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길 걸으면서 느꼈던 생각
김녕 포구다.
해변가 용암 바닥 돌이 달아올라 발바닥이 뜨겁다. 얼른 신발을 신었다.
맑은 용천수에 바지를 걷어 올리고 맨발을 담갔다. 며칠 전 반바지 입고 노출된 종아리가 종일 햇빛에 달궈져서 따끈 거리면서도 시원하다.
오늘은 바람도 적고 햇빛도 강하다. 봄 햇빛은 온화에서 밭일에 딸을 내보내고 가을 햇빛은 강렬해서 며느리 보낸다는 말이 있는데, 오늘 봄 햇빛은 강렬하다.
밭에 양파가 뿌리를 온통 땅 밖으로 드러나 있고, 보리도 그냥 땅에 눕는다.
19코스 종점 인근 해녀의 집 식당에서 회덮밥으로 점심을 했다. 덮밥 속에 회가 싱싱하고 신선한 야채가 듬뿍 들었다.
시간이 두 시가 조금 지나 20코스로 출발했다.
올레를 돌다 보면, 여기가 최고야. 아~행복해라는 생각이 자주 든다. 김녕 비치를 지나 바닷길을 걷는 풍광도 그런 곳 중의 하나다.
해변 백사장에 벌써 피서객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오늘 오후 내내 이곳에 두 다리 박고 정착민처럼 머무르며, 가족이나 연인들과 함께 즐거운 추억을 만들 것이다.
하지만 나는 유목민처럼 이동한다. 바닷물에 잠시발을 담가보지만 십 분도 머무르지 못하고 새로운 곳으로 움직인다.
김녕 비치를 지나자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잘 자라 우거진 잔디가 잔물결을 만든다. 잔디 밑에 모래는 밀가루처럼 가늘고 고와서 발바닥 사이로 살며시 올라온다.
모래언덕에는 바닷바람에 순응하려고 납작하게 자란 청가시나무, 상록수, 순비기나무 등이 햇빛에 녹색 잎 여기저기서 반짝거린다.
오늘은 한가롭다. 풍력발전 날개 절반은 멈춰 있다.
잔디가 용암 바닥을 비집고 자란 성세기태역 길 옆 중간중간 검게 불에 탄 용암 밭이 있다. 시꺼먼 용암 밭 언덕을 화산 불길이 길 옆에서 치솟는 듯 조심스럽게 징검다리 건너듯 건넌다.
마치 반지의 제왕 원정대 같다.
제주올레길은 왜 이리 다양한가? 지루할 때가 되면 색다른 풍광이 나타나서 온몸 세포가 활성화되며 새로운 기운이 쏟아진다.
아침 7시 30분. 월정리 해수욕장 곳곳에 자리한 용암 바위 위에 앉았다. 이곳 용암은 유난히 더 검다. 마치 불에 그을린 돌 시체 같다.
벌써 해는 중천에 떠 있다. 햇빛은 수면을 뚫고 들어가 바닷속 모래 위에 육각형 빛 무늬를 만들고, 파도는 모래를 일으켜 그 무늬를 지워간다.
정강이까지 바지를 걷고, 차가운 바닷물을 밟으며 해변을 따라 걸었다.
눈앞에 보이는 20 여기 풍력날개가 모두 멈춰 있다. 바람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오늘이 풍차의 휴일일까?
간밤에 펜션에 비치된 김훈 작가의 『흑산』을 읽다 잠들었다. 흑산도에 유배되어 자산어보를 집필한 정약전이야기다.
김훈의 문장은 간결하고 함축적이어서 읽기 쉽지 않다. 하지만 글 속엔 깊은 사유와 연륜이 담겨 있다.
흑산』은 매고문에 대한 상세한 묘사로 시작한다. 조선 시대 장형 세 대를 맞으면 항문이 열리고 피와 오물이 튀었다는 충격적인 묘사도 있다.
정밀한 자료 조사와 현장 취재로 구성된 생생한 표현들이 인상적이다.
나는 흑산도를 가본 적이 없다. 조선 시대에는 9시간 배를 타야 했지만, 지금은 쾌속선으로 2시간이면 도착한다. 유럽 여행 중 노르웨이에서 거대한 크루즈를 탄 적은 있지만, 한국에서는 한 시간을 넘는 배 여행조차 드물다.
한동리 마을 정자 잔디밭에 앉아 있다. 월정리에서 약 한 시간 반 걸어왔다. 밭 길과 작은 숲 길을 지나왔다.
밭의 경계는 다양한 곰보 용암 돌담으로 나뉘어 있는데, 밭의 크기와 형태가 모두 지맘대로다.
중간에 쉬고 싶었지만, 앉을 만한 벤치나 다듬어진 돌 하나 보이지 않았다.
농촌에는 여유롭게 쉴 공간이 거의 없다.
이곳 밭 흙은 마치 검은 모래처럼 부서지기 쉽다. 화산섬인 제주도 답게 대부분 흙이 검다.
척박한 땅이 많아 인공 비료 사용이 많고, 마늘·감자·양파 같은 작물이 주로 재배된다.
이제는 농촌에서도 가축을 보기 힘들다. 한때 흔했던 소와 양은 들판에서 사라졌고, 닭과 돼지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우리 아버지처럼 소로 밭을 갈며 자식들을 대학에 보낸 농부가 오늘날 태어났다면 막막했을 것이다.
세화 전통시장에서 점심을 먹고 20코스 종점인 제주해녀박물관과 해녀 항일 기념탑에 도착했다.
1932년 1월 제주 구좌면에서 일본의 관제 해녀어합조합의 부정에 항거하여, 해녀 약 1000여 명이 자력으로 해녀회를 조직하여 항거했다.
일본 경찰에 맞서 호미와 비창을 들고 시위를 벌여, 요구 조건을 관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