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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별일이다. 노을을 보는데 눈물이나...

by 희원다움

어제는 병원에서 혼자 고군분투하며 정신없이 하루를 보냈다. 일을 끝내자마자 코칭 약속이 있었고, 한 시간가량 이어진 코칭을 마치고 나니 집에 가서 눕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운전대를 꽉 잡고 속도를 올리던 그때, 눈앞에 펼쳐진 노을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잠시 멈추지 않았다면 그냥 스쳐 지나갔을 풍경이었다.


그 빛은 인간이 아무리 정교한 물감을 섞어도 흉내 낼 수 없는 색이었다. 붉음과 보랏빛이 겹겹이 번져, 사라지기 전 마지막 힘을 다해 하늘을 물들이는 듯했다. 마침 신호가 걸려 차를 멈출 수 있었고, 나는 핸드폰을 들어 서둘러 그 순간을 담았다.

역시, 사진으로는 다 담기지 못한다

그 풍경을 바라보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아름다움을 놓치고 살아왔을까?’ 매일의 노을은 단 하루도 같지 않았을 텐데, 나는 그 시간을 빈틈없이 메우느라 제대로 바라본 적이 거의 없었다.


사실 나는 늘 하루를 숙제처럼 느끼며 살았다. 해야 할 일의 리스트를 만들고, 그것을 지워 나가는 데서 책임을 다했다고 여겼다. 물론 그 과정 속에서 보람도 있었고 원하는 것을 이루기도 했다. 그러나 문득 이런 의문이 따라왔다. ‘과연 인생이 보람으로만 가득 차야 하는 걸까?’


붉은 노을이 내게 답을 주는 듯했다. 하루 종일 병원에서 꽉 채워 일하고 코칭까지 마쳤으니 분명 보람 있는 하루였다. 아마 그 성취감 덕분에 노을이 더 깊이 다가왔을 것이다. 그런데 하늘을 바라보는 그 순간, 보람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또 다른 충만함이 밀려왔다. ‘사는 맛이 있다면 바로 이런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의 노을을 바라보며 깨달았다. 하루를 보람으로만 채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사이사이의 틈이야말로 삶을 지속하게 만드는 비밀스러운 소스 같은 것이구나.

‘삶에는 여기저기 빈틈이 있어야 한다. 광대한 바다를 유유히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흘러가는 건 흘러가게 두고, 비늘이 반짝이면 황금비늘이 생겼다고 우기면서.’
-책 '사랑, 삶 그리고 시' 中

노을이 내게 보여준 것도 그 말과 같았다. 모든 순간을 의미로 가득 채우려 애쓰기보다, 흘러가는 건 흘러가게 두고 그 안에서 반짝이는 순간을 발견하는 것. 아마 그게 내가 오래도록 지켜야 할 균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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