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와 행복에 대한 사색
관악산 재 조명 이유
지난 3일 동안 못하겠다고 버텼다. 하지만, 당신은 계속 나를 괴롭혔다. 왜 개똥철학 말하는 데 당신을 이용했냐고? 다시 보여줬으니, 제대로 쓰고 정정 보도하라고 괴롭혔다.
나는 못하겠다고 버텼다. 글재주가 없어 내가 봤던 천국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고.
벼루와 먹과 붓을 품속에 품고, 물이 없으면 술을 따라 먹을 갈고 초롱불이 없으면 달빛 아래 연경의 뒷골목에 주저앉아 현장을 묘사했던 연암 박지원의 열정도,
그리스 및 소련 혁명의 소용돌이에서 장관 등 수많은 경험한 카잔차키스의 화려한 경력과 문학적 능력도, 평생을 글로 훈련을 받고 문장의 극치를 보여주는 김훈의 전문성도 되어야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거꾸로 글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한 나는 당신을 절대로 묘사할 수 있다고 버텼다.
결국, 내가 졌다. 지난 사흘 쉴 틈 없이 당신은 나를 들들 볶았다. 미루고 미루다 오늘 아침 일어나면 시도하겠다고 했는데, 두 시간 정도 잠을 재우고 난 다음 새벽 2시인데 벌써 깨우더니 그만 일어나서 쓰라고 계속 압박을 넣는다.
결국, 당신과 타협을 한다. 글재주가 없어 자판기에 손만 올려놓을 테니 닐 도널드 월쉬의 손을 이용해 신이 썼던 신과의 대화처럼 당신이 나에게 들어와서 하고 싶은 말을 쓰라고.
3월 1일 아침 성공과 관악산이라는 글을 정리한 후 내일 첫 강의 및 이번 학기에 학생들에게 재미있는 강의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재미가 뭘까 하는 생각에 빠졌다.
강원도 산간에는 폭설이 내렸고, 서울에는 하늘에서 폭설이 녹은 듯 겨울비치고는 꽤 많은 양이 종일 내렸다. 갑자기 계곡물에 비 떨어지는 소리가 듣고 싶었고, 청계산 원터골 계곡을 가고 싶어졌다. 비 올 때 계곡물이 흘러가는 소리는 정신을 맑게 해 준다. 등산하기에는 약간 늦은 오후 세시 경에 차를 몰고 집을 나섰다.
청계산 가려면 양재대로에서 직진하지 않고, 우측으로 빠져야 하는데, 직진하여 터널을 빠져나오지 못했다. 터널이 계속 이어져 과천 근처까지 왔고, 돌아가 청계산 가느니 관악산을 선택했다. 강남구청이 열심히 터널을 파준 결과다.
그런데 그것이 나의 실수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당신이 나를 유인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비가 온 삼일절 휴일 관악산 능선길 바로 아래에 있는 과천 시청 주차장은 차 한두 대 밖에 없이 텅 비었다. 샌들을 신고 채양이 넓은 우산을 쓴 채 산에 들어섰다.
과천 능선길 시작하며,
산에 들어서며 나무를 보는 순간 내가 당신을 잘못 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참나무와 소나무가 청계산처럼 곧게 뻗어서, 지난 번 관악산에는 온통 앉은뱅이 나무만 있다고 잘못 묘사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등산로는 청계산 원터골처럼 넓지 않아서 우산이 거추장스럽고, 계단이 없는 자연상태의 돌길과 바위길로 비 올 때는 조심해야 했다. 십여 분 정도 등산로로 삐죽삐죽 얽히고 섞인 낮은 나뭇가지의 장애물을 피하려고 우산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올랐다.
경사가 있는 바위를 오르려다 오른발이 갑자기 미끄러지며 뒤로 나 뒹굴었다. 엉덩이를 바위에 기대고 몇 분간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가 되었다. 다행히 무릎이 약간 시큰거리는 것과 왼쪽 발목에 작은 생채기가 난 것 말고는 별 이상이 없었지만,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앞으로 계속 이어질 바위에 대한 약간의 두려운 생각이 스쳐 그만 포기할까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등산 시 정상까지 오르는 오랜 습성이 나를 계속 오르게 했다.
조금 후에 우측에서 천둥 같은 소리가 들렸고, 능선 길에서 우산을 쓰는데 위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시 소리가 들리지 않아 천둥소리는 아닌 듯해서 계속 올랐다. 조금 더 올라 과천 시내가 보이는 곳으로 올라오니 회색 구름 장막이 과천을 온통 가린다.
살아있는 짐승은 나 혼자 뿐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등산객은 한 명도 없다.
겨울에 시끄럽게 굴던 까마귀 소리도 전혀 들리지 않고, 우산에 떨어지는 빗소리와 사각사각 바람 소리만 들린다. 멧돼지가 나타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인다.
그런데 갑자기 당신이 나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나의 진정한 모습을 보라는 듯이 당신이 가지고 있는 온갖 것을 보여줬다. 나는 등산 중 사진을 잘 찍지 않는다. 현장의 생생한 기억과 느낌이 사라지고 사진의 장면으로 대체해 버려 진짜 기억이 사라지고 가짜가 들어선 느낌으로 가능하면 사진을 찍지 않는다. 하지만 그날은 계속 멈추어 서서 사진을 찍었다.
비 오는 날 관악산 맨발 능선 산행에서 보는 자연의 아름다음- 시각의 즐거움
서서히 등산로 바닥과 등산로 옆에 있는 모든 사물이 놓칠 수 없는 경이로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빗물에 솔잎이 물방울을 매달고 곳곳에서 화려하게 크리스마스트리처럼 전구를 밝힌다. 솔잎 끝에 앙증맞게 매달려 있는 물방울을 들여다보니, 물방울 속에 솔잎의 반영이 들어있어 유리구슬에 자연을 담은 듯하다.
바닥의 돌도 제각각 자태를 드러낸다. 작은 요정들이 타고 온 우주선처럼 생긴 모양의 돌도 있고, 등산로 길이 마치 작은 시냇물처럼 흘러내려, 계단이 있는 곳은 작은 폭포가 된다.
소나무 뿌리들은 기괴한 모양으로 살아 움직이는 외계인의 다리처럼 보이고, 줄기는 갈색과 검은색이 선명하게 드러내며 거대한 용이 비닐을 꿈틀거리는 것 같다.
작은 나무는 빗물에 젖은 옷을 입고 눈을 반짝거리며 아름다운 여인이 유혹하듯 흔들거리고 진달래나무는 꽃망울을 머금고 분홍색 살을 살짝 드러내 보인다.
평소에는 죽은 듯이 바닥에 엎드려 있던 이끼는 녹색의 빛을 발하고, 시체처럼 매달려 있던 빛바랜 낙엽들도 비를 생명처럼 빨아들인 듯 윤기가 흐르며 단풍보다 아름다운 주황색을 띠며 빨리 자기를 찍어달라고 살랑거린다.
등산로에 물방울은 작은 거품을 만들며 소녀들이 재잘재잘 대며 골몰길을 내려가듯 천천히 내려간다. 평상시 있는지도 몰랐던 죽은 억새도 벌떡 일어나는 듯하고 솔잎은 푸른색이 아닌 녹색의 빛깔로 떠질 듯이 부풀어 오른다.
몇몇 바위와 돌도 온갖 무늬와 색깔의 쇼를 펼치며 환상의 세계를 펼친다. 중턱의 어떤 바위는 잘빠진 남성의 이두박근이나 초콜릿 복근처럼 울퉁불퉁하다가 또 매끈하게 힘자랑을 하는 듯하다.
미끄러져 넘어진 후 당신을 제대로 묘사하지 못해 죄송합니다라고 중얼거렸다. 관악산이 내가 제대로 묘사를 하지 못한 잘못을 지적하려고 일부러 패대기를 쳤다는 생각이 들고, 천둥소리를 내서 나를 겁박하고 위협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시 보니 주변의 온갖 세상에 장막을 치고, 새를 포함하여 모든 방해물을 감추고 완벽하게 준비한 상태에서 나를 일부러 미끄러뜨려 백지상태에서 당신의 속살을 보여주는 듯하다.
충만한 행복감
행복감이 은은히 온몸에 퍼져있다. 혹시 넘어지며 시상하부에 충격이 가해져 사랑의 호르몬인 옥시토신이 전신에 마구마구 흐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은근히 단전 부위에 에너지가 몰리는 듯하다.
당신의 아름다움에 빠져 매번 멈추며 사진을 찍다 보니, 시간이 많이 지체되고 중턱 부분에 오니 빗줄기가 거세지며 주변이 어둡고 기온도 떨어진다.
연주암에서 계곡길로 하산하며, 청각의 즐거움
두려움이 조금 일어, 정상 부근인 연주암 쪽으로 빠르게 이동하여 안개와 장막에 사로잡힌 연주암에 들어선 후 계곡 길로 하산했다.
연주암에서 과천 향교로 내려오는 길은 오는 내내 계곡 길이다. 바위와 돌로 이루어진 계곡길은 대체로 물이 조금밖에 없다.
그런데 당신은 내가 진정한 생명의 원천이라고 거대한 함성을 온 계곡에 울렸다.
연주암을 내려오는 순간 계곡에서 물소리가 크게 울렸다.
종일 내린 비로 계곡물이 불어나 계곡 급경사를 타고 거대한 물살을 만들며 쉬지 않고 흐른다. 흰색의 포말이 높이 올라가고, 바위를 거칠게 강타한 후 소용돌이를 치며 급격하게 회전한다.
나이아가라 폭포처럼 수 갈래 길로 떨어져 내려오다, 정방 폭포처럼 다시 한 곳으로 집중해서 떨어진다.
관악산 정상에 커다란 호수가 있고, 호수가 무너져 한꺼번에 쏟아져 내린 듯 많은 물과 바위가 서로 부딪쳐 마치 백만 대군의 함성처럼, 수백 개의 북소리가 울리듯 온통 소리로 계곡을 가득 채워 그 위용이 압도적이다.
관악의 계곡은 내려오는 내내 벅찬 감동의 교향곡을 들려준다. 베토벤의 운명교향곡처럼 강렬하게,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처럼 은은하게, 등산로 옆 작은 길은 졸졸 흐르며 슈베르트의 가곡처럼 사랑스럽다.
올라갈 때는 보석같이 영롱하게 빛나는 다양한 자연이 원색의 시각적 향연을 보여주더니, 내려올 때는 힘찬 생명의 물줄기에서 내려오며 청각적 소리의 깊은 울림을 드러낸다.
아이고 좋아라는 말이 절로 나오며, 빗물이 넘치는 계곡 길을 추운지도 모르고 온몸이 날아갈 듯 춤추며 내려왔다.
아이고 하느님 감사합니다. 관악산 산신령님 고맙습니다. 장 속의 수백 억 개 박테리아와 37조 개 몸 세포가 발아하며 춤춘다.
다산 정약용은 어떻게 계곡물소리가 그렇게 좋은 줄 알고, 비가 오면 친구들과 같이 세검정 계곡의 정자에 앉아 풍류를 즐겼을까?
행복과 재미에 대하여,
행복과 재미의 원천을 무엇일까? 오늘 세간에서 말하는 재미와 즐거움과는 약간 뉘앙스가 다른 행복감이 가득 있었다.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내면에서 오는 그윽한 행복감, 어쩌면 종교에서 지향하는 그런 상태가 아니었을까?
예전에 큰 애에게 공부는 재미있어야 한다고 말했다가 심하게 반박을 받았다. 공부가 무슨 재미가 있냐고? 학생들에게 수업시간에 재미있게 공부하라고 하지만 과연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을까? 도대체 재미가 무엇이고 재미의 원천은 무엇일까?
만약 재미의 원천을 발견하고, 그 비법을 공부에 적용할 수 있다면 자녀가 공부 잘하는 것이 꿈인 한국의 젊은 엄마들에게 희망의 불꽃이 될 것이다.
왜 어떤 사람은 공부도 일도 재미를 갖고 성취를 올리며, 왜 어떤 사람들은 싫어할까? 왜 사람마다 좋아하거나 재미를 느끼는 대상이 다를까? 그리고 재미와 행복은 무슨 차이가 있을까?
지금 생각을 해보면 공부를 좀 했던 나도 공부가 재미있었던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마찬가지로 직장생활 다니면서 일이 재미있었던 적도 별로 없었다.
대신 골프는 정말 재밌다. 텔레비전은 골프 채널만 보고, 드라이버 비거리 늘리려고 맨날 유튜브 보며 스윙연습을 한다. 시간으로 따지면 30대 이후 휴식 시간의 절반을 골프로 보낸 듯 골프에 매달렸다.
몇 번 탔던 스키도 재미있다. 스키 실력은 좋지 않지만, 오스트리아 알프스에서 긴 슬로프를 타고 내려올 때의 기분의 청량함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한마디로 정말 재미있다.
종교인들은 어떤가? 노자와 장자가 살아오고 싯다르타가 여유가 있어 깨달은 상태로 골프를 치고 스키를 탈까? 예수야 워낙 짧은 인생이고 세간의 기준으로 보면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했지만 시간이 넉넉한 종교인이라면 골프를 치고 스키를 타며 재미를 찾는 것이 어떨까?
예전 런던 골프 연습장에서 신부님이 골프 연습을 하는 것을 봤다. 또 가끔 보면 스님이 스키장에 나타나 눈길을 끄는 경우도 있다.
요즘 재미있는 일이 없다. 어디 재미있는 일 없을까? 할 때의 재미는 복합적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재미는 감각의 세계와 관련이 있는 듯하다. 감각에 자극이 없다. 감각이 둔화되었거나, 대상의 자극이 강하지 않다는 의미 일 수 있다.
감각은 지속적이지 않는 단점이 있다. 또 인간의 감각은 진실이나 진리를 말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변화한다. 감각에 매달리는 것은 흘러가는 특정한 구름에 연연하는 것과 같다.
예를 들면 우리 눈의 감각만을 본다면, 코로나 바이러스 방지를 위하여 손을 씻을 이유가 없다. 독버섯을 판단하지 못하고 아름다움에 반해서 먹고 죽는 경우도 있다.
또 지구가 돌아가는 소리나 뱀이 속삭이는 소리 등 인간이 귀로 듣는 소리도 지극히 제한적이다.
우리 생물학적 감각의 변화는 시대에 뒤떨어진다.
개들은 가축화된 지 2만 년이나 흘렀으나 아직도 전혀 필요 없는 야생 늑대의 영역 표시를 한다.
인간도 유인원이나 석기시대의 뱀의 위험을 경고하는 신호가 없어지지 않고, 뱀을 가장 싫어한다.
인류 초기에 고향인 나무에서 내려와 야생 사바나에서 혼자 남겨져 사자의 밥이 되는 위험 때문에 혼자 있을 때 가끔 공포를 느낀다.
대부분 사람들은 나무를 좋아한다. 유인원 때 수백만 년을 나무에서 살았기 때문이 아닐까?
어둠을 상징하는 검은색이 회피되고, 빨간색은 피를 나타내지만 맛있는 과일을 연상해서 이중적 느낌이다.
재미는 잘못하면 독일 될 수 있다. 재미는 지속성이 짧고 외부적 자극에 의존해야 하는 단점이 있다. 자칫 잘못하면 외부적 자극을 찾아 중독성이 될 수 있다. 재미를 느끼려고 마약 중독이 될 수 있다.
우리 뇌에 쾌감센터가 있어, 어떤 조건과 연결하여 쾌감 센터를 자극하면 그 조건에 집착하는 행동을 유발한다. 쥐를 대상으로 종을 치게 하고 감각센터를 자극하면, 쥐는 먹는 것도 포기하고 종을 치다가 죽는다고 한다.
행복은 다소 철학적 세계다. 아리스토렐레스는 행복을 궁극의 선이라고 했다.
이와 반대로 행복 이론의 고수 서은국 교수는 행복을 추구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생존의 촉매제로서 행복의 기원을 찾는다. 저서 행복의 기원에서 행복을 진화론적 관점에서 존재하기 위한 수단으로 행복을 정의한다. 생존과 짝짖기의 대명제를 수행하기 위하여 행복이라는 촉매제가 있다는 것이다. 생존하기 위해서 사람들과 같이 있으면 행복감을 느끼고, 아름다운 여성과 같이 있으면 행복감을 느끼는 것은 짝짓기를 위한 촉매제로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며, 맛있는 음식과 썼은 음식을 명확하게 구별하며 행복감의 차이를 주는 것도 생존과 연계된다고 한다.
나는 좀 더 구도적인 관점에서 재미와 행복을 본다.
40대 중반에 3년 동안 거의 매일 약 10킬로를 달렸다. 구의동 집에서 올림픽 대교를 넘어 청담대교를 거의 하루도 쉬지 않았다. 비가 오면 비옷을 입고, 눈이 오고 추우면 스키복을 입고 뛰었다. 겨울에 눈이 올 때 머나먼 성산대교까지 뛰었다가 되돌아왔다. 그러다 한 두 번 러너스 하이라는 매우 행복한 상태에 들어선 경우가 있다.
내 몸이 붕 뜨고 세상이 한없이 아름답게 느끼는 감정이 한동안 이어진 경우가 있었다. 아마 우리 몸은 과거 짐승을 잡기 위해 지속적으로 달리기 위한 보상효과를 주는지 모른다.
등산을 지속할 때도 행복감을 느낀다. 진화와 연관된 보상효과로 우리 생존에 도움이 되도록 자극효과를 주어 지속적으로 능력을 향상하는 듯하다.
내가 등산을 좋아하는 것도 어렸을 때부터 지속적으로 했단 반복적 결과이다
골프도 마찬가지다. 처음 시작할 때 너무 힘들고 재미가 없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열심히 하다 보니, 싱글도 하고 이글 및 홀인원도 하다 보니, 결국 부정적인 요소가 줄어들고 긍정적인 재미가 있다.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습관화시켜서 부정적인 요소를 줄이는 기나긴 과정이 필요하다.
내가 하는 매일매일 명상, 백팔배, 팔 굽혀 펴기도 마찬가지다.
특히 팔 굽혀 펴기는 하기 싫다는 생각이 지속적으로 든다. 지금은 한 번에 50개 그리고 마무리로 20개 20개 한다. 한 번에 50개를 쉬지 않고 하는 데, 매번 고역이다. 그러나, 하고 나면 경쾌한 육체의 느낌이라는 보상효과가 있다. 이것도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하여 싫어하고 방해하는 느낌들이 점차 사라진다.
관악산을 보면서 행복을 느꼈던 것은 자아가 없어진 상태에서 내 육체의 많은 부분, 특히 세포가 자연과 일체화되면서 개인적 걱정이나 불안이 완전히 소멸되고, 신비롭고 경이로운 자연과 직접 교류했기 때문이다. 경이롭고 신비로운 자연과 직접으로 대면하면 축복의 상태가 된다.
재미도 감각적 쾌락이 아닌 지속적 노력과 습관으로 싫어하는 자아의 본성을 잠재울 때 불편하고 거북해하는 감정적 통제가 가능하다.
공부는 대상이 재미있어하기보다는 대뇌 작용을 활발하게 하여 전략적 사고를 하는 전두엽과 신피질을 활용하여, 싫어하는 감정을 지속적으로 통제하여 사라지게 하면 습관을 통한 은은한 만족감이 있고, 그 결과로 이어지는 성취로 행복감이 뒤따른다.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고 한다.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를 무구한 생명 진화의 역사의 경이로움으로 대하고, 수시로 변화하는 감각과 과거 잘못된 인식을 냉철하게 관찰하며 현실을 자세히 관찰하고 집중하면 놀라운 세게 가 열리며 행복과 재미를 동시에 추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