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은 노화를 어디까지 이해했을까?

AI와 노화 학습

by 한재영 신피질

장수 연구에서 인공지능이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하다.
노화는 하나의 원인으로 설명되지 않고, 유전자·대사·염증·면역·생활리듬이 얽힌 복잡계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인간 연구자는 이 복잡계를 ‘좋은 가설’로 단순화해 실험으로 증명해 왔는데, 최근에는 데이터의 규모가 지나치게 커져 가설을 만드는 단계 자체가 병목이 되었다.


인공지능은 여기에서 역할이 생긴다. AI가 ‘정답’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방대한 생물학·임상·오믹스(omics, 유전체·단백질·대사체 등 생명정보를 대량 분석하는 분야) 데이터에서 가능한 가설을 압축하고 실험의 우선순위를 좁혀 연구 속도를 바꾸는 방식이다.


그렇다면 “성과”는 어디에서 확인되는가. 장수 연구에서 지금 당장 과학적으로 가장 단단한 성과는, 사람이 실제로 더 오래 살았다는 직접 증명보다는, 노화와 강하게 연관된 지표(생물학적 나이, 질병 위험, 사망 위험)가 예측되고 일부는 개입 후 변화하는 모습이 관찰된다는 수준이다.


대표적인 예가 생물학적 나이(biological age) 측정이다. 과거에는 달력 나이가 곧 노화의 기준이었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서는 동일한 나이라도 세포 수준의 노화 속도는 크게 다르다는 사실이 반복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를 가능하게 만든 것이 에피제네틱 시계(epigenetic clock, DNA 메틸화 패턴을 이용해 노화 관련 변화를 추정하는 분석 모델)다. 이는 DNA 염기서열 자체가 아니라,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메틸화(methylation, 유전자의 활성도를 조절하는 화학적 표식) 패턴을 분석해 생물학적 나이를 추정하는 방식이다. 이 영역은 인공지능과 통계 모델 없이는 성립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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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무작위 대조시험 RCT(Randomized Controlled Trial, 무작위로 실험군과 대조군을 나누어 효과를 검증하는 임상 연구)에서는 식이, 운동, 수면, 스트레스 관리와 같은 생활 개입 이후 특정 에피제네틱 시계 수치가 감소하는 변화가 관찰되었다. 다만 이는 “젊어졌다”는 의미가 아니라, 해당 지표로 측정한 노화 관련 신호가 변화했다는 뜻이며, 장기적인 수명 연장 효과가 증명된 것은 아직 아니다.


약물 쪽으로 가면 메트포르민(metformin, 당뇨병 치료제로 오래 사용되어 온 약물)은 장수 연구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후보 중 하나다. 대규모 의료 데이터를 인공지능으로 분석하면서 노화 관련 질환 발생과의 연관성이 재해석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노화 자체를 표적으로 검증하려는 TAME 연구(Targeting Aging with Metformin, 노화를 질병처럼 다루려는 임상 시도)가 기획되었다. 다만 현재까지 인간의 수명을 연장했다는 확증 결과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 하나의 중요한 영역은 노화 세포(senescent cell, 분열을 멈췄지만 체내에 남아 염증 물질을 지속적으로 분비하는 세포) 연구다. 이러한 세포는 나이가 들수록 축적되며 조직 기능 저하와 만성 염증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노화 세포를 선택적으로 제거하려는 접근을 세놀리틱(senolytic, 노화 세포 제거를 목표로 하는 후보 물질) 연구라고 부른다.


이 분야에서 인공지능은 수많은 화합물 중에서 노화 세포에 특이적으로 반응할 가능성이 높은 후보를 우선적으로 탐색하는 데 사용된다. 현재까지 의미 있는 결과는 주로 동물 모델(animal model, 인간 질환을 모사한 실험동물)에서 반복적으로 관측되었으며, 인간 대상 연구는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또 다른 변화는 개인별 노화 경로(aging trajectory, 사람마다 다르게 진행되는 노화의 주요 경로) 분석이다. 노화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진행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혈관 기능이 먼저 약해지고, 어떤 사람은 근육 대사가 먼저 저하되며, 또 다른 사람은 면역 기능의 변화가 먼저 나타난다. 인공지능은 이러한 차이를 데이터 기반으로 분류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연구들을 종합하면 하나의 결론에 도달한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수명을 직접 늘려주지는 않는다. 대신 노화를 구성하는 생물학적 경로를 더 정밀하게 측정하고, 비교하고, 예측 가능하게 만든다. 장수 연구에서 AI의 가장 큰 기여는 불확실한 현상이던 노화를 처음으로 계산 가능한 대상으로 옮겨놓았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사실 하나가 분명해졌다. AI가 개인별 노화를 아무리 정밀하게 분석하더라도, 장수를 위해 공통적으로 요구되는 생활 패턴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첫째, 담배는 예외 없이 가장 큰 레버리지다. 금연은 어느 나이에 하더라도 생존 확률을 의미 있게 끌어올린다는 근거가 매우 강하고, 특히 40세 이전에 끊을수록 기대수명 이득이 크다는 대규모 분석들이 반복된다.


둘째, 걷기 같은 저강도 활동조차 “많이 할수록 대체로 유리”하다는 증거가 이미 매우 크다. 최근 대규모 메타분석에서는 하루 걸음 수가 늘수록 여러 건강결과와 사망 위험이 개선되는 용량-반응 관계를 제시하며, 과거의 1만 보 신화보다 낮은 구간에서도 이득이 크다고 정리한다.


셋째, 유산소만이 아니라 근력운동이 독립적으로 중요하다. 근력운동(저항훈련)이 전반적 사망위험을 낮춘다는 코호트 기반 메타분석 결과가 있고, 과도한 볼륨보다 “꾸준한 최소량”에서 이득이 크게 관찰된다는 점이 실용적으로 중요하다. 또한 WHO와 CDC 같은 가이드라인이 유산소(주당 150분 수준)와 함께 주 2회 이상의 근력운동을 함께 권고하는 이유도, 질병 예방과 기능 유지의 증거가 축적됐기 때문이다.


넷째, 수면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생리학’이고, 7–8시간 범위를 크게 벗어나는 패턴(만성적 수면 부족이나 과수면)이 사망위험 증가와 연관된다는 메타분석 근거가 꾸준히 나온다. AI가 할 수 있는 최고의 개입 중 하나는 “수면을 정량화하고(규칙성, 중간각성, 코골이/무호흡 신호), 습관을 교정하게 만드는 것”이다.


다섯째, 식사는 ‘특정 슈퍼푸드’가 아니라 패턴이 핵심이고, 지중해식·DASH (Dietary Approaches to Stop Hypertension, 고혈압 예방을 위한 식단 패턴) 같은 전통적 건강 식사 패턴이 장기 사망위험 감소와 연관된다는 대규모 근거가 강하다. AI가 개인에게서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역할은, 혈당·체중·지질·염증 표지의 반응을 보면서 “그 사람에게 지속 가능한 패턴”을 최적화하는 것이다.


여섯째, 음주는 장수 담론에서 가장 쉽게 왜곡되는 분야다. 최근 WHO 유럽은 “건강을 기준으로 한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는 음주량은 없다”라고 분명히 정리했고, 암과의 인과적 연결을 강조한다. 그래서 장수 관점에서 가장 보수적이고 안전한 문장은 “마시지 않는 것이 더 낫고, 마신다면 줄일수록 유리하다”


마지막으로, 생활요인들을 하나로 묶는 프레임이 필요하다면, ‘유행’이 아니라 ‘검증된 체크리스트’가 좋다. 미국심장협회가 정리한 건강한 삶의 필수요소 8( Life’s Essential 8)은 식사, 활동, 니코틴, 수면, 체중, 혈중지질, 혈당, 혈압이라는 핵심 축을 제시하는데, 장수의 대부분을 설명하는 만성질환 위험요인을 거의 빠짐없이 포함한다. AI 시대의 장수는 결국 이 8개의 축을 개인별 데이터로 추적해 “경고를 빨리 울리고, 꾸준히 유지되게 하는 운영체제”로 구현되는 쪽에 가깝다.


정리하면 인공지능이 밝혀낸 장수의 비밀은 의외로 단순하다. 새로운 비법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알려졌지만 지키기 어려웠던 생활 원칙들이 여전히 가장 강력하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을 뿐이다. 인공지능의 진짜 역할은 이 원칙을 개인의 데이터 위에서 지속 가능하게 관리하도록 만드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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