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스카이라인
여행에는
수많은 요소가 있다. 숙소, 음식, 교통, 관광지, 그리고 우연한 사건들. 하지만 한 가지 중심을 잡아야만, 그 여정은 하나의 이야기로 남는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대성당을 그 중심에 두었다.
대성당은
단지 오래된 종교 건축물이 아니다. 회화와 조각, 음악과 건축, 인간의 신앙과 미학이 총체적으로 결합된 공간이다. 한 문명과 시대가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이자, 그 무게를 견뎌낸 형식이다. 런던에서는 단연 세인트폴 대성당이 그 상징이었다.
금요일 밤,
테이트 모던의 라운지에 서서 바깥을 바라보았다. 어둠이 내려앉은 런던의 스카이라인. 그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하나의 곡선 — 거대한 원형돔 위 첨탑이 수직으로 솟아 있는 대성당. 도시를 가늠하는 기준점이랄까. 그 너머로 초고층 건물들은 드물게 흩어져 있었다. 이 도시의 높이는, 여전히 이 둥근 지붕을 중심으로 정돈되어 있는 듯했다.
지금의 세인트폴은 1666년 대화재 이후 크리스토퍼 렌의 손에 의해 재건된 것이다. 그는 고딕의 외부 지지대인 부트레스buttress를 외벽 속으로 감추는 방식으로 르네상스적 품격을 지켜냈다. 돔 구조의 하중을 분산시키기 위해 프랑스나 독일의 대성당들이 선택했던 방식은 '야만적'이라 여겨졌던 시대. 영국은 문명의 체면을 위해 구조적 타협을 미학적으로 덮어야 했다.
부활의 새, 피닉스Phoenix
이 대성당은 단지 화재를 견딘 건축물이 아니다. 2차 세계대전의 런던 대공습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은 피닉스였다. 거듭 재건되며 존재해온 이 건물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나는 무너졌고, 다시 일어났다. 다시 살아 있는 나를 보라."
그 문 앞에 섰을 때 문득 내 안의 피로와 침묵이 다가왔다. 나는 왜 이토록 긴 여행을 계획했던 걸까. 왜 대성당을 보고 싶었던 걸까. 어쩌면 나도 무언가로부터 다시 살아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마지막 날,
나는 대성당 안으로 들어섰다. 다른 장소들과 달리, 이곳은 ‘지나는 길’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쫓기듯 둘러보고 싶지 않았다. 마치 이곳을 위해 런던에 온 것처럼, 가능한 모든 감각과 주의력을 이 공간에 집중하고 싶었다. 이 대성당은 그런 ‘집중’을 받아 마땅한 장소였고, 그 이상을 돌려주는 곳이었다.
2025. 0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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