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총 에너지 사용량은 약 2.12억 TOE(석유 1톤이 가진 에너지량 기준)이다. 에너지원별로 보면 석유가 47%로 가장 크고, 전기 21.8%, 석탄 14.1%, 도시 및 천연가스 12.2%, 신재생·기타 3.7%, 열에너지 1.2% 수준이다. 특히 석유는 전체 에너지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며, 수송 부문과 산업용 연료, 원료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이 수치만 봐도 한국의 에너지 구조가 여전히 화석연료, 특히 석유에 크게 의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한국의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약 93~94%에 달한다는 점이다. 한국은 구조적으로 에너지를 거의 생산하지 못하는 나라다. 즉 에너지 가격 변동, 지정학적 갈등, 해상 물류 차질이 곧바로 산업 경쟁력과 국민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전형적인 에너지 수입 의존형 국가다. 에너지는 단순한 소비재가 아니라 국가의 생존 인프라다.
전기로 시선을 옮기면 이 구조는 더 분명해진다. 한국의 연간 전력 소비량은 약 580~590 TWh 수준으로, 전 세계에서 상위 10위권에 해당한다. 중국이 약 9,456 TWh, 미국 4,145 TWh, 일본 913 TWh, 독일 464 TWh, 영국 380 TWh인 점을 감안하면, 인구 규모 대비 한국은 전기를 매우 많이 사용하는 국가다. 이는 반도체, 철강, 석유화학 등 전력 집약적인 중공업 제조 기반 산업이 한국 경제의 중심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전력 소비 구조를 보면 산업용이 약 55~60%로 절반을 훌쩍 넘고, 가정용이 약 30%, 공공 및 기타가 약 10% 수준이다. 한국에서 전기는 ‘생활 인프라’이기 이전에 ‘산업 인프라’다. 공장이 멈추면 국가가 흔들리는 구조에서 전력의 안정적 공급은 선택이 아니라 전제 조건이다.
한국의 전기 생산 구조를 보면 화석연료(석탄·LNG·소량의 석유)가 약 55~60%, 원자력이 약 30%, 신재생에너지가 약 10% 수준이다. 재생에너지 비중은 증가 추세지만, 아직까지 전력 시스템의 중심을 맡기에는 변동성이 크고 저장·계통 보완 비용이 크다. 이 틈을 메워온 것이 원자력이다.
현재 한국에는 총 26기의 원자력 발전소가 가동 중이며, 4기가 추가로 건설 중이다. 가동 중인 26기의 총 설비용량은 약 26GW이며, 연간 전력 생산량은 약 188~190 TWh 수준이다. 지역별로는 부산 기장의 고리 원전 7기, 전남 영광의 한빛 6기, 경북 울진의 한울 8기, 경주 월성 5기가 운영되고 있다. 이 가운데 고리 1호기와 월성 1호기는 이미 영구 정지됐다.
월성 원전에서 운영 중인 2,3,4호기는 중수로 방식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중수로는 농축하지 않은 천연 우라늄을 그대로 사용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사용 후 핵연료 발생량이 많고 방사성 폐기물 관리 부담이 크다. 이로 인해 월성 지역은 사용 후 핵연료 저장시설 포화 문제와 주민 갈등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의 신규 원전은 모두 경수로 방식으로 건설되고 있다.
원자력의 가장 큰 강점은 전기의 ‘질’이다. 발전 가동률만 봐도 차이가 분명하다. 원자력은 평균 85~90%, 석탄은 60~70%, 가스는 40~60% 수준이며, 태양광은 15~20%, 풍력은 25~30% 정도다. 동일한 설비 용량이라면 원자력은 재생에너지 대비 3~4배 가까운 실질 발전량을 제공한다. 연료 운반 비용과 단가 측면에서도 안정적이다. 그래서 원자력은 한국 전력 시스템에서 기저부하를 담당해 왔다.
하지만 원자력에는 항상 따라붙는 문제가 있다. 바로 폐기물이다. 사용 후 핵연료봉에는 다시 연료로 사용할 수 있는 우라늄이 약 95%, 핵무기 원료로도 사용 가능한 플루토늄이 약 1%, 그리고 강한 방사능과 열을 발생시키는 고준위 폐기물이 약 4% 포함돼 있다. 이 물질들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원자력의 본질적 쟁점이다.
재처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선택지다. 재처리를 하면 사용 후 핵연료에서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분리해 다시 연료로 사용할 수 있고, 고준위 폐기물의 부피는 대략 1/4 수준으로 줄어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진짜 위험한 폐기물만을 분리해 유리화 등 안정화 과정을 거쳐 장기·영구 보관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기술적으로 보면 ‘쓰레기 처리’라기보다는 ‘연료의 순환’에 가깝다.
그러나 재처리는 비용과 정치의 벽에 부딪혀 있다. 재처리 연료는 기존 우라늄 대비 약 2~4배 이상 비싸고, 무엇보다 플루토늄 분리가 핵확산 문제와 직결된다. 이 때문에 프랑스, 영국, 러시아 등 일부 국가만 재처리를 수행하고 있으며, 대부분 국가는 한 번 사용한 연료를 그대로 저장하거나 처분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한국 역시 재처리 기술 역량은 보유하고 있지만, 국제적 합의와 한미 원자력 협정 체제 속에서 상업적 재처리는 아직 승인받지 못한 상태다. 그 결과 사용 후 핵연료는 각 원전 부지에 그대로 쌓이고 있다.
현재는 한국은 ‘직접 재처리’가 아닌 ‘파이로프로세싱’ 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문제는 이 저장시설이 이미 포화 단계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저장 여력이 한계에 다다르면 관리 리스크는 급격히 커진다. 사고 가능성, 방사능 누출 우려, 지역 사회 갈등이 동시에 증폭될 수 있다. 그래서 사용 후 핵연료 문제는 더 이상 먼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세대가 반드시 결정을 내려야 할 정책 과제가 됐다.
여기에 최근 주목받는 것이 소형모듈원자로(SMR)다. 대형 원전이 약 1GW 규모라면, SMR은 약 0.3GW 수준으로 대형의 1/3 정도다. 분산형 전원으로 운영할 수 있고, 지하 설치 등으로 안전성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AI 확산으로 데이터센터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대규모 집중형 전원만으로는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SMR 논의를 가속시키고 있다. SMR 1 기면 중소도시 하나의 전력 수요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다만 SMR 역시 우라늄을 사용하고 폐기물을 발생시킨다는 점에서 원자력의 본질적 한계를 벗어나지는 못한다. 형태와 규모가 달라질 뿐, 폐기물 관리라는 숙제는 그대로 남는다.
원자력 폐기물은 짧게는 수천 년, 길게는 수만 년 동안 관리해야 한다. 현재 세대가 산업 성장과 편의를 위해 사용하는 전기의 대가는 미래 세대가 떠안게 된다. 이는 분명 윤리적 부담이다. 그러나 동시에 지구 온난화라는 또 다른 위기가 있다. 과학계는 화석연료 사용이 기후 위기의 주된 원인이라는 데 거의 합의에 이르렀고, 지금도 온난화는 가속되고 있다.
AI 시대의 데이터센터는 막대한 전력을 요구한다. 초대형 AI 데이터센터 클러스터는 원전 1기급 전력을 요구하는 수준까지 커지고 있다”. 이 전력을 무엇으로 감당할 것인지는 AI 발전의 속도와 직결된다. 결국 우리는 완벽하지 않은 선택지들 사이에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원자력은 위험하고, 재생에너지는 아직 불완전하며, 화석연료는 기후를 파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 전기를 만들어야 하는 현실 속에서, 원자력은 여전히 가장 현실적인 저탄소 기저 전원 중 하나로 남아 있다. 중요한 것은 원자력을 쓰느냐 마느냐의 이분법이 아니라, 그 비용과 위험, 그리고 책임을 누구에게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에 대해 사회가 정직하게 합의하는 일이다. 에너지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세대 간 책임과 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