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이 일을 계속 하고 있을까?

내가 만든 덫에 스스로 걸려버렸다

by 희원다움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하루 종일 흐리고, 축축해 찝찝한 날, 현화고등학교에 간호사 진로체험 강의가 있는 날이었다. 이 학교는 나에게 조금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곳이다. 진로강의를 나갈 때마다 정리해 두었던 노션 기록을 보니, 2023년 5월 이 맘 때쯤, 인생 처음으로 진로강의를 시작했던 학교였다. 진로 강사로서의 첫 발을 내디뎠던 곳.

'1교시, 드러눕는 아이들이 생겼다.'이 친구들 나 때문에 간호사 안 하겠다는 거 아닌가?' 더럭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 학생들이 직접 참여했던 2교시에는 아이들이 생기 있게 실습을 해주었다. 결과야 어쨌든 최대한 다양한 '처음'의 순간을 만들어보자. '불확실한 처음'이 두려워, 경험조차 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살면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즐거움을 느낄 수 없을 테니 말이다. <2023년의 기록>
2024년 5월 10일

1년 뒤인 2024년, '다시 이 학교에 갔을 땐 “설마 작년에 들은 친구들이 또 있겠어?”했는데... 있었다. 그것도 아주 많았다. 다행히 강의안도 바꾸고 실습도 더 풍성히 준비해서 아이들과 더 반갑고 즐겁게 만났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들로 가득 채워 행복했어.'라고 기록되었다.


그리고 오늘, 2025년. 현화고 친구들과 세 번째 만남. 하지만 마음은 예전 같지 않았다. 지난 6개월간 오롯이 코칭에만 집중했던 시간. 그 과정에서 나 자신에 대한 회의도 깊어졌다. 공부는 계속했지만 실력은 늘지 않는 것 같았고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지?, 나는 진로코치로서 자격이 있는 걸까?’ 혼자서 수없이 흔들리며 자신을 의심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솔직히 오늘 강의를 가는 것도 썩 내키지 않았다. 숨고 싶었다. ‘이 마음으로 아이들 앞에 서는 게 맞나?’하지만 이미 약속을 했으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날씨도 우중충하고 출근시간, 교통체증을 예측하지 못하고 시간을 맞춰 나온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조급한 마음을 달래며 헐레벌떡 학교에 도착했다. 30분 전에 도착해 달라던 관계자에게 연신 '죄송합니다.'라며 고개를 숙이고 겨우 늦지않고 교실에 올라갔다.

그런데 막상 30명 아이들의 똘망한 눈망울을 보자 묘하게 마음이 정돈되기 시작했다. "간호사가 정말 되고 싶은 친구들 손 한번 들어줄래요?" 6개월의 공백이 무색하게 나의 페이스를 찾으며 강의에 집중할 수 있었다. 수업이 끝난 뒤 한 친구가 수줍게 다가와 고민을 이야기했다.


“선생님, 저는 선생님처럼 첫 째이고 제가 부모님과 동생들을 돌보기 위해 간호학과에 들어가려 하는데요, 간호사가 제 적성에 맞을지 모르겠어요.”


솔직히 제가 뭘 좋아하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그 순간, 내가 이 길을 걷기로 결심했던 이유가 생각났다. 나는 학창시절 질문했던 친구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고민조차 해본 적 없이 그저 나이를 먹은 어른이 되었다. 남들은 이미 자리 잡고 승진하며 직장생활을 이어가던 시점, 나는 그제야 내가 뭘 좋아하고 적성이 뭔지 궁금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진로 강의를 하는 것은 내 강의를 들은 30명의 아이들이 모두 간호사가 되겠다고 결심하게 만들려는 것이 아니다. 한 명이라도 이제부터라도 나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봐야겠다. 라는 마음 하나만 품는다면 그 이상 바랄 것도 없다. 코칭 역시, 단계단계 있는 상위레벨 자격증을 따려는 게 아니라, 자신을 발견하고, 진짜 원하는 것을 발견해 주체적으로 한 발 내딛는 과정을 함께 하고 싶어서였다.

언제부턴가 그 마음을 잊고 있었던 것 같다. 내 앞에 있는 누군가를 보는 게 아니라 코칭 실력이 늘지 않는 내 모습에 집중하다 보니 정체성이 흔들렸고 코칭이 부담스러워졌다. 하지만 오늘, 다시 깨달았다. 나는 성공한 코치가 되려는 게 아니라 코칭을 통해 누군가가 자신의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아길 바라고 있다는 것을.


흔들릴 땐, 본질로 돌아가보자. 나는 오랜만에 아이들을 만나며 잊고 있었던 본질을 다시 찾았다. 나는 코치이기 전에, 간호사이기 전에 그저 '이희원'이라는 사람으로서 누군가가 자기 삶의 중심을 되찾고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그 여정을 함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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