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천만세동산, 함덕해수욕장, 서우봉오름, 북촌리마을
제주도는 육지와 멀리 떨어진 섬이지만, 우리나라 역사 현장이 선명하게 잘 나타난 곳이 있다.
전쟁이 일어나면 기득권 세력이 많이 있고 전투장소와 떨어져 있는 수도는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다.
하지만, 전투가 있는 접경지역 주민들이나, 전쟁을 수행하는 병사들이 가장 많은 피해를 입는다.
제주도는 전쟁 지역과 멀리 떨어져 있는 섬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한국사에서 전쟁 지역과 같은 큰 피해를 입은 곳이다.
몽고침입 때 삼별초란 그리고, 일제 강점기 3.1 독립운동 및 제주 해녀들의 일제 항거운동이 발생했다. 제주 4,3 사건 때는 제주 전체가 초토화될 정도의 큰 피해를 입었다.
조선시대 때는 중범죄자들의 귀양처였다. 추사 김정희도 이곳에서 귀양 살이를 했고, 광해군도 강화도 유배 이후 최종적으로 제주도로 옮겨져서 4년 살다가 사망했다.
진도에서 패배한 삼별초가 제주도로 도망갈 것을 대비해서 관군과 제주도 백성들이 함께 제주도 해안 200리에 용암 돌로 쌓은 환해 장성이 있다. 또 곳곳에 4.3의 유적지 흔적이 있다. 전체적으로 제주도는 산 자가 죽은 자에 대한 존경이 있는 듯하다.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제주에서도 3.1 저항 운동이 있었다. 그리고 곳곳에 독립운동 역사가 있다.
조천만세동산은 3.1 운동 당시 조천지역에서 약 1,500여 명이 참석해서 집회가 열렸고 많은 사람이 투옥되었다.
이십 대 젊은 나이에 일제 감옥에서 옥사를 한 몇 분 비문이 있다. 혹독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출옥 후 얼마 살지 못하고 죽은 사람도 있다.
움푹 들어간 해안가에 앉아 바다를 본다. 잔잔한 바람은 파도를 서서히 민다. 거품은 파도를 타고 왔다가, 해안가 검은 돌에 부딪치며 소멸된다. 햇빛이 바다에 비치며, 에메랄드색부터 짙푸른 감청색까지 다양한 푸른빛스펙트럼을 만든다.
평화가 온몸에 찾아든다.
18-1코스인 추자도 가려고 한 계획을 수정했다.
올레 센터 직원분에 따르면 추자도향 출발지가 제주 항만이고 추자도에서 1 박을 해야 한다고 한다. 입출항 시간이 하루에 한두 번이어서 추자도는 21 코스 끝나고 마지막 여정으로 계획을 변경했다.
추자도 18-1코스는 18코스에서 연결이 안되고 제주 항만에서 출발한다. 코스 번호로 인한 착오다.
19 코스 시작점에서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 5km 떨어진 이곳 함덕해수욕장으로 왔다. 두 시간 전 예약한 호텔에서 모처럼 따뜻한 욕조 물에 여독을 풀었다.
아침 햇빛이 구름을 갈라내고 함덕해수욕장 잔잔한 바다 위에 한줄기 빛 길을 낸다. 빛 길은 저쪽 해안가에서 출발하여 바로 내 발 밑까지 이어진다.
어제 해 질 녘 물 밖에 넓게 펼쳐졌던 흰 백사장은 낮은 바다 밑에서 잔잔한 파도소리와 함께 모습을 살짝 보인다. 달빛이 바닷물을 밤새 몰았고, 바닷물은 넓은 모래 위에 잔잔하게 일렁인다.
올레길 내내 50리터 배낭을 메고 다녔는데, 배낭을 방에 놓고 나와 맨 몸으로 조깅을 하니 몸이 날아갈 듯 가볍다. 잠깐 달려본다.
그동안 스쳐갔던 올레길 여행자들은 대부분 짐 없이 가볍게 다닌다. 대중교통이 잘 발달된 제주도는 거점에 숙소를 정한 후, 숙소에 짐을 나 두고 편하게 다닌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대중교통편으로 숙소로 돌아올 수 있다.
60 중반인 나이에 무거운 짐을 메고 오랫동안 다니니 허리와 등이 편지 않다. 짐을 이곳에 놓고 가볍게 가고 싶은 생각이 든다. 프런트에 추가로 하룻밤 연장하려고 체크하니, 오늘 하필 만실이다. 별 수 없이 짐을 쌌다. 내 운명의 신이 호락호락하지 않다.
배낭을 맸지만 그다지 무겁지 않다. 벌써 몸이 적응했나 보다.
호텔을 나와 백사장 근처 넓은 잔디에 앉았다. 함덕비치의 에메랄드 바다는 멀리 넓게 퍼져 있다.
바닥이 얕고 깨끗한 바다는 연한 빛을 띤다.
함덕은 최고의 비치다. 넓게 뻗은 부드러운 흰모래, 에메랄드 잔잔한 바다.
40년 전 대학 졸업 후 혼자서 이곳을 찾았을 때 백사장의 아름다운 모습에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올레 길은 구불구불 자연의 길이다. 좁은 길, 돌 길, 흙 길, 잔디길이다.
큰 도로, 도시 번화가를 피해서 천천히 돌아가는 길이다.
따라서 잠시나마 잔디의 부드러운 감촉을 엉덩이로 느끼며, 여유로운 시간을 즐겨도 된다.
함덕 비치 근처 넓은 잔디밭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있다.
바다는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고, 파도 소리는 아무리 들어도 시끄럽지 않다. 곧은 야자수 군집 너머 새소리도 최고의 소프라노다.
아침부터 내 발은 호사를 누리며 부드러운 자연에서 행복한 자유를 만끽한다.
서우봉오름으로 간다.
오름은 올레길 걷기에서 반복되는 선물이다.
서우봉도 키 큰 소나무, 후박나무가 가득해서 청량한 기운이 있다.
100여 미터 높이로 아주 낮은 오름이지만 의외로 가파르다. 오르는 길에 표현 어린이집 유치원생들의 푯말이 힘을 북돋아 준다.
넌 할 수 있어. 최고야 힘내자.
더 많이 웃고 덜 걱정하기.
단순한 문구지만 미소가 일고 기운이 난다.
하지만 서우봉을 지난 후 북촌리 마을에 들어서자 공기가 무겁다. 갑자기 돌덩어리가 가슴에 놓인 듯하다.
제주 4.3 사건 때 마을주민 절반 이상인 약 400여 명이 비명횡사한 비극의 마을이다.
특히 1947년 1월 17일은 남녀노소 300여 명이 토벌군에 의해 대량학살 당했다.
전쟁이 끝난 1954년까지도 4.3은 어어 졌다. 유족은 빨갱이로 취급을 받았고 숨죽이고 살았다.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빨갱이 등 극단적 용어를 쓰면서 이념적 극한 대립에 있는 사람들이 있다.
애기무덤 앞 너븐승이 기념관에서 당시 기록물 영상물을 시청했다. 그때 그 군인들은 어떻게 양민을 향하여 총알을 난사했을까?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누나, 동생과 같은 마을 주민들을 향하여 20대 병사들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총을 난사했을까?
그 이후 그들은 평생 어떻게 살았을까?
문민정부는 그들을 추적하여 단죄했을까?
4.3 진상 조사 후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최초로 사과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등 오랜 군사정권이 끝나고, 민주화 투사였던 김영삼, 김대중 지난 후, 노무현 정권에서 진상위윈회가 조사를 했다. 당시 학살의 주역이었던 군대와 경찰은 2019년 처음으로 사죄를 했다. 당시 주역들을 단죄했는가?
길고 긴 세월 동안 침묵의 몸부림이 있었다.
이후 79년 현기영 작가의 소설 ‘순이 삼촌’을 불씨로 진실이 조금씩 수면 위로 드러났다.
하지만 대한민국 극우보수 세력은 제주 4. 3을 국가 폭력으로 규정하는지 의심스럽다. 아직도 제주 4 3 사건을 빨갱이 소탕이라고 하는 세력이 매우 크다.
한강 작가는 그의 작품 ‘작별하지 않는다 ‘에서 4.3 사건 유족의 트라우마를 끄집어냈다.
북촌포구의 작은 카페 돌담에 손글씨로 정성 들여 쓴 사연이 있어 사진에 담았다.
200년 전 북촌포구에서 생긴 일이라는 사연이다.
1796년 9월 이곳 출신 이방익이 과거 급제 후 휴가 차 고향에 들러 친구 8명과 우도를 가려다 풍랑을 만났다. 배가 16일 동안 표류하다가 대만 팽호도에 착륙하였고, 현지인들 도움으로 중국 본토로 가서 하문, 푸젠 성, 저장성 등 양자강을 경유하여 북경까지 간다.
청나라 황제까지 보고되어, 관리 호위를 받으며 만주를 거쳐 9개월 만에 압록강을 통하여 귀국한다.
이사실이 조정에 보고되었고, 당시 정조는 연암 박지원을 시켜 이사실을 기록하게 했다. 당시 이방익도 표류가를 썼다. 표류가를 읽어 보면, 갈증과 허기로 죽을 지경이었는 데, 비가 와서 빗물을 받아 마셨고, 뜻하지 않게 물고기가 배로 뛰어 들어와서 목숨을 건졌다고 한다.
제주도 마을 주변 평지에는 두 가지 숲이 있다.
첫 번째는 곶자왈이다. 잡목이 우거져 어둑하고, 바닥은 기괴한 용암 돌덩어리이다. 습기도 많은 듯하여 안개 낀 저녁에는 무서운 귀신이라도 나올 듯 음산하고, 뱀등 파충류, 모기 등이 우글 거릴듯하다.
난 곶자왈은 발걸음을 빨리하여 얼른 빠져나온다.
또 다른 숲은
소나무 후박나무 사철나무가 잘 우거져 있어 쾌적한 느낌을 주는 곳도 있다. 오름도 이런 종류이다. 이런 숲에서는 힐링하는 기분으로 천천히 걷는다.
내 감정과 정신은 양지에서 고양된다.
솔 숲과 작은 벌려진 동산에는 박노해 시인의 글귀 푯말이 있다. 맘에 든 두 가지를 적는다.
“나에게는 분명 나만의 다른 길이 있다.”
“사랑은 내 시간을 내어 주는 것이다.”
나는 내 시간을 기꺼이 주변 사람들에게 내주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