '피구대회'를 나가볼까 한다고 했다.
매사 진지한 큰 아이에게 물었다.
"피구 대회 나가려면, 머리부터 빨갛게 염색해야 되는 거 아냐?"
"아, 됐거든요?"
나의 철없는 농담에 아들이 손사래를 쳤다.
"패스 연습이나 해요"
아이와 운동장으로 향했다.
있는 힘 껏 공을 던지는 아이가 언제 이렇게 자랐나 싶게 공이 묵직하다.
잘잘못을 따지고 가르치려 하다 보면 아이를 섭섭하게 하는 날들이 늘어난다.
그럴 때면 괜히 선생님을 했나, 싶은 생각이 든다.
무조건 네 편을 들어주면 참 좋으련만, 그러지 못해 미안하달까.
부모의 눈에 보이는 '이기적인 승부욕'은 사실 녀석이 중심을 잡는 과정이었을지도 모른다.
똥고집도 인정해 주기로 해놓고 아이 스스로 근력을 키우는 것을 무력화 시키려 하지 않았나 반성한다.
녀석이 피구대회에 나가서 날아다닐 수 있도록 특별히 '불꽃 슛'을 알려줘야겠다.
빨간 매직이 어디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