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때쯤이면 자주 듣는 노래가 있다. Bee Gees의 ‘I started a joke’란 노래다.
22년 전 이때쯤이었다. 2000년 11월의 어느 날, 군산 시내의 한 문구점에서 처음 이 노래를 들었다. 그때 나는 생애 첫 설교를 앞두고 있었다. 얼마나 떨었는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매일 밤 설교 준비를 하느라 밤을 꼴딱 새울 정도였다. 쓰고 고치기를 반복하며 가까스로 원고를 마감하고 혼자 모의 설교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완성된 설교문을 담을 파일 케이스를 사기 위해 문구점을 찾았던 것이다. 대학 졸업 후 이제 막 간사 시험에 합격해 신입 간사 훈련을 앞두고 있었다. ‘간사라는 옷이 아직 어색한 풋내기인 내가 어떻게 설교를 할 수 있단 말인가’란 두려움과 ‘존경하는 선배 간사님들처럼 내가 설교를 하게 되다니’란 설렘이 동시에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쌀쌀했던 날이었다. 문구점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안의 따뜻한 공기 때문에 차가웠던 두 볼이 벌게지기 시작했다. 그 온기에 떨리는 내 마음도 스르르 녹는 것 같았다. 출입문 반대편 진열장에 전시된 파일 케이스를 하나씩 꺼내 보고 있을 때 매장 안에서 Bee Gees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I started a joke’라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우스갯소리를 잘하는 나와도, 첫 설교를 시작해야 하는 내 상황과도 너무 잘 어울리는 노래라 생각했다. 노래가 끝날 때까지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 공간에 나와 노래만 있는 것 같았다. 반투명 그레이 색 케이스를 사서 집으로 돌아오면서도 노래 생각을 했다. 첫 설교를 앞둔 나를 위한 응원가일 거라고.
하루 종일 설교 준비를 했지만 잘 풀리지 않았다. 본문을 좀 더 묵상해 보려고 집 밖으로 나가 천천히 걸었다. 한참을 걷다가 귀에 이어폰을 꽂고 플레이리스트에 저장해 둔 Bee Gees의 노래를 들었다. 여전한 로빈 깁의 미성처럼 그 시절의 떨림과 설렘을 아직 나는 간직하고 있을까.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이란 책에서 김지수 기자는 윤여정 선생님을 인터뷰하면서 이런 질문을 던졌다. “산전수전 다 겪고 유머 감각이 풍부해도 긴장하실 때가 있습니까?” 윤여정 선생님은 이렇게 답했다. “일할 때는 늘 긴장해요. 첫 촬영 때는 특히 긴장을 많이 하지. 언제쯤 나도 편하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한 적도 있는데 맘을 바꿨어요. 영원히 긴장하려고, 배우가 너무 편하게 하면 그것도 이상해요. 연기를 잘해서 그냥 노는 것처럼 보이면 그게 농익은 연기인가? 난 아닌 것 같아. 묘한 경계선이 있는데 어떤 식으로든 최선이 보였으면 좋겠어. 처음 만났을 때의 떨림을 죽을 때까지 유지하고 싶어. 브로드웨이에서도 첫 공연 티켓이 가장 비싸요. 떨림과 최선이 있으니 그런 거 아니겠어요?”
영원히 긴장하는 배우가 되겠다는, 처음 만났을 때의 떨림을 죽을 때까지 유지하고 싶다는 선생님 이야기가 좋다. 떨림과 최선의 경계선 사이에 서겠다는 고백도.
설교문을 작성하기 위해 노트북을 다시 펼쳤다. 자판을 두드리는 내 손가락이 살짝 떨린다.
아무래도 이번 주일 설교는 농담으로 시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