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앙Amien

영불해협을 건너

by MOC

고딕의 세계로


본격적인 탐구가 시작되었다. 파리 북쪽으로 기차로 1시간 정도를 달리면 아미앙이란 작은 도시가 있다. 유로스타로 파리북역Nord gare에 도착하자마자 기차를 갈아탔다. 원래 20kg 짜리 캐리어를 북역라커에 맞기고 갈 계획이었으나 빅사이즈 라커가 모두 차 있었다. 이 무게를 어떻게든 감당할 수 있으리라.


파리 북역의 혼잡함을 뒤로 하고 유로스타의 스피드를 잊고 교외로 나가는 여유가 좋았다. 어느 나라든 처음은 언제나 수도여야 한다는 생각에도 불구하고 아미앙으로 직행할 수 있었던 건 아미앙 대성당 때문이다. 지상에 천상의 공간을 구현하고자 했던 중세의 열망이 가득한 곳. 육중한 돌로만 가능했던 재료의 한계를 극한으로 밀어붙인 의지. 그리하여 '돌의 정신화'라는 터무니 없는(!) 건축적 성취를 이뤄낸 고딕 대성당. 아미앙으로 향하는 내 기대는 이와 같았다.


여행 캐리어를


끌고 아미앙역에서 대성당까지 걷기 시작했다. 어느 곳이나 대성당은 랜드마크여서 역밖으로 나오자마자 눈에 띄였고 매우 가깝게 여겨졌지만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었다. 매끈한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유럽의 거리가 돌바닥으로 매끄럽지 않다는 사실을 간과한 대가란 작은 순례라고 해야 할까.


가방의 무게는 프랑스 이후 만나게 될 친구들을 위해 준비한 선물 때문이었다. 추석명절을 전후한 때여서 덴마크와 노르웨이에서 만날 친구들을 위해 한국의 전통한과세트를 공수해갔던 것이다.


회백색의


아미앙 대성당은 기품 있어 보였다. 거대하고 육중한 건물을 빈틈없이 채워넣은 조각상들과 여러가지 장식적 문양들을 보고 있노라면 현실적 감각을 잃고 영원속으로 빠져들 것만 같았다. 그 하나하나의 디테일을 관찰하는 것만으로 온종일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여전히 내 가방이었다. 이 캐리어를 가지고서는 내부를 제대로 둘러볼 수가 없었다. 우선 대성당 옆 관광안내소에 들러 가방을 맡길 수 있는지를 보았다. 락커는 없었고 직원에게 물어보니 "가방은 여행자와 함께 움직여야 한다"고 했다. 다른 방법은 없었다. 광장에 가방을 놓고 사진을 몇컷 찍는 동안 무장한 군인들이 순찰을 돌고 있었다. 이해 파리, 마르세유 등에서 발생한 테러로 사회적으로 매우 예민한 시기임을 인지하였다.


내부로 들어가서는 입구쪽 신도석 벤치에다 가방을 놓고 투어를 해야만 했다. 대부분 프랑스 현지인들이 관람하는 것 같았고 나 같은 외국인 관광객은 거의 없었다. 혼자서 내부의 스펙터클에 감탄을 멈추지 못하고 레코딩을 하는 와중에 불어로 된 방송이 들려왔다. 당연히 난 알아들을 수 없었고 아직 시간적 여유가 있었기에 계속 둘러보았다. 폐장시간은 보통 5시 정도니까 이때가 4시쯤이니 아직 여유가 있으리라.


이후 다시 경내 방송이 나왔는데 이번에는 영어였고 '속히 밖으로 나가달라'는 말에 의아해 하면서 발걸음을 옮길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내가 벤치사이에 놔둔 내 가방을 짚는 순간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아야만 했다. 대체 이 분위기는 뭐람?


고딕의 세계로, 프랑스 아미앙 대성당 앞에서 2017/10/01


관리인 처럼


보인 남자가 '그게 네 가방이냐'는 뜻으로 추정되는 말을 하였고 나는 '그럼 당연히 내 가방이지. 여기 이름표랑 전화번호도 붙여 놨고'라는 뜻을 내포한 "oui"(yes)라고 대답을 해줬다. 그때서야 그는 안심의 뜻으로 사람들에게 소리치고 손짓을 하며 '여기 이상한 외국인이 정체불명의 가방의 주인임을 확인했으니 안심하라'라는 뜻이 분명한 말을 전하였다.


그때서야 나는 상황을 인지했다. 앞서 무장 군인들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내가 졸지에 테러리스트로 몰릴 뻔 했구나...! 아, 미안하다가 뭐였더라, je suis desole....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어찌저찌 그 상황을 모면하고 밖으로 나왔다. 이걸로 아미앙 대성당 투어는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종결되었다.



2025. 07. 03.


#ContemporaryPilgrimage

#worldismyoyster

#stupidityismyn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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