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 장수 비밀과 장수의 세계

by 한재영 신피질


오늘은 은행나무의 장수에서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결국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로 가 보고 싶다. 용문사 은행나무를 바라보고 있으면 천년 세월이 쌓여있는 질감과 밀도를 느낀다.

하지만 모든 은행나무가 천 년을 사는 것은 아니다.


은행나무는 분명 장수 잠재력을 가진 종이지만, 실제 수명은 개체의 조건과 놓인 환경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중국이 원산지인 겉씨식물 은행나무는 병해충과 환경 스트레스에 비교적 강하다.

현대 연구에서도 수백 년 된 나무도 세포의 형성이 여전히 강한 방어·회복 체계를 유지하는 모습이 확인되었다.


하지만 그런 잠재력이 있다고 해서 모두가 천년목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잠재력은 씨앗이겠지만, 진짜 수명은 그 씨앗이 주변 세계와 만남의 결과다.


국가유산청 자료에 따르면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는 약 1,100년으로 추정되고,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는 지정 당시 기준으로 약 1300년 정도로 추정된다.


사찰이나 마을 어귀, 넓은 공간, 비교적 안정된 토양, 또한 신령스런 나무로 여겨 사람들이 정성들여 대대로 보호한 환경의 결과이기도 하다.


결국 오래 산 나무는 강한 나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오래 버틸 수 있는 자리와 관계를 만난 나무이기도 하다.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


은행나무 자체의 속성도 분명 중요하다. 줄기와 조직이 단단하고, 스스로 병충해를 억제하는 방어 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일부가 손상되어도 생명을 완전히 잃지 않는 식물 특유의 구조를 지닌다.


동물처럼 심장 하나, 뇌 하나가 무너지면 전체가 끝나는 방식이 아니라, 부분이 상해도 다른 부분이 살아남아 전체를 이어 가는 모듈형 생명체에 가깝다.


그래서 식물의 장수는 동물의 장수와 다르게 읽어야 한다. 식물의 시간은 중앙집권적 시간이 아니라 분산된 시간이다. 한 가지가 죽어도 다른 가지가 살아 있고, 중심부가 비어도 바깥의 형성층이 계속 자라기도 한다.


인간이 식물의 장수를 곧바로 흉내 낼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식물은 몸의 철학 자체가 다르다.


지구에서 가장 오래 사는 나무들을 보면 이 차이는 더 분명해진다. 미국 고산지대의 브리슬콘 소나무는 현재 확인된 개체 중 5,000년을 넘는 사례가 보고되어 있고, 이런 나무들은 해발이 높고 건조하며 토양이 척박한 곳에서 자란다. 그곳은 살기 좋은 곳이 아니다.


하지만 바로 그 척박함이 경쟁을 줄이고, 성장 속도를 극도로 늦추며, 병충해와 부패를 억제한다.


미국 국립공원 자료는 브리슬콘 소나무가 혹독한 고지대에서 매우 천천히 자라고, 그 느림과 건조함이 극단적인 장수와 연결된다고 설명한다.


빨리 자라는 숲의 우등생이 아니라, 느리게 버티는 변방의 생존자가 가장 오래 산다는 사실은 참 묘한 역설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자연의 첫 번째 가르침을 얻는다. 오래 산다는 것은 반드시 풍요의 결과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어떤 생명체는 지나친 풍요 속에서 너무 빨리 자라고, 너무 빨리 소모되며, 너무 쉽게 경쟁의 상처를 입는다.


브리슬콘 소나무가 매년 거의 눈에 띄지 않을 만큼만 자라면서 수천 년을 버틴다는 사실은, 생명의 깊이가 언제나 성장의 속도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준다. 느림은 결핍의 표정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소모를 줄이는 지혜이기도 하다.


오래 사는 동물의 세계로 가도 비슷한 패턴이 보인다. 그린란드 상어는 눈의 수정체 방사성탄소 분석 연구를 통해 적어도 272년 이상, 최고 개체는 약 392세 전후로 추정되며, 알려진 척추동물 가운데 가장 오래 사는 축에 든다.


이 상어는 차갑고 깊은 바다에서 매우 느리게 성장하고, 성숙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대사가 느리고, 환경 변화가 적고, 삶의 리듬이 급하지 않다. 상어가 수천 년을 사는 것은 아니지만, 수백 년이라는 시간만으로도 인간의 상상력을 충분히 흔든다.

272년 이상 장수하는 그린란드 상어


심해 해면류 가운데는 수천 년에 가까운 것으로 추정되는 사례도 연구되어 왔지만, 이런 경우는 종과 방법에 따라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말해야 한다.


다만 방향은 분명하다. 오래 사는 동물일수록 대체로 느리고, 차갑고, 단순하고, 덜 소모하는 삶의 구조를 가진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떤가. 바로 여기서 식물과 동물과 인간은 갈라진다. 나무는 척박한 곳에서 오래 살 수 있지만, 인간은 대체로 그렇지 않다.


인간은 통합형 생명체라서 뇌, 심장, 혈관, 면역, 체온 조절이 한꺼번에 안정되어야 오래 산다.


실제 장수 지역으로 자주 거론되는 오키나와, 사르데냐, 이카리아, 니코야 같은 곳은 극한의 척박함보다 비교적 온화한 기후, 안정된 공동체, 과식하지 않는 식사, 일상적 신체활동, 사회적 연결이 함께 작동하는 곳들이다.


즉 인간에게 유리한 것은 나무처럼 척박함 그 자체가 아니라, 과도한 경쟁과 과도한 소모를 줄여 주는 적절한 환경이다. 인간은 황량함에서 오래 사는 존재가 아니라, 균형에서 오래 사는 존재다.


그래서 인간의 장수에서는 느림을 그대로 환경의 척박함으로 번역하면 안 된다. 인간에게서 느림은 더 이상 물리적 빈곤이 아니라 삶의 리듬이 된다. 너무 급하게 먹지 않는 것, 너무 급하게 성공하려 하지 않는 것, 지나친 경쟁으로 자율신경을 불태우지 않는 것, 하루의 시간을 늘 쫓기듯 밀어붙이지 않는 것, 몸을 적절히 움직이되 무리하게 소모하지 않는 것, 이것이 인간에게 필요한 느림이다.


의학적으로 보아도 규칙적인 신체 활동, 특히 걷기와 중등도 유산소 운동은 사망 위험을 낮추는 가장 확실한 생활 습관 가운데 하나다. 장수는 완전한 정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무리하지 않는 리듬 있는 움직임에서 온다.


종교인들의 삶을 떠올리게 된다. 느리게 걷고, 천천히 움직이고, 명상하고, 현재를 자꾸 알아차리려는 습관은 단순한 정신 수양이 아니라 몸의 시간도 바꾸는 일일지 모른다. 현대인은 대부분 현재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대신 현재를 과거와 미래의 생각으로 소비한다.


예를 들어 달릴 때 발목의 통증과 골반의 압박, 깊어진 호흡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순간이 남고, 힘든 고통의 감각이 줄어든다. 그때 통증은 불행한 느낌이 아니라 아니라 몸의 한 현상이 된다. 이것은 불교의 언어로는 알아차림이고, 철학의 언어로는 현존이며, 삶의 언어로는 지금을 놓치지 않는 훈련이다.


그래서 은행나무 장수의 비밀을 인간에게 그대로 옮길 수는 없지만, 그 은유는 분명히 배울 수 있다. 첫째, 오래가는 것은 대개 서두르지 않는다. 둘째, 오래 버티는 것은 대개 불필요한 경쟁을 줄인다. 셋째, 오래 지속되는 것은 대개 외부의 충격을 완전히 없애지 못해도 내부의 균형을 잃지 않는다. 넷째, 장수는 강함만의 결과가 아니라 보호받는 자리와 관계의 결과이기도 하다.


결국 은행나무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단순히 “오래 사는 법”이 아니다. 오히려 “어떻게 소모되지 않고 지속할 것인가”에 가깝다. 인간은 나무처럼 줄기를 바꾸며 천 년을 버틸 수는 없고, 상어처럼 차가운 바다에서 대사를 늦춘 채 수백 년을 살 수도 없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다른 가능성이 있다. 조급함을 줄이고, 몸을 움직이며, 현재를 놓치지 않고, 경쟁보다 리듬을 택하고, 속도보다 깊이를 택하는 삶이다. 느림의 미학은 게으름의 미학이 아니다. 그것은 과도한 소모를 거부하고 생명의 호흡을 회복하는 태도다.


그래서 오늘 은행나무 이야기를 하면서 인간의 삶을 생각하게 된다. 모든 은행나무가 천년목이 되지 못하듯, 모든 인간이 장수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숫자로서의 장수가 아니라, 자기 리듬을 잃지 않고 오래 지속될 수 있는 삶의 형식을 찾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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