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약함에 대하여

by 쓰다쟁이

기욤 뮈소의 소설이 원작인 영화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에서 주인공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알약을 통해 30년 전으로 돌아간다. 불행한 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랑하는 연인을 보기 위해 떠난 시간여행에서 과거의 나를 만난다. 인턴 생활을 하고 있던 젊은 한수현(변요한 분)이 전문의가 된 미래의 한수현(김윤석 분)과 이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등장한다.

“저는, 저는 좋은 의사가 됐습니까?”

“넌 이미 좋은 의사야 한수현”

“지금보다는 강해졌다는 말이네요”

“너의 유약함이 널 좋은 의사로 만들었어”

선교단체 간사로 지원했던 때, 면접 시간이 있었다. 3명의 면접관 앞에 앉아 여러 질문을 받았다. 한 선배 간사님이 내게 질문했다. “간사님에 대한 평가서를 적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간사님을 예민한 사람이라고 적었어요. 간사님은 왜 본인이 예민하다고 생각하세요?”

예상했던 질문이었다. 하지만 아팠다. 나의 치부가 드러난 것처럼 수치스러웠다.

간사가 되겠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말했다. “예민해서 사람들의 말에 상처를 많이 받을까 걱정이다.” 쿠크다스처럼 부서지기 쉬운 마음을 가졌던 나는 사람들이 무심코 던진 이야기에도 쉽게 상했고, 별 말 아닌 것에도 의미 부여하며 속앓이를 했다. 당연히 자존감이 낮았고, 관계에서 왜곡된 반응을 보였다. 처음 만난 사람들은 내 짧은 머리와 거친 말투를 보며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가 나와 가까워지고 난 후 유약한 내 모습에 놀라고는 했다.

그런 내 모습이 싫었다. 지우고 싶고, 없애고 싶고, 변하고 싶었다.

목이 터져라 기도했다. 하나님 나 좀 바꿔달라고, 성령의 능력으로 새롭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내가 속한 단체는 3년마다 평가를 했다. 첫 평가에서 보완했으면 하는 부분의 첫 번째 항목에 ‘예민함’이라는 단어가 적힌 걸 보고 난 후 내 기도는 더 치열해졌다. 매일 새벽마다 차를 타고 30분이나 가야 하는 교회를 찾아 부르짖었다. 기도하다 목에서 피가 나온 적도 여러 번이었다. 그다음 3년이 지나고 평가를 다시 받았다. 그런데 보완해야 할 부분에서 ‘예민함’이라는 단어가 보이지 않았다. 내 노력과 수고가 헛되지 않았다는 기쁨, 기도의 능력과 성령의 역사로 인한 변화가 생겼다는 감사가 마음에 차올랐다.

드디어 내가 달라졌다 생각했다. 그러나 3년 후 다시 평가를 받았을 때 다시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예민함’이라는 단어를 맨 첫 줄에서 만났다. 억장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10년간 치열하게 기도한 결과가 겨우 이것밖에 되지 않는다니 화가 나고 억울했다. 하나님에 대한 섭섭함 때문에 기도하기 싫었다. 사역에 대한 의욕도 현저히 떨어졌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 ‘왜 나는 바뀌지 않았을까?’ 풀리지 않는 질문을 지닌 채 하나님 앞에 머물렀다.

어느 기도 시간 하나님은 내게 물으셨다. “넌 왜 네가 변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변화가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던 내 전제를 깡그리 무너뜨리는 질문이었다. ‘왜 나는 날 바꾸려고 했을까?’, ‘왜 예민함과 섬세함을 변화되어야 할 것이라 생각할까?’ 달라진 질문은 날 더 깊은 세계로 데려갔다. ‘예민함과 섬세함을 왜 내게서 떼어놓으려고만 했을까?’, ‘떼어놓는 게 가능이나 한 걸까?’. ‘그것은 정말 나의 연약함이고 단점일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은 마치 헨젤과 그레텔이 집에 돌아가기 위해 흘려둔 돌멩이 같았다. 떨어진 질문들을 따라 내가 처음 출발했던 곳으로 다시 되돌아갔다.

지난 사역 속에서 내가 생각했던 연약함과 단점이라 여겼던 예민함과 섬세함은 내 사역의 가장 큰 장점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예민했기 때문에 분위기 파악에 빨랐고, 섬세했기 때문에 사람들의 필요를 잘 알아챘다. 공동체의 필요를 빨리 발견했고, 다양한 요구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 사람들의 말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기 때문에 조언을 귀담아 들었다. 독서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을 때 열심히 책을 읽었고, 성경을 더 연구하라는 조언에 말씀을 붙들고 씨름했다. 기도에 전념하라는 충고를 받을 때 기도에 매달렸다. 유약했기 때문에 쉽게 흔들렸고, 예민했기에 성찰했다. 가볍기 때문에 재빠르게 자리를 옮겼다. 내게서 가장 지우고 싶었던 것들이 사실은 나를 가장 건강하게 만들었다는 걸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성숙은 변화가 아닌 수용일 수 있겠구나. 싫어했던 내 모습을 지우고 잘라내고 바꾸는 게 아니라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한다는 것, 연약한 부분으로 여겼던 것들이 사실 나를 가장 건강하게 만든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아침 기도 때 ‘환영 기도’란 기도문을 외우고 시작하는데 거기에 이런 내용이 있다. ‘나는 상황, 조건, 사람 혹은 내 자신을 변화시키려는 욕망을 흘려보냅니다’. 나를 변화시키려고 하지 않는 것이 기도자의 자세라는 걸 잊지 않으려 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나의 ‘Endless 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