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3500억 달러 선불 투자~꼬여버린 한미 관계

by 한재영 신피질

트럼프는 한국을 ‘부자 나라’라 말한다.


낮은 정부 부채 비율, 삼성과 같은 초대형 대기업의 글로벌 위상, 그리고 선진 시설, 세계 최대 규모의 평택 미군기지의 건설과 무상 제공등을 보았고 그것들을 근거로 삼았을 것이다. 그리고 추가로 한국 골프 선수들의 미국에서 활약 등.


그리고 이 모든 요소가 합쳐져 한국은 돈이 많은 나라라는 인식이 형성되었고, 이것이 결국 3,500억 달러

규모의 선불 투자 요구라는 과도한 압박으로 이어졌다.

며칠 전에는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은 한국도 일본 수준의 5500억 달러까지 투자해야 한다는 말 폭탄으로 우리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문제는 3,500억 달러라는 액수가 결코 단순한 협상 수치가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의 연간 국가 예산이 약 5,000억 달러 수준임을 고려하면, 이는 국가 전체 예산의 70%를 넘는 대규모다. 또한 한국의 외환보유액이 약 4,000억 달러 전후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외환 보유고 대부분을 한 번에 내놓으라는 요구에 가깝다.


외환 보유고는 그 국가 경제 규모에 맞게 교역을 하기 위해서 반드시 보유해야 하는 금액이 있다. 이 외환을 선불로 그대로 내놓으라는 것은, 사실 우리나라 수출을 마비시키는 것과 다름없다. 결국 이재명 대통령이 외신 기자들 앞에서, IMF 상황을 언급할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되었다.


3,500억 달러는 원화로 약 500조로 국민 500만 명에게 1인당 1억 원을 줄 수 있는 금액이다. 우리나라 전체 국방비가 약 50조 수준이니, 10년간 국방비이다. 우크라이나의 1년 전쟁비용이 약 100조이라고 하니, 지금까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 싸운 모든 전쟁비용을 초과하는 비용이다.


현재까지 미국에서 나온 내용을 정리하면, 3500억 달러를 미국 은행등에 선불로 입금하고, 미국 정부가 투자를 결정하고, 투자에서 나온 수익의 90%를 미국이 가져간다라는 조건이라고 하니, 현금을 거저 달라는 것과 동일한 수준이다. 물론 한국 정부가 이 내용을 들어주지 않을 듯하고, 결코 들어줄 수 없는 요구 사항이다.


동맹이라면서도 이렇게 불균형한 요구를 하는 것은 한국 사회에 깊은 불안과 반발심을 자극한다.


한국 정부의 부채는 GDP 대비 약 55%로, 미국(120%)이나 일본(250% 이상)에 비해 낮다.

삼성과 같은 대기업은 세계 시장을 주름잡고 있으며, 수출 규모도 세계 상위권이다. 이런 외형적 지표만 보면 한국은 여유 있는 나라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 한국은 정반대다. 가계부채는 GDP 대비 105%로 세계 최고 수준이며, 노인 빈곤율과 자살률은 OECD 1위다. 비정규직 비율은 선진국 중 가장 높고, 출산율은 세계 최저로 떨어졌다. 겉모습은 부유하지만 속으로는 사회적 위기가 깊어지는 나라다.


한국의 가계부채, 즉 국민들의 빚의 총합계는 2,000조이고 달러로 환산하면 1조 4,000억 달러로 국민들은 사실상 천문학적 숫자의 빚을 지고, 국민들 대부분은 돈 벌어서 빚을 갚아야 하는 곤궁한 상황이다.

그 빚을 갚으면 누가 가져가는가? 삼성전자 외국 지분은 51%, KB국민은행은 외국지분은 77%이다.


이 모순은 IMF 외환위기 이후 굳어진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정부는 국제 자본과의 관계에서 재정 건전성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정부 부채는 낮게 억제되었지만 그 대신 국민이 빚을 떠안도록 되었다. 주택 정책도 경기 부양에 치중하면서 가계부채를 제도적으로 키웠다. 정부와 대기업은 건전해 보이지만 국민은 채무와 불안정에 시달리는 기형적 구조가 고착된 것이다.


미국은 유럽연합과는 다른 조건을 협상했다. EU는 2028년까지 6,00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약속했지만 이는 장기 계획이며 선불 형식이 아니다. 오히려 EU는 관세 완화를 먼저 요구하는 등 상호적 조건을 내세웠다.

일본은 5,500억 달러를 요구받았지만 경제 규모가 한국의 두 배 이상이라 부담 비율이 한국보다 낮다.

결국 미국의 요구는 한국에 훨씬 더 무겁게 다가온다.


이는 단순한 금전 요구를 넘어, 한국의 반도체·배터리·조선·자동차 등 제조 산업 전반을 사실상 미국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처럼 비칠 수 있다.



트럼프의 잘못된 인식은 한국의 외형만 본 결과이며, 한국 사회의 현실과 괴리되어 있다. 정부는 재정을 건전하게 관리했지만 그 부담을 국민에게 떠넘겼고, 그 결과 다수 국민은 빚과 불안정, 가난 속에서 살아간다. 자살률과 노인 빈곤율, 저출산은 이러한 구조적 모순이 낳은 결과다.

한국은 외형상 부자 나라지만 내면은 절박한 나라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할까. 감정적인 반미 투쟁이나 미군 철수 주장은 단기적으로는 불안정만 키울 수 있다. 대신 한국이 가진 키 카드를 전략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반도체와 배터리, 조선과 자동차 같은 첨단 제조업은 미국의 경제와 안보에도 필수적이다. 지정학적으로도 한국은 동북아에서 미국의 대중국 전략에 핵심적 위치를 차지한다. 한국이 없으면 미국 전략에도 큰 구멍이 생긴다.


따라서 한국 정부는 협상에서 한국 산업의 중요성을 분명히 하고, 정치권은 정파적 이해를 넘어 국가 전략을 세워야 한다. 국민은 단순한 반발을 넘어 정부가 굴욕적 협상을 하지 않도록 압력을 행사해야 하며, 동시에 가계부채, 불평등, 저출산 같은 구조적 위기를 해결하라는 개혁 요구를 지속해야 한다.


지금의 한미 관계는 꼬여 있다. 그러나 이 꼬임을 직시하고 풀어내는 것은 한국이 스스로를 재정립할 기회이기도 하다. 동맹은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니라 대등한 파트너십이어야 한다.

한국의 정부와 정치권, 그리고 국민이 함께 이 균형을 되찾을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동맹과 국가적 자존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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