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 후 시어머니

방과 후 백신

by 모은수


요즘은 유치원생 들도 연애를 하던데... 아니 더 어릴 때도 남자 친구. 여자 친구가 있다고 들었다.

자신은 모태솔로가 아니라 못해솔로!라고 선언한 작은 아들은 곧 중학교 1학년이 되지만 여전히 모태솔로다.

꾸준히 짝사랑 대상은 있었던 것 같은데, 시골 초등학교로 전학 와서 마음에 드는 여자친구가 있어 사귀자고

했다던데, 여자아이의 사귀는 조건이 꽤나 재미있었다.


'우리가 사귀는 것을 아무도 몰라야 한다.'


그것이 조건이었다고... ㅎ

이제와 말하지만, 아들아 그건 사귄 게 아닌 것 같구나.

연락 한 번 못해보고 학교에서 아는 척도 못하는데 그게 어떻게 사귀는 거냐?

동생을 놀리던 큰형이 6학년이 돼서 전학 온 여자친구와 사귀게 되었는데, 그 여자친구의 조건은 이랬다.


'우리가 사귀는 것을 아무도 몰라야 한다.'


나 원...


내 새끼의 연애를 직관했던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한다.

그날만큼은 나의 시선이 강사가 아닌 시어머니였달까.





피구시간이었다.

딱 봐도 티가나게 여자 친구는 맞추지 않는 녀석들을 보며 두 형제가 어쩜 저렇게 똑같은지 웃음이 났다.

둘째와 사귄 아이는 할머니가 계룡산에서 유명한 무당이셨는데 4 자매가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사귀기 전에도 저 여자아이는 참 야무지고 마음에 든다고 생각했는데, 짜식이 보는 눈은 있어서 그 아이에게 고백을 했던 모양이다.


피구공 잡기가 무섭게 여자 친구에게 패스(솔직히 패스도 아니었다. 거의 갖다 받치듯이 두 손 모아 주었다)를 하고 그 애가 맞을까 온몸을 날려 막아내더라.

둘째는 성향이 너무 특이한 녀석이다.

앞에서는 귀엽게 웃고, 뒤에서는 복수심에 불타는 스타일. 자동화 기계처럼 대답을 잘하는 대답봇이고

adhd가 있어 내면이 산만하다. 한 날은 둘째가 뭘 잘못해서 혼을 낸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대답봇처럼

네~ 하고 대답을 하고 들어갔다.

그런데, 불투명 유리창 너머로 가만히 서서 나를 바라보는 아들이 보였다.

왜 안 가고 저기 서있지? 싶어 가려는데, 둘째의 손 모양이 고스란히 불투명 유리에 실루엣으로 비쳤다.

녀석은 내게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뻐큐를 하고 있었고, 나는 어이가 없어 웃으며 드르륵 문을 열었다.

둘째와 나의 눈이 마주쳤다.

녀석이 어찌나 당황했는지 손가락도 내리지 못하고 굳어있길래, 나는 단숨에 손가락을 잡아 부러트리듯 꺾어

버렸고, 녀석은 바로 무릎을 꿇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문제집 한편에 연필로 썼다가 지운 자국이 있길래

자세히 들여다보니 <엄마는 나쁜 새끼>라고 쓰여있는 게 아닌가.

녀석은 복수의 화신이다. 역시, 너는 날 닮았다 싶었다.


화가 나기보단 어이가 없어 웃었는데, 당연히 따끔하게 혼은 냈고-

그런 놈이 피구공을 갖다 받치며, 사귀는 것도 알리지 못하는 여자 친구에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고 나니

한 편으로는 한숨이 놓였다. 결혼하면 잘 살겠구나 싶은 마음이었다.





앞에서 사귀는 모습을 볼 때는 별로 체감하지 못한다.

나의 큰 충격은 큰 아이의 카톡을 확인했을 때였다.

큰 아이와 여자 친구가 주고받은 카톡에는 온갖 하트와 사랑해 좋아해 보고 싶어 따위의 말들이 적혀있었는데

나만 보면 찬바람이 불고 시비걸기 바쁜 큰 아들놈이 여자 친구와 주고받은 멘트를 보니 왠지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 기분이었다. 이때부터 나는 수업에 갈 때 시어머니 모드가 되어, 두 커플을 주시했다.


'아 꼴 보기 싫어'


마음의 소리가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지만 나는 공정해야만 했다.

큰 아이가 사귀고 있는 여자친구도 학교에서 공부도 잘하고, 마음도 고운 우수한 학생이었다.

문제는 그 아이의 엄마! 바로 그 엄마였다.


체육대회가 있던 날이었다. 여자친구의 엄마는 승부욕이 아주 강한 사람이었는데, 내향적인 나와 달리 하이텐션의 외향형 인간이었다. 그녀는 마지막 이어달리기에서 상품이 걸려 두 눈이 반짝이고 있었고, 그녀와 함께 달린 상대는 어른이 아니라 초1과 초2였다. 그렇게 세 사람이 달렸는데, 당연히 어른이 이겼고

선물은 하나가 남아있었다. 교장 선생님은 눈치를 보며 '아이고! 선물이 하나 남았네요~' 했고, 사람들은 모두

어른이 양보해야 한다는 시선을 보냈다.

그러나 그 엄마는 상품을 손에 쥐고 아주 기쁘게 웃고 있었다. 이겼다! 며 폴짝폴짝 뛰기까지 했으니 아무래도 저런 사람이 나의 사돈이 되는 것은 결사코 반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든가 말든가 20일째 사랑을 이어가던 큰 아들이 갑자기 씩씩 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왜 그러냐 물었더니, 여자친구가 왜 자기를 안 챙겨주느냐? 고 면박을 줬다는 거다.

그러게 좀 잘해주지 그랬냐 물으니 아들이 말한다.


"사귀는 걸 비밀로 하자는데, 어떻게 챙겨요? 그게 말이 돼요?"


"엥? 너도 비밀이야? 둘째도 비밀이었잖아? 니들 뭐냐?"


"아 몰라요! 헤어질 거예요!!"


녀석의 연애는 투투가 되기 전에 끝이 났고, 나는 그제야 그 꼴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사실, 아이들이 연애하는 게 싫었던 것은 아니다. 나는 소문난 로맨스 고자인데, 작품을 쓸 때도 대표들이 제발 어디 가서 연애를 하던, 로맨스를 때려치우든 하라는 피드백을 받고는 했다.


이해할 수가 없다!


일하던 웹툰회사에서 피디는 여주인공이 여리여리 하고 남자가 보호하고 싶게 만들어 달라고 말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우리나라 로맨스 바뀌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아니... 오토바이 지나갈 때 왜 자꾸 휘청거리고

높은데 있는 물건 꺼내러 올라갔다가 왜 떨어지면서 남주 품에 안기는 건데요?

그 정도로 다리가 부실하면요, 스쿼트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나의 말에 어이없어하는 피디들의 표정이 생생하다.

나는 로맨스가 싫다. 동화의 엔딩이 결혼식인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 말이 얼마나 무책임한 회피인지 알기 때문일까.

웰컴투 결혼지옥으로 들어서는 버진로드는 불구덩이다. (그렇다고 나의 결혼생활이 지옥이란 것은 아니고)

그만큼 책임져야 할 것이 가득한! 그런 세계로의 입장을 축하해 주는 사람들의 얼굴이 그렇게 사악해 보일 수가 없다고 해야 할까.


그런 고정관념을 가진 내가 자식의 로맨스를 눈앞에서 지켜보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 후 2년이 지나도록 녀석들은 솔로다.

다행히 모태솔로는 벗어났고, 못해 솔로가 되었지만 언젠가 여자친구를 또 데리고 오겠지?

자식의 연애를 존중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품 안에 자식이지, 독립적인 존재가 되면 나를 떠나게 자유롭게 갈 수 있도록 놓아주어야 한다.


아마도 그 준비는 자식이 하는 게 아니라 부모가 하는 듯하다.

훨훨 날아갈 아이의 뒷모습에 눈물 흘릴지라도 그저 손을 흔들어 주는 것.

아이들은 이제 중학교2학년과 1학년이 되었다.

나름 6년의 시간 동안 초등학교 내내 선생님으로 아이들과 시간을 보냈는데 중학교에 입학하는 둘째가

할 말이 있단다.


"엄마 중학교 때는 좀 쉬세요."


"뭘 쉬어?"


"이제 선생님 안 해주셔도 된다고요. 우리도 이제 잘할 수 있어요."


3초간 감동했고, 3초 후 녀석의 눈빛이 흔들리는 것이 느껴진것 같은데...

모른 척 넘어가 주는 것도 엄마의 할 일 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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