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 후 백신
아침밥 챙기는게 정말 일이다.
스쿨버스가 오는 시간이 7시50분. 아이들은 7시부터 일어나 준비하고, 밥을 먹는다.
꼭 한숟가락을 남기는 큰아이에게 또, 아프리카 아이들은 굶고 있다느니~
농부가 땀을 흘린 것을 무시하냐느니~
100번은 넘게 들었을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아이들이 남긴 잔반을 아침 식사로 퉁친다.
그런데 요즘 같은 세상에 정말 굶고 다니는 아이가 있나?
5년전, 아이의 학교에는 유난히 삐쩍 마른 남자아이가 하나 있었다.
쟤는 도대체 살이 안찌는 체질인가 싶었는데, 정말 굶고 다니는 아이였던 것이다.
도움이 필요해 보였는데, 아무도 도움을 안주는 것인지... 선뜻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들었다.
일단, 담임선생님에게 상담요청을 했다.
담임선생님은 당연히 두 아이 문제로 학교를 찾아 온 줄 아셨는데, 다른 아이 걱정을 하니 조금 당황 하신것 같았다. 아무래도 굶는 아이들이 있는것 같으니, 아침에 학교에서 식사를 제공했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제안하자 선생님은 내게 '직접 학교 운영위원회에 들어오면 어떻겠냐'고 물었고 나는 위원회에 들어가 학무모 회장직을 자발적으로 맡았다.
이놈의 오지랍이 또 발동했다.
우리학교는 3년정도 아침밥 주기 프로젝트를 했다.
도움이 필요한 한 사람만 도움을 줘버리면, 한창 예민할 시기의 아이들은 고마운 마음보단 숨고싶은 마음이 든다. 나역시 어린시절 내내 기초수급자로 어렵게 살았던 학생이었는데 자존심이 아주 강한 친구였다.
어느날 교무실로 30명정도 되는 아이들이 빼곡히 앉아 농협 상품권5만원을 받고 배급해주는 식량 꾸러미를 받았다. 그때 옆에 친구가 앉아 '우와~ 진짜 좋다' 라고 말하기에 초등학교 3학년 밖에 되지 않았던 나는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야. 이건 고마운게 아니야. 저 사람들이 지금 우리 사진 찍지?
초상권에 비하면, 이건 너무 싸다 싸. 우리는 사진 찍어주고 그 댓가를 받는거라고"
도대체 왜 저모양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어려서부터 꽤나 직관적인 아이였다.
그래서 더 자존심 굽힐줄을 몰랐고, 필요없는 도움은 거절해서 선생님들을 곤란하게 만든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어른이 되어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도와줄때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그들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익명으로 5년간 아이의 집으로 식료품과 가방, 계절마다 옷과 신발 등을 보냈다.
방과 후 수업때 아이가 얼마나 컸는지 신체계측을 하는 척 하고, 신발 사이즈를 재는 척 하며 살뜰히도 챙긴것이다. 감사를 바라고 한 일은 아니었지만, 우리 아이들이 그 아이와 싸우고 돌아왔다는 얘길 들으면 나는 참 간사하게도, '내가 도와 준 것도 모르고 왜 싸우냐 녀석..' 하며 미운 마음도 들었던것 같다.
도움을 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나 혼자 도와줘 놓고 생색을 내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럴때 더 정신을 차리고, 더더욱 숨어 아이를 도왔다.
그런데 어느날, 그 아이가 지역으로 부터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는 얘길 전해 들었다.
장학금은 물론이고, 종교시설, 복지센터 등에서 돈도 주고 쌀도 주고 챙김을 받는다고.
그런데 선생님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은 똑같았다.
"아이 생각하면 도와주고 싶은데, 그 아빠가 너무 싫어요.
고맙다는 말 한마디도 없고 매번 술마시고 도움이 당연한 줄 안다니까요?"
사람들의 말에 나는 확인도 없이 함께 미워했던것 같다.
나역시도 이제 도움을 끊어야 하나? 생각하던 어느날, 마을도서관장님으로 부터 아이의 아버지가 지적장애가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그제야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아버지는 약한 지적장애가 있어서 단순노동을 하는 분이었는데-
자신의 일은해도 누군가를 보살피거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당연히 누군가의 도움이 고맙긴해도, 그걸 표현할 만큼의 지능이 있는 분은 아니었다는 거다.
그런 마음을 가르쳐 줬을 사람도 없었을 거고...
나는 잠시나마 그를 미워했던 마음에 대해 속으로 사죄했다.
고맙다는 인사는 없었지만, 분명 아버지란 사람도 변하고 있었다.
학교행사에 한번도 나타나지 않더니, 아이 졸업식날 나타난 것이다.
아이와 함께 시간도 보내려하고, 이런 저런 노력을 하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나는 5년간의 도움을 멈췄다.
부모의 사랑이 한 걸음 다가왔으니 나는 한 걸음 물러나 주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기부하는 사람들에게 대단하다고 말하지만, 기부가 타인을 위한 행동인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나역시도 나의 보람을 위해 그 아이를 도운 것이 크고 연예인도 기부를 많이 해야 세금을 치지 않나.
조금 꼬인 인간처럼 보일지 몰라도, 초등학교 3학년때 손에 쥐어준 농협상품권이 나의 초상권임을 잊지 않는다. 그렇기에 앞으로도 누군가를 도와야 하는 상황이 오고, 도움을 주게 되더라도 나는 그것이 그를 위해서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사람은 결국 자신을 위해 나아간다.
칭찬받지 않으면 어떠한가, 나의 도움을 선뜻 받아주는 이가 있어 더 없이 감사하지 아니한가!
예전에 식당을 차렸다가 대단하게 말았먹었던 기억이 있다.
음식도 할 줄 모르면서, 백반집을 왜 차린건지... 돈을 날리고 3개월간 번 돈이 5만원씩 15만원 이었는데
나는 그3개월간 5만원어치 쌀을 무료급식소에 주었다. 따지고 보면 3개월간 빚만지고 헛짓을 한거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귀한 것을 깨달았다.
돈 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
세상 모든 사람이 밥을 굶지 않고 살았으면 한다.
저녁시간이 다 되었나보다, 배가 고파온다.
당신의 오늘 하루는 어떠했나.
몸도 마음도 든든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