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애 좀 데려가세요.

방과 후 백신

by 모은수


둘째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독특했다.

코 옆에 커다란 점을 달고 나를 지긋이 바라보던 수술실에서의 눈빛이 여전히 생생하다.

울지도 않고, 가만히 쳐다보는 얼굴.

그 모습은 계속 이어졌다.

둘째는 잘 울지 않았다. 혼자 책을 읽거나, tv를 보거나 하면서 사람의 말에 대답도 잘하지 않고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저 성향이 그러겠거니 했는데 다니던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왔다.


"어머니, 애 좀 데려가세요"


무슨 일이냐? 묻자, 둘째가 종일 바닥에 침을 뱉고 돌아다닌다는 것이 이유였다.

시장 안에 위치했던 어린이집에서 틈만 나면 탈출해 사라지기도 했고-

하여간에 이상한 행동을 계속했다.

그러면서 원장은 나에게 '아기가 좀 이상하다. 자폐검사를 받아보면 어떻겠냐?' 물었고

그때당시 자폐아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던 나는 '그렇지 않다'라고 단호히 말하곤 어린이집을

옮겨 버렸다.


새로 옮긴 유치원은 꽤 큰 곳이었다. 아이들도 두 배이상 많고-

선생님들도 어린이집 선생님들 보다는 더 교육을 잘 받은 사람들일 테니, 이제 한숨 놔야지 생각하던

차였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나서 유치원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어머니, 애 좀 데려가세요"


무슨 일이냐? 물으니, 아이가 탈출을 했다는 거다.

그래서 사고가 날 뻔했다고- 바닥에 침을 뱉거나, 이상 행동을 하니 자폐검사를 받아보라는 말과 함께.

그때도 나는 자폐아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리가 없는데, 사람들이 왜 자꾸 저런 이야기를 하는 걸까?

나는 이번에도 무시했다.


그리고 원장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어머니~ 다음 주에 00이 안 오면 안 될까요?

유치원 교육인증 평가가 있는데.. 이미지에 안 좋아서... 그날만 좀... 부탁해요"


머리가 새하얘졌다.

우리 아이 때문에 자신들이 교육청으로부터 점수를 받지 못할까 봐, 대놓고 오지 말라는 얘기다.

거기서 욕을 한 바가지 해줬어야 했는데, 나는 잔뜩 주눅이 들어 '네.. 죄송합니다'라고 말하고 집으로 돌아와

한 참을 울었다.


그때부터 아이에게 색안경을 끼기 시작했다.

녀석이 정말 자폐일지도 모른다고.

둘째가 하는 모든 행동이 짜증이 났다. 도대체 왜 저럴까... 하지만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지는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진다는 엄마의 말을 믿기로 했고, 아이에게 매일 '사랑한다. 널 믿어'라는 말을 해주다 보면 저 아이도 달라지지 않을까? 뭔가 불안해서 침을 뱉고, 그곳을 도망치려 한 게 아닐까 하고.


나는 그때부터 2년 동안 매일 아침저녁으로 눈을 마주치고 말했다.


'너를 사랑해'


'너를 믿어'


'여기는 안전해. 나는 네 편이야'


그렇게 아무것도 좋아지지 않은 채,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옮긴 어린이집에서도 연락을 받았다.


"어머니 애 좀 데려가세요..." 그리고 그 뒷말도 늘 같았다.


아이에게 지칠 때 즈음 곧 학교 입학을 앞둔 시점에 병원을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아이가 날 가만히 쳐다보더니 말한다.


"도와줘서 고마워요"


멍하게 아이를 바라보다,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아이는 2년간 내가 했던 말들을 느리게 쌓고 있었던 모양이다.

내가 자신을 돕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마음이란, 이 아이가 부족한 사람이 아니라는 증거였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코로나19 세대인 아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했지만 비대면 수업이 진행되어 학교에 가지

않았고, 사람들과 마찰을 일으킬 일도 없어 되려 안심이 되었던 것 같다.

가장 행복했던 1년이 지나고, 우리가 시골에 내려오던 2021년 봄. 오랜 시간 잊고 있던 문제가 또다시 터졌다. 나는 그 전화를 또 받고야 말았다.


"어머니, 애 좀 데려가세요"


담임은 스트레스가 많은 사람이었다. 아이가 조금만 과한 행동을 해도 묶어두려 애썼고, 지적했다.

1년 만에 잘린 여자교장선생님도 문제가 많은 사람이었다. 그 둘이 합세해 둘째를 장애인으로 만드는 경험을 눈뜨고 볼 수밖에 없었고 나는 문제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시의 도움을 받아 정신과로 향했다.

교장과 담임은 아이가 약이라도 먹어야 할 것 같다며, 정신에 문제가 있는 것 같으니 꼭 병원에 가란 말을 했다.

그런 얘기를 듣게 된 이유는 지금 생각해도 황당한 사건들이었다.


아이가 책을 읽고 있는데, 친구 녀석이 건드리며 시비를 걸었던 모양이다.

그만하라고 해도, 놀리기에 앞에 있던 연필을 던졌는데 그 아이의 아빠가 학교에 학폭위로 신고를 한 것이었다. "저저 연필 던지는 버릇 저 손에 칼이 있었으면 칼을 던질 놈이네요!"


자기 자식이 둘째를 괴롭힌 것은 생각지 않고, 아이는 칼을 던지게 되는 어른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개소리를 듣게 된 것이다. 나는 아이의 손을 붙잡고 병원으로 향했다.

검사결과, 자폐는 당연히 아니고- adhd가 경계성이라 확실치는 않다는 진단을 받았다.

스트레스 지수가 낮고, 건강상태도 좋은데, 다만 뇌를 찍어보니 남들보다 통각이 예민하다는 진단이었다.


우리에게는 툭 치는 것이 아이에게는 퍽 하고 맞는 것처럼 느껴지는 뇌라고 했다.

그래서 더 크게 반응하고, 도망치고, 예민했을 거라고...

그제야 10년 만에 아이의 상태를 파악하고 나니, 미안한 마음이 든다. 미리 알았더라면, 내가 나서서 너를 보호해 줬을 텐데- 색안경 끼고, 남들처럼 화내고 짜증 냈던 날들에 대한 반성을 오랜 시간 했던 것 같다.




학교에 이 사실을 알리고, 병원에서 약을 주었다는 말과 함께 우리는 방학을 보냈다.

방학이 지나고, 다시 학교에 돌아갔을 때 담임은 내게 "00 이가 약을 잘 먹더니 너무 좋아졌어요~" 하는 거다.

나는 웃으며 "약은 한 번도 먹지 않았어요. 아마도 방학 동안 좋은 추억을 쌓아서 그랬나 봅니다"

담임은 민망한 표정을 지었고, 그 해 교장선생님은 평가 최하를 받으며 퇴출 됐다.

뒤늦게 전해 들은 소식 중엔 담임의 아이들도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는 이야기였다. 엄마도 아이도 스트레스가 많았다고-

나는 그해, 교육청에서 우리 부모들에게 "교육청에 바라는 것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런 안건을 제안했다.


"아이들을 잘 가르치려면, 선생님이 건강해야 하는 것 같아요.

아이들에 대한 상담이나, 지원보다- 선생님들의 상담을 해주세요.

그분들의 정신이 건강해야, 아이들을 아이들답게 바라봐 주실 것 같습니다.

위 클래스라는 프로그램을 교사에게도 적용시켜 주세요."


교육청은 나의 말을 받아 적어갔지만, 아직까지 실행되지는 않았고-

전교생이 adhd 아니냐 소리를 들을 만큼 난리법석인 학교에 완벽한 인간이 하나 나타났다.

새로 오신 남자 교장선생님...

그의 등장 이후로, 나는 단 한번도 "애 좀 데려가세요" 라는 전화를 어디서도 받아 본 적이 없다.


그가 학교와, 세상을 뒤엎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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