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운드리는 메모리가 아니다.
나는 파운드리를 잘 아는 사람을 가까이서 오래 지켜봤다. 파운드리 사업이 막 시작되던 시기부터 경영진에서 현장을 뛰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파운드리에 대한 내 생각은 이론이 아니라, 사람과 조직이 어떻게 움직였는가에 대한 기억에 가깝다.
삼성은 파운드리를 키우기 위해 메모리 및 시스템 LSI 출신 인력을 대거 투입했다. 당시로서는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삼성 반도체의 성공 경험은 대부분 메모리 및 LSI에서 나왔고, 메모리는 세계 최고였다.
초창기 삼성 파운드리는 애플과 협업하며 아이폰용 AP를 위탁 생산하는 데 성공했고, 그 시기까지만 보면 삼성의 선택은 틀리지 않아 보였다.
삼성이 갤럭시 AP를 자체 설계·생산하면서, 파운드리는 구조적으로 고객이자 경쟁자인 위치에 서게 된다. 애플은 이 변화를 누구보다 민감하게 받아들였다. 애플은 단순한 고객이 아니었다. 공정에 대한 이해가 매우 깊었고, 설계와 제조의 경계를 정확히 알고 있던 회사였다. 결국 애플은 삼성에 기술 유출에 대한 의심을 품었고, 파운드리 파트너를 2014년부터 시작해서 2016년 전부 TSMC로 옮긴다.
중요한 건 그다음이다. 애플이 떠나며 삼성 파운드리에서 빠져나간 것은 단순한 물량이 아니라, 공정에 대한 최고 수준의 고객 지식과 피드백이었다. 그 이후부터 삼성 파운드리는 눈에 띄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 지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한다. “기술이 부족했다”, “투자가 늦었다”라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파운드리와 메모리는 근본이 다르다.
메모리는 얼마나 많이, 얼마나 촘촘하게 집적하느냐의 산업이다. 내가 잘 만들면 고객은 줄을 선다. 설계 역량이 중요하고, 시황의 영향을 크게 받지만, 본질적으로는 내가 중심에 서는 산업이다. 반면 파운드리는 로직 산업이다. 얼마나 빠르고 효율적으로 연산을 처리하느냐, 그리고 그 연산을 고객의 설계 의도에 맞게 구현해 주느냐의 문제다. 파운드리는 공정 기술 이전에 신뢰 산업이다. 고객의 요구를 끝없이 받아들이고, 설계 변경과 공정 개선을 함께 반복하며 성장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기 실적이 아니라 장기적 신뢰의 축적이다.
그래서 파운드리는 최소 3년 이상 공을 들여야 비로소 결과가 나온다. 실패는 필수고, 고객 요구는 끝이 없다. 이 산업이 제대로 돌아가려면 조직은 분권화되어야 하고, 현장의 권한은 커야 하며, 무엇보다 고객의 요구를 귀찮아하지 않는 문화가 필요하다.
문제는 삼성 파운드리가 그런 조직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삼성 내부에서 파운드리는 언제나 메모리 대비 후순위였다. 의사결정의 중심도, 투자 판단의 기준도 메모리 중심이었다. 매년 성과를 내는 메모리 조직의 시간표가, 최소 몇 년을 기다려야 하는 파운드리 조직에 그대로 적용됐다. 그리고 파운드리 사업부의 책임자 역시 대부분 메모리나 LSI 출신들이 맡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 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건 개인의 능력 문제가 아니다. 조직 문화와 산업의 성격이 맞지 않았던 것이다. TSMC가 미국의 설계 및 공정 전문가를 대거 영입하여, 지속적으로 파운드리 독자적인 산업을 구축한 것과는 대조된다.
삼성은 메모리에서 실적이 오르면 파운드리에 대해서는 소홀하게 되어있다. 그리고 파운드리는 현재 적자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 테슬라 칩을 어느 정도 생산할 수 있고, 잘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삼성 파운드리 사업부는 최근 2위 전략을 세운듯하다.
즉 메모리도 HBM 기술을 발전시켜야 하는 데, 기존처럼 메모리 자원을 파운드리로 보낼 수 없다.
파운드리 자체적으로 지속적으로 인력이나 장비에 대한 투자를 해야 하는데, 두 개를 동시에 투자하려면 장기적 안목이나 큰 결정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사실 현재의 경영으로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결국 메모리로 집중할 가능성이 높고, 파운드리는 2위 전략을 할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시선을 삼성 내부에서 글로벌 구조로 옮겨보자. 지금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GPU 및 AI 가속기 및 다양한 반도체 생산 공장이다. 그런데 첨단 생산과 중·상급형 생산을 TSMC가 사실상 압도적으로 담당하고 있다. 미국을 포함한 서구는 설계 역량은 강하지만, 첨단 로직 제조 기반과 공급망이 아시아 특히 대만에 크게 의존하는 방향으로 굳어져 왔다. 미래의 가장 중요한 반도체 생산이 지정학적 리스크가 있는 대만의 한 회사인 TSMC에 과도하게 몰려있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그래서 테슬라도 삼성과 계약을 한 것이고, 미국 정부가 인텔을 밀어주고, 엔비디아까지 인텔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삼성도 미국에 파운드리 공장에 대한 투자를 진행하는 이유도 그것이다.
이 대목에서 “미국 정부의 인텔 지원”은 최근 몇 년간 반도체 공급망 재편의 상징 같은 사건이 됐다. 2024년 3월 미국 정부(상무부)는 인텔과 CHIPS 지원에 대해 최대 85억 달러 직접 지원을 전제로 한 예비합의(PMT)를 발표했고, 같은 해 11월에는 그 직접 지원 규모가 최대 78.6억 달러(7.86B)로 최종 확정됐다는 발표가 나왔다.
그리고 2025년 8월에는 인텔과 미국 정부가 별도의 구조로, 미국 정부가 인텔 보통주에 89억 달러를 투자해 9.9% 지분을 취득하는 합의를 발표했다. 이건 “지원금”을 넘어 “지분 투자”라는 방식으로까지 제조 기반을 붙들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엔비디아 쪽도 같은 흐름 위에 있다. 2025년 9월 엔비디아는 인텔과 협력(제품/플랫폼 측면)을 발표하면서, 동시에 50억 달러 규모의 인텔 보통주 매입을 합의했고, 2025년 12월 말에 거래가 완료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 역시 단순한 금융 투자라기보다, 공급망 리스크가 커진 시대에 설계 최강자인 엔비디아조차 “미국 내 제조 기반 복원”이라는 거대한 흐름을 외면하기 어렵다는 신호로 읽힌다. 다만 이것이 곧바로 “엔비디아의 핵심 GPU가 인텔 파운드리에서 즉시 양산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현재 생산 현실과 산업 관성은 훨씬 복잡하다.
그래도 중요한 건, 세계가 “TSMC 집중”의 편의와 동시에 “TSMC 집중”의 위험을 함께 인식하기 시작했고, 그 위험을 줄이려는 움직임이 정책과 자본의 형태로 실제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삼성은 첨단 노드에서 TSMC를 초월하려고, 기존의 핀펫 공정에서 GAA 공정으로 지난 3년간 노력을 했다. 하지만 수율이 예상대로 나오지 않아 고전을 하고 있는 중이다.
TSMC도 GAA 공정으로 전환 중이다. 다만 삼성은 기술적 선도를 택했고, TSMC는 안정성과 고객 신뢰를 바탕으로 전환의 속도를 조절하는 인상을 준다. 결국 여기서도 핵심은 기술의 단발성이 아니라, 산업의 시간표를 어떻게 견디고 운영하느냐에 가깝다.
메모리는 내가 잘 만들면 고객이 줄 서고, 시황에 따라 실적이 크게 움직이지만 제조자가 주도권을 갖는 산업이다. 반면 파운드리는 고객과 무한한 신뢰가 중요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장기적으로 신뢰를 쌓고, 고객의 요구 사항을 끊임없이 빨리 반영하면서 서로 협력해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려면 조직이 분권화되고, 현장의 권한이 커져야 하고, 고객의 요구를 ‘귀찮은 변수’가 아니라 ‘성장의 엔진’으로 받아들이는 유연성이 필요하다.
그런데 삼성 파운드리는 메모리 및 LSI 중심의 문화와 인력이 오랫동안 파운드리를 이끌어 왔고, 삼성 컨트롤타워의 관점 역시 메모리 중심으로 기울기 쉬웠다. 이 구조적 불일치가 결국 고객 이탈과 격차 확대의 배경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TSMC가 강한 이유는 기술 때문만이 아니다. 파운드리를 파운드리답게 대했고, 그 산업에 맞는 시간과 문화, 신뢰의 구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삼성 파운드리의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해답 역시 기술 이전에 구조와 문화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