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한국 기업이 바꿔야 할 세 가지 구조

더 빠르게가 아니라, 더 오래 가기 위해

by 한재영 신피질

AI 시대를 맞아 한국 기업들에게 가장 자주 던져지는 질문은 “얼마나 빨리 따라잡을 수 있는가”다. 그러나 이 질문은 이미 방향을 잘못 잡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구조의 지속 가능성이다. 기술은 따라잡을 수 있지만, 구조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한국 기업이 AI 시대에 생존하기 위해 반드시 바꿔야 할 것은 많지 않다. 다만, 이 세 가지는 피할 수 없다.


첫째는 산업별 ‘시간’을 존중하는 구조다.

AI와 반도체, 특히 파운드리와 같은 장치산업은 분기 실적의 언어로 설명되지 않는다. 공정 하나가 성숙하는 데는 수년이 걸리고, 실패는 예외가 아니라 과정의 일부다. 그럼에도 한국 기업은 여전히 모든 사업을 같은 시간표로 관리한다. 조립산업의 속도와 장치산업의 속도를 동일한 잣대로 재단하고, 그 결과를 인사와 예산에 즉각 반영한다.


이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어떤 첨단 기술도 뿌리내리기 어렵다.
최소한의 변화는 이것이다. 장치산업에는 장기 평가 체계를, 플랫폼·AI 사업에는 실험을 허용하는 시간표를 따로 부여하는 것. 이는 대대적인 조직 개편이 아니라, 시간을 다르게 인정하는 경영의 결단이다. 산업의 시간을 존중하지 않는 조직은 결국 산업을 포기하게 된다.


둘째는 ‘통합 관리’가 아니라 ‘책임 있는 독립’ 구조다.
한국 기업은 통합을 효율로 착각해 왔다. 모든 사업을 하나의 컨트롤 타워 아래 두고, 하나의 KPI와 하나의 언어로 관리하는 것이 안정적이라고 믿어왔다. 그러나 AI 시대의 핵심 산업들은 서로 너무 다르다. 파운드리, AI 플랫폼, 서비스, 하드웨어는 같은 체계로 묶일 수 없다.

여기서 필요한 변화는 분사가 아니다. 더 근본적인 것은 독립된 의사결정 권한과 책임의 명확화다. 특정 산업은 스스로 전략을 결정하고, 스스로 실패의 책임을 지되, 그 실패가 다른 사업의 잣대로 평가되지 않도록 하는 구조. TSMC가 파운드리를 하나의 ‘국가 인프라 같은 산업’으로 다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독립은 방임이 아니라, 집중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다.


셋째는 인사와 실패를 분리하는 구조다.
AI 시대의 혁신은 필연적으로 실패를 동반한다. 문제는 한국 기업에서 실패가 곧 개인의 낙인이 된다는 점이다. 실패한 프로젝트는 곧 인사 기록이 되고, 그 순간 조직은 다시 보수적으로 움츠러든다. 이런 환경에서 누가 장기 전략을 제안하고, 누가 위험을 감수하겠는가.

최소한 바꿔야 할 것은 명확하다. 전략적 실패와 무능을 구분하는 제도적 장치다. 실패한 프로젝트의 책임을 묻되, 그것이 구조적·전략적 선택의 결과라면 인사 평가와 분리해야 한다. 실패를 허용하지 않는 조직은 학습하지 못하고, 학습하지 못하는 조직은 AI 시대에 설 자리가 없다.


이 세 가지는 거창한 개혁이 아니다.


그러나 이 세 가지 없이는 어떤 기술 투자도, 어떤 인재 영입도 결국 기존 구조에 흡수되어 사라진다. AI 시대의 경쟁력은 알고리즘이나 GPU 이전에, 조직이 시간을 대하는 방식, 권한을 나누는 용기, 실패를 해석하는 지혜에서 나온다.

한국 기업이 바꿔야 할 것은 많지 않다.
다만, 이 세 가지를 바꾸지 않는다면 나머지는 아무 의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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