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오)락실이 건넨 뜻밖의 위로

감정에 말을 걸다

by 희원다움

나는 본업이든 사이드 프로젝트든, 뭐든 시작하면 늘 무겁고 진지하게 임한다. 꾸준히, 성실하게, 책임감 있게. 주어진 일에 진심을 다하며 한 걸음 한 걸음 인생을 걸어왔다. 딱히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다. 어릴 적부터 그렇게 살아온 게 습관이 되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 틀을 벗어나는 것이 오히려 어색했다.


사전을 찾아보면 '진지하다'는, 마음 쓰는 태도나 행동이 참되고 착실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나의 진지함은, 살면서 누구나 겪는 희로애락의 감정마저 눌러버릴 만큼 무거운 것이었다. 그 감정들을 꾹꾹 눌러가며 ‘그냥저냥 잘 살고 있구나’ 생각했는데, 요즘 들어 마음이 삐걱거린다.


공부 해야지, 감정 따질새가 어딨어?

내 이름 ‘희원’에는 ‘기쁠 희(喜)’가 들어간다. 이름을 지어준 사람의 마음처럼 기쁘게 살아가면 좋으련만, 나는 그 ‘기쁨’조차 조심스럽게 다뤘다. 사소한 감정에 휩쓸릴까 두려워 가요도 잘 듣지 않았고, 예능도 피했다. 감성에 무너질까 봐 늘 스스로를 다잡았다.


그렇게 살아온 지 십수 년. 어느 날, TV를 보는데 뜻밖의 감정이 나를 찾아왔다. 매일 자기 전, TV를 틀고 반려묘를 쓰다듬으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나에게, 그 시간은 잠깐의 여유다. 며칠 전 꿀맛 같은 여유를 느끼며, 우연히 ‘지구오락실’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게 됐다. 처음엔 별생각 없이 보다가, 문득 가슴 깊은 곳에서 쾌활함이 올라왔다. '뭐지? 낯선 이 느낌은?'

이영지, 안유진, 미미, 이은지. 그들의 유쾌한 모습이 어쩐지 싱그럽게 다가왔다. 화장기 없는 얼굴로 거리낌 없이 웃고 뛰는 이영지, 예쁘게 보이려 애쓰지 않고 몰입하는 안유진, 상식의 틀을 가볍게 넘나드는 미미, 개성 강한 멤버들을 품어주며 함께 웃는 이은지. 그저 장난스럽게만 보였던 그들의 모습에서, 나는 ‘살아있음’의 에너지를 느꼈다.


‘반짝반짝'


그 천진한 모습이 눈부셔서 그대로 잠들기가 아쉬웠다. 그날 이후, 이영지의 무대 영상을 찾아봤다. ‘고등래퍼’에서 시작해 자신의 색을 만들어온 아티스트, 이영지. ‘레인보우’라는 프로그램에서 장르를 가리지 않고 어떤 무대든 자신만의 색으로 채우는 모습. 허스키한 목소리로 무대를 압도하는 그녀를 보며, 내 가슴이 ‘쿵’ 했다.

지락실 멤버들 역시 예능에서는 엉뚱하고 유쾌하지만, 본업에서는 누구보다 진지하고 깊이 있는 전문가였다. 그들의 반전 있는 모습에서 묘한 감동과 짜릿함이 밀려왔다. 마음속 무거운 돌덩이가 스르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그래, 가벼운 웃음도, 일상의 장난스러움도, 인생의 일부지.’ 진지함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그 안에 '희희낙락(喜喜樂樂)'이 깃들 수 있다면, 삶은 더 다채로워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뭐든 무게감 있게 임하는 나지만, 앞으로는 모든 걸 무겁게만 지고 가는 사람이 아니라, 때로는 그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웃을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인생을 책임감 있게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서 감정의 숨결을 놓치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프로의 자세라는 걸 배웠다.


이제는 노력만큼 쉼도 인정해 주고, 진지함 사이로 유쾌한 나를 허락해보려 한다. 매일 먹는 한 끼 식사처럼, 지락실 같은 예능처럼, 나를 미소 짓게 하는 기쁨들을 더 많이 찾아야겠다. 가끔은 아무 이유 없이 좋아하는 노래를 크게 틀고, 성취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냥 좋아서 하는 일들을 해볼 것이다.


기쁨도 중요한 감정이라는 걸, 이제는 외면하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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