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온 첫날
파리에서
사흘을 보내고 독일의 콜론으로 기차를 타고 도착했다. 대성당이란 테마를 쫓아 콜론 대성당을 찾았고 이후 다른 작은 성당을 찾아 들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단숨에 나를 사로 잡았다. 어디서 들려오는지도 모른 채 오르간의 웅장한 울림 속에서 내부를 둘러보았다. 대성당에 비해 시각적으로 압도할 만한 요소는 없었으나 대성당이 오로지 천상을 향한 의지로 가득 찼다면 이곳은 지상을 향한 어루만짐의 안락함이 느껴졌다고 할까.
오르가니스트의
실루엣은 성당 내부를 한바퀴 돌고 나올 때야 비로소 눈에 띄였다. 들어오는 순간부터 레코딩 중이었는데 출입문 상단의 난간에 파이프 오르간이 위치해 있었던 것이다. 소리의 발성지로 점점 가까이 이끌려 갈 동안에난 그녀가 다가오는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로라Laura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독일어를 할 줄 아세요?'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독일어를 배우긴 했는데 이 상황에서 별로 쓸모가 있을 것 같진 않았다. 다행히 그녀와 난 영어로 말할 수 있었다. 출입구를 정면으로 바라봤을 때 왼쪽 입구 부근에 자신의 여행가방을 두고 앉아 있었는데 사라졌다는 것이다. 로라는 오른쪽 좌석 어딘가에 앉아 있다가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스마트폰 동영상을
돌려보며 상황을 확인해 보았다. 난 입구에서부터 로라를 마주할 때까지 코멘터리를 달며 끊김없이 레코딩을 하였기에 모든 장면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리고 어느 한 남자가 그녀의 가방을 은근슬쩍 가져가는 장면 역시도. 절도범이 있었다!
20분 정도가 흘러
아마도 범인이 가방을 뒤지고 어딘가로 사라져버렸을 가능성이 커보였다. 얼마나 중요한 물건이 들었을까. 지갑과 중요한 소지품을 휴대용 가방에 계속 지니고 있었던 건 다행스러웠다. 집으로 돌아가는데 지장은 없었지만 여행용 가방에 애지중지 손때 묻은 물건들을 잃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절도범에게 값나가는 것들이 아니라서 쓰레기통에 버리고 갔을지도 모른다고 하였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쓰레기통을 뒤지고 길가의 경찰에게 내 스마트폰을 보여주며 범인의 행방을 수소문하기도 했다. 그는 아마 노숙자일수도 있어서 콜론역 근처의 무료배식소에도 찾아가 보기도 했다. 그렇게 두 시간 여를 헤맸으나 허탕이었다. 절도범도 로라의 가방도.
콜론의 경찰서
내가 독일에 오자마자 독일 경찰서에 가게 되리라 상상이나 했겠는가. 로라는 어떻게든 이 사건을 마무리짓고 싶었던 것 같다. 독일식 사건해결의 정석을 보는 듯하기도 했다. 로라는 경찰서 문을 열고 들어가지 않았다. 앞에서 기다리면 안에서 열어준다고 했다. 잠시 기다리는 사이 안에서 콜론의 경관이 나와서 사무실로 안내를 했고 나 역시 신고인의 자격으로 여권을 제시하고 조사에 협조를 하였다. 내 스마트폰에 증거가 있으니 PC에 연결하여 전송해줄 수 있다고 했으나, 규정상 외부기기를 꽂을 수 없으니 이메일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그렇게 조사를 마무리짓고 나왔다.
어쨌거나
'우리' 사건은 이렇게 종결되었다. 로라는 커피를 한잔하고 기차를 타고 바이에른주 어딘가의 집으로 향하였다. 뭔가 공허한 느낌도 들었지만 어떤 감정이어야 콜론에서의 첫날로 정.상.적.인 기분이란 말인가. 유럽의 각 도시들이 나를 처음 맞이하는 방식이 꽤나 독특하다고 할까.
성聖과 속俗
성당이라는 성스러운 공간에서 도둑질이라는 지극히 세속적인 행위를 목격하자 이 양극의 대비가 깊게 각인되는 듯했다. 파이프 오르간의 웅장한 소리가 귀는 물론이고 온몸을 감싸는 듯했다. 시각은 눈물을 맺히게 할 뿐 그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건 음악이라고 하지 않았나. 대성당 투어가 관광을 넘어 동시대의 순례로 넘어가게 되었다.
2025/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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