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샬렘 영성훈련원에서 하는 목회자 모임의 독서과제를 위해 유진 피터슨의 『목회자의 영성』이란 책을 읽기 시작했다. 3분의 1 정도를 읽었는데도 마음에 묵직한 울림이 있었다. 이전에도 그의 책을 여러 권 읽었다. 주위에서 그의 책을 읽고 호평을 하는 분들이 많아 덩달아 읽게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 뒤로는 그의 책을 가까이하지 않았다. 과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손에 잡았지, 혼자서는 읽지 않았을 게다. 그러나 서문부터 깊은 내공에서 우러나오는 주옥같은 문장들에 탄복하며 곳곳에 밑줄을 그었다. ‘아. 이래서 목회자의 목회자라 불리는구나’
3부작으로 기획된 책이어서 나머지 책들이 궁금해졌다. 잠시 책을 덮고 인터넷 검색을 했다. 우연히 한 블로그에서 유진 피터슨의 아버지가 정육점을 하셨고, 그가 자신을 정육점 아들로 소개하곤 했다는 내용을 읽게 되었다. 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걸 느꼈다. 나도 이해할 수 없는 눈물이 핑 돌았다. 나와 너무 다른 그에게서 나와 비슷한 것을 발견하는 순간 느낀 묘한 동질감이었다. 정육점 아들이라는 정체성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지만 오랜 시간 각인된 소중한 정체성이었다. 나를 규정하는 많은 것들 가운데 정육점 아들은 단연 특별하다. 그 안에는 빨간 형광등 켜진 매대에 서서 고기를 파시던 엄마, 한쪽 구석에서 쪼그려 앉아 무딘 칼을 가시던 아빠가 있다. 붉은 밍크 담요를 가슴까지 끌어 덮고 지나는 행인을 바라보던 점빵과 출출할 때 툭 잘라 연탄불 위에 고기를 구워 먹던 어린 시절이 송두리째 담겨 있다. 그의 추억은 내 것과는 다르겠지만, 단지 그의 아버지와 나의 아버지가 같은 직업을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그에게 내적 친밀감을 느꼈다.
유진 피터슨처럼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종종 했었다. 그를 인터뷰한 기사에서 그가 살던 집을 본 적이 있는데 숲 속 호숫가에 위치한 집이 딱 내 스타일이었다. 저런 곳에서 기도하고, 책을 읽고, 사람들을 만나고, 글을 쓰고, 가끔은 외부 강연과 설교를 하러 다니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했었다. 그와 같은 집에서 사는 건 어렵겠지만, 그와 같은 영성가로 살고 싶다.
“내 직업은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주거나 그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작용하는 은혜를 보도록 돕는 것입니다”,
“망설임이나 이래도 될까 하는 의구심 없이, 기도의 내용과 형식에 대한 지도를 받기 위해서 나를 찾아올 수 있으면 좋겠다. 내게 자신을 계시하시고 나를 이름으로 부르시는 하나님과 더 깊이 대화하는, 고유의 일을 하고 싶다. 하나님의 일을 설명하는 인쇄물을 나누어주고 싶지 않다. 나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증언하고 싶다. 다른 사람들이 직접 체험한 영적 생활에 기생하지 않고, 내 모든 감각으로 직접 관여해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으로도 보고 눈으로도 보고 싶다.”
오늘 읽었던 책에서 만난 문장들처럼 ‘내 모든 감각으로 직접 관여해서 맛본 하나님의 선하심’을 증언하며 살아가고 싶다. 비록 숲 속 호숫가에 살지는 못해도 그 누군가에게 숲 속 호숫가가 되어주는 멋진 정육점 아들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